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미국은 광주사태를 어떻게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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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광주사태를 어떻게 보았나
남찬순(신동아)
미국무성의 「우정있는 충고」
거대한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던 1980년 5월, 미국의 「지미 카터」행정부는 이란에서의 미인질구출작전의 실패로 인한 깊은 좌절에서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고 있던 중이었다. 4월24일 테헤란에 인질로 잡힌 미국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실시된 90명 정예특공대의 작전은 투입요원 8명의 사망자만 낸 어처구니없는 실패작이었다.
이 실패로 전전긍긍하던 「카터」대통령은 급기야 「사이러스 밴스」국무장관을 해임하고 「에드먼드 머스키」상원의원을 새 국무장관으로 임명, 공화당을 상대로 눈앞에 다가온 대통령선거의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종반에 접어든 예비선거 결과 경쟁자인 「에드워드 케네디」상원의원을 누르고 민주당대통령후보 지명이 거의 확실시된 「카터」대통령은 역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거의 확실시된 「로널드 레이건」을 상대로 새로운 전략과 작전을 시급히 마련해야 했다. 미국정가는 대통령 선거 때문에 외국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을 때였다.
5월17일 한국의 계엄령이 전국에 확대되고 「광주사태」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5월18일(미국시간), 미국은 성명을 발표하면서 한국사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공개적으로 표시했다. 이 성명에는 아직 광주사태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며, 계엄령 확대와 이에 따른 한국의 민주화 발전에 우려를 표명한 것이었다.
『우리는 한국전역에 계엄령을 확대한 것과 대학가의 휴교, 그리고 일련의 정치지도자와 학생지도자들의 구속에 심히 충격을 받았다. 정치자유화를 향한 전진은 준법정신과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정부가 현재 취하고 있는 행동이 한국 국내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염려한다. 우리는 우리의 진지한 관심을 한국지도자들에게 분명히 전해 왔고, 최규하 대통령이 일찌기 밝힌대로 헌법개정과 폭넓은 기반의 민간정부 선거를 향한 전진이 즉각 다시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는 우리의 신념을 강조해 왔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이 어려운 시기를 맞아 자제심을 갖고 행동하기를 촉구한다…』
이같은 미국무성의 성명이 있은 다음날(19일, 미국시간) 「호딩 카터」국무성대변인은 국무성 브리핑시간에 전날의 성명이 일요일에 발표되어 알지 못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그 성명문을 다시 한번 읽고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다음은 그 문답중 일부이다.
-한.미 우호관계는 진행중인 정치 자유화를 조건으로 하는 것인가.
『우리의 성명은 우선 당장 우리의 입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대한 우리의 우정은 장기적인 것으로 존속되어 왔다.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는 우리의 우의는 장기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 성명에서 우호관계 발전을 위한 우리의 관심을 분명히 표현했다. 그 성명에 대해 더 이상은 답변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카터」대변인의 설명은 미국무성의 성명이 「우정있는 충고」의 성격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하루가 지난 20일(미국시간) 「머스키」국무장관은 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정치적 격변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현하면서 한국당국자들이 정치적 자유화를 향한 움직임을 촉진시키라고 촉구했다. 한편 광범한 기반과 정치적 지지를 결여한 한 동맹국정부를 미국은 얼마동안 오래 지원할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머스키」장관은 「그같은 질문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다루기는 너무나 민감한것」이라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그는 또 한국정부가 정치자유화의 길에서 이탈한 데 대해 깊이 염려한다.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길 희망한다. 좀더 강한 발언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유용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자신의 완곡한 반응이 한국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미국의 관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계엄령과 정치지도자들의 구속에 주로 관심을 보인 미국의 반응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신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머스키」장관은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기실 미행정부의 당혹감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미국은 「필요한 한」 한국 지원』
이날 「AP통신」은 「카터」행정부가 미국의 대한 정책을 재음미할 잠정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미국관리들이 사적인 견해임을 전제하면서 미국이 대한 안보지원을 삭감하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 관리들은 한국군부의 주도적인 역할에 대한 미국의 불쾌감을 표시하고 한국정치체제에 더 많은 민간인의 참여를 고무하기 위한 방법으로 외교적 수단의 선택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이 통신은 보도했다. 이는 미국의 대한 정책이 구체적인 검토단계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1일(미국시간) 「AFP 통신」은 국무성 관리들의 말을 인용, 「미국은 광주에서의 폭동과 시가전의 심각함에 극도의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전하면서, 수만명의 데모대가 이날 밤 공수부대와 치열한 전투끝에 광주를 장악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병원이 부상자로 넘쳐나고 있으며, 12명의 사망자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면서, 워싱턴측이 한국의 모든 당사자들에게 자제와 신중함을 보이도록 긴급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광주사태는 이미 「워싱턴 포스트」지와 「뉴욕 타임즈」등 미국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지만 미행정부가 광주사태에 관심을 쏟고 있음을 시사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날(한국시간.22일) 동경의 「마이크 맨스필드」주일미 대사 역시 일본외신기자 클럽에서 「머스키」장관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국민의 지지가 결여된 정부를 얼마나 오랫동안 지원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맨스필드」대사는 「필요한 한」 미국은 한국정부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애매한 답변을 했다. 그는 한국을 「슬픈 나라」,「비극적인 나라」라고 묘사하면서,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친구이며 미국은 끝까지 한국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22일(미국시간)에는 광주사태 이후 두번째의 미국무성성명이 발표됐다. 「호딩 카터」 대변인은 이날 국무성의 일일브리핑시간이 시작되면서 광주사태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광주에서 발생한 민간인투쟁에 대해 심히 걱정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관련당사자가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하고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한 대화를 갖도록 촉구한다. 계속되는 소요와 폭력의 비화는 외부세력에 의한 위험한 오판의 모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평온이 되찾아지면, 우리는 모든 당사자들이 최규하대통령이 밝힌대로 정치발전일정을 다시 시작하는 길을 찾도록 촉구할 것이다…』
이 성명은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관심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었다. 이 성명은 미행정부가 백악관에서 고위정책조정위원회(PRC.Policy Review Committee)를 열기 불과 몇시간 전에 나온 것이었다.
