찾고 있는 키워드를 검색해보세요.

DRAG
CLICK
VIEW

아카이브

온라인 자료실

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영상속의 광주, 오! 꿈의 나라. 조헌영(금호문화, 1989. 4)

본문

영상속의 광주

오! 꿈의 나라


글·조 헌 영



  공연법위반, 상영중지, 백한명 영화인의 악법철폐 성명 등으로 우리의 관심을 모았던「오! 꿈의 나라」(2.26∼3.1) 광주공연이 있었던 날 금남로에서는 부시 방한 결사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묘한 일이다 싶었다.「오! 꿈의 나라」가 5·18광주항쟁에있어서 미군의 역할을 조명하고 있어 오늘날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생각케 하는 작품이었는데 광주공연이 있던 날 그는 다섯 시간도 채 머물지 못하고 떠났다.「오! 꿈의 나라」에 대한 광주인의 관심은 지대했다 공연시작 시간 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열중에 곱상하게 나이드신 사십대 쯤 보이는 아주머니가 검표원에게  "이 영화가 독일 비데오라우, 일본 비데오라우,"물으신다.  아직도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5.18 광주항쟁하면 외국 기자들이 찍은 비데오만 생각하는 모양이다. 왜 내 나라의 역사를 말하는데 남의 나라 사람들의 손을 빌어와야 하는가. 바로, 이점이 우리 역사에 드리워진 암울한 측면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가 상영되기 전 제작진인 듯한 사람이 작품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웅변조의 설명을 하고 있는데 중년쯤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그는 제작진의 설명에 불만스런 점이 있는 눈치였다.
  "왜 큰 극장에서 좀 대형필름으로 상영하지 그랬는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제작을 설명하던 사람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요."라며 좀 겸연쩍은 미소를 띄며 답했다.  "요즘 쏘아대는 최루탄가루를 모아다 정부에 팔아 좀 때깔나게 만들제."하면서 대거리를 했다. 그 탓에 그곳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지만 배면에는 가슴 뭉클함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 5 · 18 광주민중항쟁 필름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어머니의 노래」가재방영되었다. 5 18 민중항쟁당시 19살이던 전영진 군.고교3학년생이던 그는 동포애를 앓는 열병 속에서 "어무니 조국이 우리를 부릅니다."한마디를 남기고 집을 나간뒤 다음날 공수대원이 발사한 총에 맞아 죽었다.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가슴 깊은 곳에 한으로 묻은 채 아들이 못다 부른 민주화를 위해 오늘도 투쟁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이 휴먼 다큐멘터리는 5 · 18 희생 유가족인 한 어머니의 회한과 당시 실제 필름을 병행시켜 만든 객관성 있는 증거를 제시해 만든 작품이다.
  이 「어머니의 노래」가 우리 국민들에게 던져준 의의는 실로 크다. 광주항쟁을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은 현 정권의 역사의 은폐에 대한 분노와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 어린 상반성의 여론은 대단했다. 이러한 국민의 정부에 대한 배반감이 큰 탓인지 또한 파장이 커서 정부측의 저지 역시 만만치 않았다. MBC에 대한 외부의 압력, 사장의 협박, 문공부·국방부의 비난성명 등 일련의 작태는 국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에 응답한 MBC의 「어머니의 노래」는 민주화로 접어드는 서장에 큰 디딤돌이 되었다 하겠다.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는 MBC가 제작한 「어머니의 노래」에 비해 물적·기술적 차원에서는 미숙했으나 우리에게 시사한 면은 컸다. 그 까닭은 뜻 있는 젊은 영화인들이 우리 현대사에서 민족주의 운동의 분수령인 광주항쟁에서 미국의 역할을 폭로한다는데 초점을 두고 십육미리 구십분짜리 장편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십륙미리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장편극이란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하겠다.
  이 영화가 상영된 것은 서울 신촌 예술극장 한마당에서 였다. 그후 전국 각 지역에서 상영됨으로써 영화인은 물론 일반대중에게까지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또한 이 영화의 각 지방의 방영과정에서는 지역적 편견을 떨치고 5·18 민중항쟁의 상을 알기 위한 열의는 대단했다 한다.
  이 영화는 상영되기 전 문공부에 대한 신고 의무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 등 몇가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문공부로부터 치안본부에 고발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오! 꿈의 나라」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인 종수는 전남대 2학년생이었다. 야학교사로서 그는 광주민중항쟁에 참가했다가 도청이 진압되기 직전, 그곳을 빠져 나온다.
  그는 수배를 피해서 고향선배인 태호가 있는 동두천으로 간다. 스낵바에 서 일하면서 미제물건 장사를 하는 태호와 양공주들과 그곳에서 생활을 함께 하게 된다.
  태호는 미국에 가서 살려는 심산으로 돈을 악착같이 번다. 제니와 다른 양공주들도 착한 미군을 만나 혼인해서 미국에 가려는 꿈을 꾸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락치 않는다.
  그들의 삭막한 생활 틈새에서 종수는 좀체로 잘 동화되지 못하고 광주에서 목격한 학살의 참상과, 비겁하게 도망친 자신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며 나날을 보낸다. 종수는 태호의 암거래가 우리 나라의 종속을 가속시킴을 설명하나 태호는 그의 말을 지식인들의 배부른 소리라고 묵살하고 만다. 태호는 군무원으로 가장한 스티브라는 미국 정보원의 밀거래 덫에 걸리게 된다. 태호는 스티브를 전적으로 믿게되어 점차 거래액수를 높여간다. 태호는 제니를 스티브에게 소개시켜 결혼까지 이르게 한다. 그러나 스티브의 배신은 제니를 자살로 몰며 태호는 미국을 저주하게 된다.
