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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광주문제는 광주문제가 아니다 / 청문회를 통해 왜곡된 광주와 제기된 과제는 무엇인가(국민신문, 1989. …

본문

기자방담
청문회를 통해 왜곡된 '광주'와 제기된 과제는 무엇인가

"광주문제"는 "광주문제"가 아니다



광주청문회가 지난 1월 26·27일을 끝으로 그 재개 여부가 불투명한 채 표류하고 있다. 그동안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청문회, 특히 광주청문회는 진실 규명은 커녕 학살만행을 은폐하고 정당화는 학살자들의 뻔뻔스런 위증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또 하나의 응어리만 맺혀 놓았다. 과연 청문회를 통해 왜곡된 '광주'와 우리 앞에 제기된 과제는 무엇인가. 기자 방담으로 광주의 진실을 내려다 본다.<편집자>

참석기자 / 선대원, 이기형, 이영환, 최민호, 정 경, 정 반, 강희주, 유금랑, 문경희, 이돈삼, 이정화



-. 지난26·27일 양일간 열린 광주청문회는 피해당사자들이 증언대에 나옴으로써 당시 광주학살현장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지극히 일부나마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청문회와는 다른 분위기를 주었습니다. '설마 그랬을까?' 하는 국민들에게 학살의 잔학성, 의도적인 학살만행의 실상이 조금은 전달되기도 했지요. 그러나 여전히 청문회가 오히려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왜곡·축소했다는 분노가 우리 앞에 들끓고 있습니다.
-. 그거야 애초부터 학살의 공범인 노태우 독재 정권 아래에서 청문회가 갖는 한계라고 봅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일부 군인들의 증언태도는 현 정권과 민정당이 광주특위에 임하는 자세 및 처리의 향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봅니다. 광주학살·광주민중항쟁의 문제를 '과잉진압의 불가피성'으로 역설하고 국민들의 의혹을 절름발이 청문회로 적당히 얼버무려 피해자 보상정도로 마무리하려는 것이지요.
-. 민정당 심문자와 입을 맞춘 가해자측 증인들의 강도높은 자기항변과 진실은폐는 마치 개가 거품을 무는 모습이었어요. 마지막 증인으로 나온 안부웅(21일 도청 앞 발포당시 11공수대대장)씨는 앞으로 광주에 발디디기가 힘들 겁니다. 목숨이 귀중하다면요.
-. 어떻든 그 동안 진행된 광주청문회는 의도했거나 아니던 간에 광주문제를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 혹은 '과잉진압이 빚어낸 돌발적 사건'등으로 광주학살의 진상을 철저히 왜곡시켜 버렸습니다.
-. 청문회 진행방식이나 순서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생생한 현장증인들의 피해진술로부터 가해자측 심문이나 학살과 항쟁의 발발원인규명 및 역사적인 자리매김들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된 셈이지요. 그럼으로써 광주청문회는 노정권과 민정당이 의도하는대로 흘러 버린 느낌을 배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 사실 이번 26·27일 청문회가 마지막 청문회라는 이야기가 정가에서 나돌고 있는데 이는 야대여소라는 정국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광주학살에 대한 진상판명이 이루어지지도 안했는데 '특별검사제'이야기가 거론되는 것을 보면 '재신임', '지자제'등 향후 펼쳐질 정국에 각당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광주문제'를 일정하게나마 흥정의 줄다리기 끈으로 활용할 것 같은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는 듯 합니다. 광주청문회로 광주시민은 또다시 죽임을 당하는 슬픔과 분노를 맛봐야만 했다는 게 의식있는 사람들의 중론입니다.
-. 부분적인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지난해 11월부터 계속된 청문회는 학살의 진상, 항쟁의 원인규명, 학살책임자처벌, '미국이 학살을 배후조종했다', 민족적 문제, 광주민중의 영웅적 항쟁의 역사적 의의 등을 하나하나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함으로써 국민들이 커다란 분노와 더불어 청문회의 한계를 실감케 했습니다.
-. 광주 청문회가 사실상 끝나버린 지금 애국대중들 사이에선 반응들이 여러가지로 나오고 있는데요.
-. 광주청문회는 그 출발 당시부터 의식이 높은 국민들 사이에선 우려해왔던 바이고, 그런 의식이 청문회 막바지에 와서 확연한 믿음으로 굳어졌지요. 아무런 '제도적 물리적 뒷받침'이 없이 그냥 청문회가 열리기만 하면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신통한 효력을 발휘할 것 같은 기대는 제도정치의 한계와 광주학살의 주범들이 장악한 정치적 쇼무대라는 청문회에 의해 진상규명과는 달리 왜곡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봅니다.
-. 청문회의 한계는 제도적 장치로서의 한계도 한계지만, 현 정권의 속성상 본질적 한계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국민들은 믿고 있습니다. 즉 올바른 진상규명이란 군부독재의 정권찬탈에 대항한 민중항쟁으로 인정되어야 하는데 5공과 쌍생아인 현정권의 본질상 도저히 응낙할 수 없었다는 점이 중요하지요. 안그래요?
-.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광주청문회가 사안은 분명히 노정권의 치명적 약점임에도 어떤식으로든지 집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던거지요. 그래서 광주민중항쟁 문제를 다루긴 하되 노정권은 자신의 집권이 흔들리지 않을 선에서의 출혈을 하면서 한편으로 힘을 기울였던 것은 '광주진상을 왜곡 축소하고 자신들의 위장된 민주화 정책을 반증하는『정치적 쇼』로' 청문회를 전락시켰다고 보는게 타당할 겁니다.
-. 결국 청문회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광주진상을 정치적인 면에서 일정정도 확산시킨 점 국민들의 인식의 폭을 다소 넓힌 것 이외에 꼽을만한 것이 없다고 해야지요. 또 국민들에게는 조그만 성취감과 함께 현실정치에 대한 무관심도 어느 정도 안겨주었을 수 도 있다는 점이 문제이고, 크게는 광주민중항쟁이 민중의 위대한 자주적 진출로서가 아니라 '과잉진압'이 빚어낸 슬픈 역사의 쪼가리나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문제로 왜곡되어 버린점, 나아가 전두환의 소환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5적중의 핵심이었던 노태우 및 미국의 죄상은 간파해버림으로서 광주항쟁의 참된 의의가 상당히 깨지고 말았다는 점은 앞으로 신중히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 그러한 결과를 빚은 데에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주체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주민중항쟁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과제는 범국민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당리당략에 쏠린 국회의원들에게 떠맡기다시피 하지 않았습니까? 국민들은 거의 청문회의 객체로서 소극적인 모습으로 위치할 뿐이었지요.
-. 물론 국민들이 그랬지요. 하지만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5·18이후 8년 동안이나 광주민중항쟁의 진상규명투쟁을 정열적으로 벌여왔던 애국 민주운동 세력들이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청문회 성토 성명서나 내고 가두집회 몇 번으로 그 지도적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전국적 통일 조직을 결성하여 힘있는 공동투쟁을 통해 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 투쟁을 올바로 풀어나가려는 등의 적극적 태도는 보기 힘

<기사의 불완전한 내용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자료총서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