「위컴」, 작전권 일부이양
광주사태발발 6일째인 5월22일 백악관에서는 고위정책조정위원회가 열려 한국사태에 대한 종합대책이 검토됐다. 이 회의에는 「머스키」국무장관, 「브레진스키」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브라운」국방장관, 「아마코스트」국무성 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 등 한반도 정책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모든 고위관리들이 대거 참석했다. 약 75분 동안 계속된 이 회의는 「머스키」 국무장관이 주재했다. 이 고위정책조정위원회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정치현안을 다루는 국가안보회의(NSC National Security Council)의 산하기구다. 고위정책조정위원회는 국가안보회의의 산하조직인 특별조정위원회(SCC. Special Coordination Committee)와는 달리 국무성의 최고참 참석자나 직접 관련부서의 최고참자가 사회를 맡도록 되어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의 「위기상황」에 대해 미행정부는 일관된 정책을 취하고, 주장이나 의견을 달리하는 혼선을 피하자는데 의견을 모으면서, 우선 한국의 안보를 위한 대외적 과시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결정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소식통을 인용, 이 회의에서 결정된 미국의 정책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 회의에서는 2단계의 미국정책을 결정했다. 첫단계로 광주사태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안보와 공공질서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중용을 지키도록 충고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로 광주사태가 가라앉으면 좀더 개방적인 대의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다시 노력토록 촉구한다는 것이다. 그같은 촉구는 국회와 정당, 그리고 기타 민간지도자들을 제외시키려는 한국고위장성들의 시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 고위정책조정위원회와 관련, 미관리들은 한국군부지도자의 민간정부구성을 종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를 삭감할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한국군부지도자들의 민주통치를 위한 조치만이 장기적인 정치 안정의 보장책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이날 결정된 미국의 대한 정책 테두리는 그 이후의 정책에 일관된 원칙으로 적용된다.
이보다 앞서 21일(미국시간) 주한 미대사관측은 주한미국인들에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여행을 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이같은 대사관측의 당부는 어느 나라에서나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을 경우 상례적으로 나오는 것이었으나, 주한미대사관은 4.19혁명 이후 처음으로 「외출자제령」을 내린 것이었다. 주한미군들에게도 「외출금지령」이 내려졌음은 물론이다. 미국방성의 「토마스 로스」대변인은 22일(미국시간) 주한미군들에 대한 외출금지령을 발표하면서, 미군이나 그 군속이 피해를 받은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당시 광주시에는 미국 일본 프랑스 등 모두 12개국의 외국인 2백7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외국인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국내신문들은 보도했다. 이들 외국인들은 대부분 미국평화봉사단원과 선교사들이었는데, 미국인이 1백34명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 13명, 일본 9명, 영국 3명 기타 48명이었다고 보도했다.
「로스」대변인은 또 이날 처음으로 「존위컴」주한유엔군사령관겸 한미영합사령관이 광주사태의 진압을 위해 일부 부대에 대한 작전권을 한국측에 이양했다고 밝혔다. 「로스」대변인은 작전권이 이양된 부대는 휴전선 방위를 맡고 있는 부대가 아니라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한국의 장성들이 광주사태 진압을 위해 일반예비병력중 4개연대의 병력을 요청, 미국측의 허락을 받았다고 보도했다(이 신문은 작전권이 이양된 부대가 5월 30일까지 「위컴」의 지휘권아래 들어오지 않았다 고 보도했는데, 언제 다시 「위컴」의 지휘권하에 들어 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편 「위컴」사령관은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3일전인 14일, 휴가를 이용해 귀국, 워싱턴에 있었다. 당시 매스컴은 「위컴」 사령관의 귀국이 한반도주변정세 및 한국내의 사태 등에 대해 워싱턴당국과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27일까지 미국에 머물려던 당초의 계획을 취소하고 18일 오후 급거 서울로 돌아왔다.
미국 광주사태에 「중립」 유지
23일(미국시간) 워싱턴에서는 한국교민 약 50여명이 군부통치에 대한 반대구호를 외치며 데모를 벌였다. 이들은 미국무성의 정문을 막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미국은 군사정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마침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부통령이 국무성을 방문중에 있었다. 「무바라크」 부통령은 공식방문 일정을 마치고 「머스키」국무장관과 오찬을 하기 위해 국무성을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한국교민 데모대가 국무성 정문을 막고 있자 경비병들이 이들을 해산시켰고, 「무바라크」부통령 일행을 태운 리무진은 아무련 어려움 없이 국무성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데모대 바깥이 소란한 가운데 국무성 안에서는 「카터」대변인이 기자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는 광주사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이미 지난 며칠동안 발표한 것 외에는 아무런 다른 할 말이 없다. 더 첨가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대답을 자제했다. 또다른 한고위관리는「위컴」 사령관이 일부 군의 작전권을 이양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위컴」의 결정을 옹호하기도 했다. 이 관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 한 「위컴」사령관이 그 요구를 거절할 다른 방도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당시에 가장 시급한 일로 생각했던 것은 우선 광주사태가 진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점은 22일의 성명에서도 언급이 됐으며, 26일 다시 확인됐다.