  결국 그는 미군부대 앞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미군헌병에게 끌려가고 증수는 동두천을 도망쳐 나온다. 종수는 허허벌판에서 지성인으로서 자기 자신의 이율배반과 나약성에 통한한다. 이와 겹쳐서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에서는 여전히 성조기는 게양되고 미국 국가는 울리고 있다.
  이렇듯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종수라는 주인공을 통해 기지촌의 현실적인 삶과 광주민중 항쟁을 접목시키고 있다.  이 영화는 두개의 문제 즉, 5·18민중항쟁과 미국의 본질과 역할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영화는 5·18 민중항쟁을 우리 현대사에서 민족민주운동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즉, 광주항쟁의 전기간을 경험한 한 학생을 통하여 5.18  민중항쟁이 왜 일어나야 했는가를 우리현실(동두천 같은 국적 없는 도시를 비유해서)에서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광주항쟁의 발생원인으로 군사정권을 방조한 미국의 흑심을 은근히 보여주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오! 꿈의 나라」 영화에 있어 5·18 민중항쟁의 접근에 있어 극복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먼저 광주민중항쟁의 발생원인을 미국과 관련된 것으로만 국한시킨 것이다. 보다  리얼하게 광주민중항쟁의 근본을 파헤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더불어 심층적인 현장제시나 증언을 인용했더라면 보다 큰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었을 듯싶다.
  이 영화를 제작한 장산곶매는 우리 나라 소영화 운동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 온 젊은이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다.
  '서울영상집단', 한양대 영화패 '소나기', '영화마당 우리'등에서 독자적으로 팔미리, 십육미리 소형단편영화를 만들어 상영해 오던 사람들이 함께 모인 때는 1988년 6월 초였다.
  그들은 「오! 꿈의 나라」제작동기로서 "과학적인 세계관에 입각하여 이 땅에 대중의 역동적인 삶과 정서를 영화적인 형상화를 통해 밝고 낙관적인 내일의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진정으로 이 땅의 대중과 호흡하는 민족영화의 건설"이라 내세우고 있다.
  이 영화의 소재의 선택과 시나리오 구성은 공동토론을 통해 결정한 뒤에 홍기선씨와 공수창씨가 맡았다. 연출은 「그날이 오면」,「노란 깃발」등 단편영화로 주목을 받았던 장동홍씨 「공장의 불빛」,「햇살」을 만든 이은씨 그리고 장윤현씨가 공동으로 담당했다. 기획은 '영화마당 우리'의 낭희섭씨가 맡았다.
  이렇듯 힘겨운 공동작업은 자그마치 여섯 달이 지나서야 결실을 맺어 이 영화는 지난해 십이월 이십사일 완성됐다.이 영화가 주목을 끄는 것은 대중의 삶을 리얼하게 규명하는 '민중영화'라는 새로운 장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또한 영화소재로 금기시되었던 5·18 민중항쟁을 다루었고, 기존의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소형영화의 상영이 보다 발전된 형태로 대중적 공간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더불어 반미의식의 고양됨과 병행하여 한국에 있어 미군의 실체를 다룬 점은 시의성에 있어 의의가 있다 하겠다.
  「오! 꿈의 나라」상영과 때를 같이하여 '스탶'의 김태영씨 작품 '황무지'가 곧 상영될 것이라 한다. 이 영화도 5 · 18 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이기에 정부의 실랑이가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가 짚고 넘어갈 것은 5·18 민중항쟁을 다룬 작품의 상영은 좋으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언급했으면 한다. 민중항쟁에서 빚어진 무자비한 폭력성만을 보여주는데 그칠 게 아니라, 이러한 문제들의 발생원인과 여기에서 빚어진 우리 민족의 아픔을 씻을 수 있는 시대적 답안도 함께 제시되어야겠다. 이러한 시대적답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왔던 제 악법들은 철폐되어야겠다. 사실 지금까지 문공부에서는 까다로운 법적 절차를 마련해 현 체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영화를 제작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변했다. 민주화로 가는 도정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기본적인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새로운 보장이 있어야겠다. 이것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화진흥법을 신속히 마련해야겠다.  더불어 구태의연한 자세로 현 시점에서 적응하는 영화인들도 마음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과거와 같이 지침대로 움직이는 정부의 시녀로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시사성 있는 영화제작이 요구된다 하겠다.
  아울러 언론 또한 우리 영화를 불신 경조시 여기는 관념타파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기존 영화법의 문제점도 있으나 언론의 외국 영화에 대한 사대근성은 우리 모를 문화적 종속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 위험이 있다. 언론은 우리영화 발전을 위해 보다 많은 질책과 바람직한 방안을 제시해야 하겠다.
  이젠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현실을 담은 영화풍토가 필요하다 민중과 함께 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는 5·18민중항쟁에 대한 문제 접근에 있어서 광주인의 입장에서는 부족함을 느끼지만, 이러한 영화의 시도들이 계속될 때 역사의 진실은 밝혀질 것이며 민중영화의 장래는 밝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