「마이클 아마코스트」 미국무성 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는 이날 ABC방송의 특별뉴스시간에 출연, 「한국 사태에 대한 미국의 기본입장은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요구도 경청해야 하고, 질서와 안보확립도 해야 한다는 것」이라 밝히고, 「지금의 상황에서는 질서확립에 중점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코스트」 부차관보는 또 「북한이 광주사태를 이용하지 않을까 두려우나 현재까지 그들이 직접 관련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한국정부나 광주사태관련자 어느 쪽으로부터도 중재요청을 받은 바 없으며, 타국의 국내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고 미국의 불간섭정책을 분명히 했다.
광주사태의 「진정」을 우선적으로 바라면서도 그것이 한국국내문제라는 이유를 들어 적극적인 행동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정책은 뚜렷이 드러난다.
즉 국무성의 「토마스 레스턴」대변인은 다음날인 27일 「광주사태」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분명히 한국국민들의 국내문제인 광주사태와 같은 상황에 외국으로서 미국이 개입하는 것은 어려운일」이라고 말했다.
「레스턴」대변인 역시 광주사태 관련자들부터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 한국지도자들이 사태협상을 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일부 보도를 부인했다. 「레스턴」대변인은 미국이 누차 국민억압 정책에 위험성에 대한 견해를 한국정부에 알려왔다고 말하고, 「그러나 극도로 긴장된 상황의 한가운데에 들어가는 것은 유용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레스턴」대변인의 이같은 발언은 미국이 광주 사태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우회적인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미국은 한국당국의 조치에 대해서는 큰 불만을 갖고 있지만, 광주사태에 대해서는 일종의 「중립」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레스턴」대변인은 이어 「광주사태가 그같은 사태까지 이른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비교적 평온을 되찾은 지금, 우리는 현안들이 재화협의 정신으로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 의해 이야기되어지고 광범한 지지를 받는 민간정부의 수립을 위해 전진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한국 군부에 「불쾌감」표명
한국군부의 실권이 표면에 드러나자 이에 고심중이던 미행정부는 마침내 5월28일 「머스키」국무장관과 국무성 각 지역담당자 30여명이 참석한 주례 분석 보고회의에서 이를 주요의제로 등장시켰다. 원래 이 회의는 「밴스」국무장관 시절부터 마련된 것으로, 국무성 각 부서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로의 현안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자리. 그러나 이날 회의는 거의 하루종일 계속됐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문제 토의로 보냈다. 취임 20여일이 지난 「머스키」장관에게는 한국문제가 처음으로 등장한 난제였기 때문에 관련이 없는 부서관리들도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히도록 했다.
이 회의와 관련한 28일자 「뉴욕 타임즈」지의 해설기사는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회의 내용을 전하고 있다.
『「머스키」장관은 이 회의 서두에서 한국의 위기와 관련된 인권문제의 해결과 민주화추세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홀부르크」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한국군부가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의 표면적인 움직임을 보고했다. 그러나 「홀부르크」차관보는 사태가 더욱 분명해질 때까지 한국군부를 비난하는 어떠한 성명도 발표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글라이스틴」주한미국대사와 「위컴」한미연합사사령관이 한국군부인사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미국은 민간인과의 대화를 갖고 국민의 지지 기반을 얻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절대로 중요한 것으로 믿는다는 사실을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미국이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전에 이같은 얘기를 그들이 새겨듣도록 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군부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정보가 국무성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정보가 국무성이 만족할 만큼 완벽하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머스키」장관이 왜 그렇지 못했느냐고 묻자, 「홀부르크」차관보는 광주사태에 지나친 신경을 쓴 나머지 좀더 광범위한 의문들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결국 이 회의는 한국군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더 두고 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만일 군사위원회같은 것을 만들어 독재를 영구화시키려고 한다면 미국은 비판적이 되어야 할 것이고, 반면 민간정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미국의 경고와 의도를 받아들인다면 찬양을 해야 할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이 회의에 참석한 한 관리는 한국의 현 상황이 「팔레비」시절의 이란 상황과 닮은 점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만일 미국이 압력을 가한 결과로 한국정부와 사회가 무정부상태로 뒤바뀐다면 유사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그는 이란과는 달리 북한의 위협 때문에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친미적이고 군부나 시민들 모두 미국의 지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즈」지는 계속해서 미국의 고민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의 안보는 이 지역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3만9천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고,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미국은 대한지원을 주저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전두환 장군과 그의 지지자들이 군사적 권력을 강화한다면 사회와 군부 내부에서 모두 심각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의 안보가 약화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손상시킴이 없이 어떻게 군부통치를 막을 수 있는가」
그러나 한국정정은 미국의 희망이나 고민에 아랑곳없이 「계획된」 진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5월31일(한국시간) 한국당국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신설발표가 있자 미국무성은 몇 시간후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사태에 대한 비상검토회의를 가졌다. 당초 미행정부는 백안관에서 국가안보회의의 고위정책조정위원회(PRC)를 열 예정이었으나 계획을 바꾸어 국무성에서 「홀부르크」차관보 주재 아래 대책회의를 열고 종합적인 대처방안을 협의한 것.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정부가 취한 조치들을 검토했을뿐 최종적인 결론을 얻지는 못했으며, 어떤 공개성명도 발표되지 않았다. 다만 회의참석자들은 한국사태의 진전을 지켜보면서 신중하고 단계적으로 대처한다는 기본방침을 세운 것으로만 알려졌다. 이같은 기본방침은 28일의 주례분석보고회의의 결과를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광주사태 이후 그해 5월말까지 미국이 취한 정책은 군사적인 대북시위 외에는 이처럼 우려와 희망, 그리고 한국군부에 대한 일종의 「불쾌감」 표명에 그쳤다. 어떻게 보면 소극적이고 신중한 대한정책을 추구했다는 해석도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정책의 배경에는 당시 상황에 대처하는 미국의 현실주의적 이해관계가 깊이 깔려 있었다.
미국, 한국의 안보와 민주화 추구
당시 미국의 대한정책은 두가지 큰 줄기, 즉 한국의 순탄한 민주발전을 위한 촉구와 이 민주발전을 뒷받침할 안보확보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이같은 미국의 두가지 대한정책 골격은 광주사태의 와중에 발표된 미국무성이나 국방성의 성명에도 자주 언급이 됐지만, 1980년 6월1일 「카터」대통령의 CNN(Cable News Network)TV와의 회견에서도 거듭 확인이 됐다.
「카터」대통령은 이 회견에서 「한국에는 미국의 정책에 항상 영향을 미쳐온 두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어왔으며,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공격, 즉 1차적으로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한국의 안보를 확보하는 것이고, 둘째는 민주화과정을 고취시키고 인권을 보호하며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일이다」라고 미국의 대한정책 골격을 밝혔다.
광주사태가 악화되자 미국이 가장 신속히 취했던 조치는 북한의 남침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는 일이었다. 한국의 민주발전을 위한 직접적이고도 물리적인 수단의 영향력행사는 미국측으로 봐서 상당히 신중을 기해야 할 사안이었다. 그같은 직접적인 수단의 행사는 자칫하면 누가 정권을 잡아도 반공.친미정책을 취할 한국당국으로부터 유익하지 못한 반작용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많았다.
이에 비해 한국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적 조치는 한국국민과 정부로부터 아무런 「직접적인 응전」을 유발시킴이 없이 다목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북한과 대치해 있는 한국의 특수한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해 볼 경우 안보를 위한 군사적 조치는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중 한 사람의 반대도 없이 복잡한 외교정책결정과정을 쉽게 통과,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미국의 군사적인 조치는 신속한 것이었다. 22일 미국은 한국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그들의 확고한 결의를 재확인하고 이에 대한 실증을 보이기 위해 오끼나와에 있는 조기경보기 2대와 필리핀의 수빅만에 정박중인 항공모함 코럴시호를 한국근해에 긴급출동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코럴시호는 인도양과 서태평양해역에서 4개월간의 작전임무를 마치고 캘리포니아로 귀항중 필리핀의 수빅만에 들르고 있었다.
5만톤급인 코럴시호는 50대 이상의 전투기와 폭격기 등을 탑재한 항공모함으로 한국 남해부근에 주둔해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이 항공모함은 6월 3일 철수). 조기경보기 E3A 두대는 오끼나와의 가데나 미공군기지에 도착, 대북한 정찰임무에 돌입했다.
미국, 북한의 남침을 경고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는 북한이 남침을 해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사실을 한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 보다 앞서 5월 18일 발표된 미국무성성명은 「미국은 한국의 현 상황을 이용하려는 어떠한 외부적 기도도 체결된 조약의 의무규정에 따라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헤럴드」국방장관은 특별인터뷰를 통해 한반도에서 치열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두달동안은 그 전쟁을 수행할만한 충분한 전략물자가 준비되어 있다고 공언하면서, 대북경고를 했다.
이와 때맞추어 「뉴요크 타임즈」지는 미국이 지난 30년동안 유지해온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우위의 이른바 「스윙전략」을 포기했다고 특종보도했다. 스윙전략은 유럽에서 소련의 공격이 있을 경우 태평양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유럽쪽으로 이동배치한다는 전략. 스윙전략의 포기는 25척의 주요함정을 거느리고 있는 7함대와 3만9천명의 강력한 주한미군, 오끼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1개 해병사단과 공군, 그리고 12개 전투 기중대를 주력으로 한 태평양주둔 미군을 항구배치해 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스윙전략포기 결정은 전적으로 한국사태와 연관되어 나왔다고는 볼 수 없으나 미국의 대한공약을 재다짐하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밖에도 미국 관리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한국방위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었다.
당시의 남북한대치상황은 어떠했는가. 미국은 광주사태를 악이용해 기습도발을 하려는 북한측의 계획을 탐지하고 그와 관련된 신빙성있는 정보를 획득하고 있었는가.
최근 윤성민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5.17비상계엄령을 확대할 당시의 북한동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북괴는 혼란한 국내정세에 고무되어 대규모 기갑부대를 전방으로 추진 배치하고,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무력부 상황실에 나와 사태추이를 주시하고, 또한 인민군 총참모장 오극렬은 최전방인 개성에 나와있는 등 군사적 긴장상태를 고조시키고 있어 국내외적으로 국가안보와 국민생존권이 크게 위협되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북괴가 곧 남침을 감행할 것이라는 첩보로 인해 건국 이래 최대의 난국을 맞게됨으로써…」
사실 광주사태발발 이틀전인 15일 판문점 동쪽 8백m지점의 공동경비구역에서 미군장병들과 수를 알 수 없는 북한군과의 교전이 있었다. 유엔군측 발표에 따르면 북한군들은 이날 새벽 1시반경 아군의 모GP 전방 20m지점까지 침투했으나 조명지뢰 폭발로 침투기도가 발각되어 도주하면서 아군을 향해 자동화기 40여발을 발사하고 도주했다는 것. 이 보다 앞서 12일 밤에도 이 지역에서 총격전이 있었으며, 그해 들어 여섯차례나 도발을 했다는 것이었다.
미. 『즉각남침 정보 없어』
그러나 당시 미국측은 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방위공약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북한측의 남침준비에 대해서는 아주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의 모든 군사적 조치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한 「사전경고」의 뜻이 다분히 담겨있다.
「카터」 국무성대변인은 19일 낮 국무성 브리핑에서 이렇게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호딩」, 한국에 대한 외부의 어떤 위협 조짐을 발견했는가.
「우리는 이 순간에 북한군의 어떠한 비정상적인 이동조짐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만 얘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이 즉각적인 남침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지난주 한국측의 보도가 이를 시사했을 때 당신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그 당시 우리가 활용했던 정보로는 그같은 보도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 당신은 아직까지 계속해서 그같은 답변을 얘기하고 있는가.
「그렇다」
-아니다. 지금 당신은 좀더 긍정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 지난주 당신은 확인을 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분명히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증거가 없다」
-근본적으로 같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우리는 북한이 한국에 대한 즉각적인 공격준비를 하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AEP통신」 역시 21일 국무성의 한 고위관리가 북한측이 한국의 최근 혼란을 이용해 남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증거를 이용해 남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증거를 미국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하면서, 그러나 미국은 휴전선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이 관리가 덧붙인 것으로 보도했다.
22일 발표된 미국무성의 두번째 성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호딩 카터」대변인은 「미국은 한국의 불안한 정정을 이용하려는 북한측의 어떠한 기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하겠다. 일주일 전 한국에서도 반정부데모가 발생한 이래 북한군이 어떠한 비정상적인 군의 이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미국이 강경한 대북한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북한의 위험스러운 오판을 방지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불안한 정정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중공당주석이자 수상인 화국봉이 27일 중국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동경을 방문했다.
화국봉은 그의 일본방문 이틀째에 「북한은 한국의 불안한 정정, 특히 광주사태를 악용해 침략을 개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아주 신빙성 있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화국봉이 갖고 있는 정보가 어떤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주목할 만한 발언이었다. 중공은 자신들의 경제발전과 미국과의 유대를 위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원치 않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었지만, 동경에서의 화국봉의 발언은 중공이 친북한공산국가라고 하더라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날 워싱턴에서도 중공의 고위관리가 화국봉과 똑같은 발언을 했다. 친미군사지원장비 구매를 중심으로 한 미.중공간 군사협력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중이던 경표중공부수상겸 당중앙군사위원회 서기장은 「머스키」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남침하려는 북한의 군사적 작전이 지적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경측이 평양측으로부터 보장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28일 미하원 군사조사위원회는 「사뮤엘 스트레튼」의원의 사회로 비공개 청문회를 열고 미국방정보국(DIA)의 동아시아 및 태평양담당인 「찰스 데소니에」로부터 최근 한국정정에 대한 정세보고를 들었다. 이 위원회에서는 주로 북한의 동향과 그에 따른 한반도안보문제가 중심적으로 다루어졌다. 「데소니에」도 역히 한국사태로 인한 북한측의 특별한 군사적 움직임은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뉴욕 타임즈」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6월 3일 북한과 중공이 한국의 국내불안을 악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장교들은 화력이 우세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북한군이 한국의 정치 경제 중심부를 장악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즈」지는 북한이 서울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 후 평화협상을 하고 월맹이 취한 방식대로 한국이 붕괴되어 그들의 수중에 떨어지도록 기다릴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관리들은 소련으로부터는 북한의 남침을 고무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소련은 아프리카에서 쿠바군을 이용하는 것처럼 북한을 고무시켜 남침을 유도할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북한측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하고, 한 미군장교가 「북한군은 비상상태에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북한에 대한 한미간의 이견
광주사태당시 북한의 기습공격준비 여부에 대한 한국정부와 미국정부 사이의 시각에는 표면상 이같은 차이가 있었다. 북한이 광주사태 등 한국 국내의 소요를 이용해 남침계획을 세웠는지는 최고급 정보를 다루고 있는 통치자나 그 주변인물 외에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북한이 정치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한국의 불안한 정정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며, 이를 「활용」하려고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과거의 경험이나 오늘의 현실로 봐서 누구나 할 수 있다.
이점은 「아마코스트」미국무성차관보가 광주사태 이후인 6월 25일 미하원 외무위원회 아시아문제소위원회에서 「북한이 이 사태를 틈타서 그 자체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고 촉구할지도 모른다」고 밝혔듯이 미국도 우려했던 바였다.
「AFP통신」도 북한의 평양방송이 20일부터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한국국민들이 계엄령철폐를 위한 봉기를 하도록 선동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전 한국이 혼란의 와중에 휩싸여 있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측의 분석과 보도는 윤성민국방장관이 「곧 남침을 할 것이라는 첩보…」라고 밝힌 것과는 어감상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어느 것이 정확한 분석이든 간에 미국이 한국방위에 대한 확고한 결의를 거듭 밝히고 북한측에 경고를 보내면서도 「북한의 기습남침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되풀이 공언한 데는 어떤 정책적인 고려와 의도도 깔려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한국의 통치자가 북한의 남침문제를 정권유지적인 차원에서 이용했던 과거의 선례를 미국은 알고 있으며, 순수한 정보분석의 차원을 벗어난 과장된 발표가 한국국민들의 감정에는 물론 한반도주변의 국제정세에 결코 유익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 나름대로 종합분석한 결과를 사실대로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한관과 당시 한국 통치자들의 대북한관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며, 똑같은 정보라도 접근하는 방식과 분석이 다를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의 한계
광주사태 직후 미국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지만, 한국내부 상황을 그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는 그 수단이 제한되어 있었고, 스스로의 이해타산에서 연유된 한계가 있었다.
먼저 미국이 당시 한국정국에 대해 어떤 구체적 압력조치-성명이나 기타 구두 또는 외교적인 것이 아닌-를 취했는지 알아보자.
미국이 한국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구체적 제재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6월12일(한국시간) 최규하대통령이 「81년 6월까지 정권이양을 하고 이에 따른 개헌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등의 정치일정을 발표하고 난 직후였다. 미국은 한국사태를 예의분석해오다가 한국군부가 계속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은후의 일인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지가 6월12일(미국시간) 보도한 미국측의 대한제재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미국해외민간투자공사(OPIC)회장 「브루스 레윌린」의 방한이 6월 초로 계획되어 있으나 미국이 신규투자를 장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그의 방문은 무기한 연기됐다.
② 두건의 대한차관(아시아개발은행 즉 ADB의 인천 항만시설을 위한 5천4백만달러와 국제금융공사 즉 IFC 의 1천만달러)에 대한 투표가 미국의 요청으로 연기됐다.
③ 한국외무부 전략입안관리와 미국무성 정책입안관리의 상례회담이 분위기가 정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연기됐다.
④ 고위 미국관리의 한국방문은 「홀부르크」미국무성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가 주재하는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존 모어」미수출입은행장이 이끌고 있는 경제협력그룹의 방한일정은 한국경제를 더욱 손상시킬 서울 금융가의 걱정을 줄이기 위해 계획대로 진행된다.
또다른 관리들은 미국이 79년 약속했던, F4 전투기와 F5E전투기의 대체용인 F16전투기의 판매문제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취한 이같은 조치들은 당시 한국정가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충분한 압력수단이 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미국은 이보다 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할 수는 없었는가. 미국은 한국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친미적 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미국의 우방국으로 있게 될 것이라는 확고한 판단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5월19일 「카터」대변인의 기자들과의 문답, 5월22일 「맨스필드」대사의 발언 등 참조)
이점은 당시 미국이 한국정국의 흐름을 전환시키기 위한 제재수단을 동원하는데 스스로 1차적인 한계를 설정해 놓는 요인이 된다. 한미간의 근본적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단의 동원은 자제할 수 밖에 없었다.(5월28일자 「뉴욕 타임즈」 참조).
또 우방국인 한 나라의 기반을 흔들어 놓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결과적으론 미국의 이익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이 반미, 공산주의 노선으로 등을 돌렸던 그라나다와 오늘날 니카라과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정책을 그대로 구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르코스」대통령의 독재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하나의 좋은 예를 제공해준다. 필리핀은 어디까지나 친미국가이며, 국내공산세력의 위험을 안고 있다. 미국은 태평양전략에 필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군사기지를 필리핀에 두고 있다.
5월22일자 「뉴욕 타임즈」는 당시 미국이 취할 수 있었던 대한정책 선택의 한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현 시점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대변인들은 「글라이스틴」대사나 「위컴」사령관 등 한국에 있는 미국관리들의 고충은 타협수단(bargaining levers)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관리들은 3만9천명의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하거나 경제적인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위기상황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로 취급하고 있다. 미국이 당면한 또다른 문제는 최규하대통령이 군부인사를 퇴역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위컴」장군의 명령권과 한국군부의 명령권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없다. 일부 미국인들은 60만 한국군중 절반 이상이 미국의 장악하에 있다고 보지만, 서류상에 그렇게 되어 있을 뿐이다」
한 기자가 한국에 대한 조치를 어떻게 취할 것이냐고 묻자 한 관리는 오히려 「좋은 생각있으면 말해 달라」고 하더라는 보도도 있었다.
한국군부, 미국의 한계 인식
「AFP통신」은 29일 미국은 한국지도자들이 좀더 민주적인 방식을 취하는 것이 더 이상의 사태악화를 막는 길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대한관계를 단절할 계획은 하고 있지 않다고 국무성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그대신 서울에 대한 외교적 압력을 가중시켜 민간정부 구성을 촉구할 것이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이 통신은 미국 지도자들이 새로운 사태가 야기될 가능성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압력전술이 제한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미국이 1억3천만달러의 군사원조를 삭감하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같은 군사원조 삭감방법은 한국이 전략적으로 미국에 대해 상호적 이해관계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위험스러운 부메랑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나아가 5월 30일자 한국관계 사설에서 이란 니카라과 한국에서처럼 민간폭동이 모두 미국전략상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미국이 「팔레비」이란 왕에게 더 진전된 민주주의를 촉구하자 더욱 권위주의적 국가가 됐고, 좀더 자유로운 정부를 수립한다는 명목으로 「고딘 디엠」정권의 전복을 승인하여 월남전을 초래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개발도상국들은 자유세계대열에서 추방당하지만 않는다면 훨씬 더 민주주의적 방향으로 전진해나갈 것이라고 미국의 신중한 태도를 촉구했다. 미국은 일종의 방관자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조이나 이같은 논조의 배경에는 한국사태에 대해 「미국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대한정책의 한계성이 깔려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월 5일자 「뉴욕 타임즈」는 특히 한국의 군부지도자들이 이같은 미국정책의 선택 한계성을 잘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달리 표현하면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대한정책의 한계를 자세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군부는 자신들이 계획한대로 정국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서울의 군부는 미국이 대통령선거에 정신을 쏟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그들은 또 미국이 지역안보에 큰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3만9천명의 주한미군을 포함해 군사원조를 줄이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 또한 그들은 호황기의 한국경제에 투자한 그들의 자본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어 경제적 제재조치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 「5·17 사전에 몰랐다」
어떤 정치적 변혁기에 다른 나라가 그 변혁의 흐름의 주도하는 데는 또다른 한계가 있다. 타국이 물리적인 수단으로 그 흐름을 주도하지 않는 한 그 타국은 타국의 입장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태를 예의분석하고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변혁의 작품을 만드는 주역이 될 수는 없다.
「아마코스트」부차관보는 6월25일 미하원 외무위원회 아시아문제소위원회의 한국문제청문회에서 개회벽두 행한 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으로 파벌주의가 전해 내려왔고, 또 솔직히 말해 정치적 타협기록이 별로 없는 한 사회에서 선출된 민간정부가 질서있게 발전하는 데는 첫 출발부터 두가지 커다란 위험이 있었다. 그 하나는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학생 및 일부 반정부집단들이 성급한 행동으로 체제 내 다른 계층들의 용인범위를 넘어서, 그리고 외부 세력의 개입 우려를 낳는 혼란을 야기할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과도정부의 비능률, 그리고 민주정치의 무질서상태를 참지 못한 군부의 일부가 사회 내의 질서와 기강을 회복하기 위해 실권을 자기들 손아귀에 넣을지도 모른다는 거이었다. 이 두가지 위험은 모두 현실로 드러났다……12월 12일부터 시작해 육군 내의 한 집단은 마침내 5월17일의 계엄령전국확대와 정치활동규제에 이르게 된, 단계적 조치들을 취했다..... 미국은 이들 행동의 어느 것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지 못했고 또 지지를 표한 바도 없다」
미국이 예측과 분석은 하고 있었지만, 정작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따돌림」을 받았다는 얘기다. 이같은 「아마코스트」부차관보의 발언은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측이 이례적으로 발표한 성명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주한미국대산관측은 5월30일 미국이 5.17계엄령 확대조치를 사전에 알았다는 일부 한국언론의 보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성명문을 서울의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 이 성명은 12.12사태를 포함한 모든 정치적 행동들이 미국도 모르게 진행됐다고 주장하면서, 5.17계엄령선포의 경우 「글라이스틴」주한미국대사는 계엄령 확대를 위한 각의가 열리기 30분 전에야 그 내용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 성명은 이어 일부 언론들이 「글라이스틴」대사가 5월23일 한국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5.17계엄령을 「이해」 또는 「승인」한 것처럼 시사했으나 이 자리에서(한국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계엄령과 시위학생들에 대한 거친 조치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주장했다. 「글라이스틴」대사는 또 정치지도자의 구속과 국회해산 등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광주사태 당시 미국기자들도 미국이 한국정국의 흐름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방관자」적 상태에 있나 하는 의문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카터」대변인은 18일 첫 대한성명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 한국측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느냐는 집요한 질문을 받았다. 다음은 기자들과의 1문1답 내용.
-미국은 미국의 관심을 한국지도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분명히 밝히고 있는가 「글라이스틴」대사가 권력에서 밀려난 민간정부지도자들과 협상을 하고 있는지, 또는 당장 모든 것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군부지도자들과 직접 얘기를 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특별한 흥미가 간다.
『「글라이스틴」대사의 접촉수준은 내가 얘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과 관련된 이 메세지에 가장 적절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한 측근은 그러나 『「글라이스틴」대사는 무척 당황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우선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공식적이든 사적이든 서로 만나 미국의 입장과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한 듯 했다.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채널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미국은 정말 사태를 몰랐는가
미국측이 당시 한국군부가 취한 조치를 정말 사전에 몰랐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미국측의 설명이나 해명만 듣고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시대의 중요한 정치사는 대부분 두꺼운 베일에 가려 만들어지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이고 보면 다른 나라가 한 주권국가의 정치적 이면을 속속들이 아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더구나 미국이 그 이면을 샅샅이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인지할 수 있는 여러가지 한계가 있었다. 이 한계를 미국은 어떻게 수용했고 당시의 한국정치무대에 어떻게 반영시켰느냐하는 문제는 한.미 두나라의 복잡미묘했던 정책결정과정과 환경을 백일하에 드러내놓고 대비 검토해보아야 어느 정도 해답이 나올 것 같다. 그래야만이 미국이 그때의 한국정국의 흐름을 「묵인방관했느냐」 「지지했느냐」 「적극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느냐」하는 문제의 실마리나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찬순(신동아)
미국무성의 「우정있는 충고」
거대한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던 1980년 5월, 미국의 「지미 카터」행정부는 이란에서의 미인질구출작전의 실패로 인한 깊은 좌절에서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고 있던 중이었다. 4월24일 테헤란에 인질로 잡힌 미국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실시된 90명 정예특공대의 작전은 투입요원 8명의 사망자만 낸 어처구니없는 실패작이었다.
이 실패로 전전긍긍하던 「카터」대통령은 급기야 「사이러스 밴스」국무장관을 해임하고 「에드먼드 머스키」상원의원을 새 국무장관으로 임명, 공화당을 상대로 눈앞에 다가온 대통령선거의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종반에 접어든 예비선거 결과 경쟁자인 「에드워드 케네디」상원의원을 누르고 민주당대통령후보 지명이 거의 확실시된 「카터」대통령은 역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거의 확실시된 「로널드 레이건」을 상대로 새로운 전략과 작전을 시급히 마련해야 했다. 미국정가는 대통령 선거 때문에 외국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을 때였다.
5월17일 한국의 계엄령이 전국에 확대되고 「광주사태」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5월18일(미국시간), 미국은 성명을 발표하면서 한국사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공개적으로 표시했다. 이 성명에는 아직 광주사태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며, 계엄령 확대와 이에 따른 한국의 민주화 발전에 우려를 표명한 것이었다.
『우리는 한국전역에 계엄령을 확대한 것과 대학가의 휴교, 그리고 일련의 정치지도자와 학생지도자들의 구속에 심히 충격을 받았다. 정치자유화를 향한 전진은 준법정신과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정부가 현재 취하고 있는 행동이 한국 국내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염려한다. 우리는 우리의 진지한 관심을 한국지도자들에게 분명히 전해 왔고, 최규하 대통령이 일찌기 밝힌대로 헌법개정과 폭넓은 기반의 민간정부 선거를 향한 전진이 즉각 다시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는 우리의 신념을 강조해 왔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이 어려운 시기를 맞아 자제심을 갖고 행동하기를 촉구한다…』
이같은 미국무성의 성명이 있은 다음날(19일, 미국시간) 「호딩 카터」국무성대변인은 국무성 브리핑시간에 전날의 성명이 일요일에 발표되어 알지 못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그 성명문을 다시 한번 읽고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다음은 그 문답중 일부이다.
-한.미 우호관계는 진행중인 정치 자유화를 조건으로 하는 것인가.
『우리의 성명은 우선 당장 우리의 입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대한 우리의 우정은 장기적인 것으로 존속되어 왔다.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는 우리의 우의는 장기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 성명에서 우호관계 발전을 위한 우리의 관심을 분명히 표현했다. 그 성명에 대해 더 이상은 답변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카터」대변인의 설명은 미국무성의 성명이 「우정있는 충고」의 성격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하루가 지난 20일(미국시간) 「머스키」국무장관은 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정치적 격변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현하면서 한국당국자들이 정치적 자유화를 향한 움직임을 촉진시키라고 촉구했다. 한편 광범한 기반과 정치적 지지를 결여한 한 동맹국정부를 미국은 얼마동안 오래 지원할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머스키」장관은 「그같은 질문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다루기는 너무나 민감한것」이라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그는 또 한국정부가 정치자유화의 길에서 이탈한 데 대해 깊이 염려한다.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길 희망한다. 좀더 강한 발언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유용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자신의 완곡한 반응이 한국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미국의 관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계엄령과 정치지도자들의 구속에 주로 관심을 보인 미국의 반응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신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머스키」장관은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기실 미행정부의 당혹감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미국은 「필요한 한」 한국 지원』
이날 「AP통신」은 「카터」행정부가 미국의 대한 정책을 재음미할 잠정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미국관리들이 사적인 견해임을 전제하면서 미국이 대한 안보지원을 삭감하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 관리들은 한국군부의 주도적인 역할에 대한 미국의 불쾌감을 표시하고 한국정치체제에 더 많은 민간인의 참여를 고무하기 위한 방법으로 외교적 수단의 선택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이 통신은 보도했다. 이는 미국의 대한 정책이 구체적인 검토단계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1일(미국시간) 「AFP 통신」은 국무성 관리들의 말을 인용, 「미국은 광주에서의 폭동과 시가전의 심각함에 극도의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전하면서, 수만명의 데모대가 이날 밤 공수부대와 치열한 전투끝에 광주를 장악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병원이 부상자로 넘쳐나고 있으며, 12명의 사망자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면서, 워싱턴측이 한국의 모든 당사자들에게 자제와 신중함을 보이도록 긴급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광주사태는 이미 「워싱턴 포스트」지와 「뉴욕 타임즈」등 미국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지만 미행정부가 광주사태에 관심을 쏟고 있음을 시사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날(한국시간.22일) 동경의 「마이크 맨스필드」주일미 대사 역시 일본외신기자 클럽에서 「머스키」장관과 마찬가지로 「미국은 국민의 지지가 결여된 정부를 얼마나 오랫동안 지원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맨스필드」대사는 「필요한 한」 미국은 한국정부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애매한 답변을 했다. 그는 한국을 「슬픈 나라」,「비극적인 나라」라고 묘사하면서,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친구이며 미국은 끝까지 한국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22일(미국시간)에는 광주사태 이후 두번째의 미국무성성명이 발표됐다. 「호딩 카터」 대변인은 이날 국무성의 일일브리핑시간이 시작되면서 광주사태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광주에서 발생한 민간인투쟁에 대해 심히 걱정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관련당사자가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하고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한 대화를 갖도록 촉구한다. 계속되는 소요와 폭력의 비화는 외부세력에 의한 위험한 오판의 모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평온이 되찾아지면, 우리는 모든 당사자들이 최규하대통령이 밝힌대로 정치발전일정을 다시 시작하는 길을 찾도록 촉구할 것이다…』
이 성명은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관심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었다. 이 성명은 미행정부가 백악관에서 고위정책조정위원회(PRC.Policy Review Committee)를 열기 불과 몇시간 전에 나온 것이었다.
「위컴」, 작전권 일부이양
광주사태발발 6일째인 5월22일 백악관에서는 고위정책조정위원회가 열려 한국사태에 대한 종합대책이 검토됐다. 이 회의에는 「머스키」국무장관, 「브레진스키」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브라운」국방장관, 「아마코스트」국무성 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 등 한반도 정책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모든 고위관리들이 대거 참석했다. 약 75분 동안 계속된 이 회의는 「머스키」 국무장관이 주재했다. 이 고위정책조정위원회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정치현안을 다루는 국가안보회의(NSC National Security Council)의 산하기구다. 고위정책조정위원회는 국가안보회의의 산하조직인 특별조정위원회(SCC. Special Coordination Committee)와는 달리 국무성의 최고참 참석자나 직접 관련부서의 최고참자가 사회를 맡도록 되어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의 「위기상황」에 대해 미행정부는 일관된 정책을 취하고, 주장이나 의견을 달리하는 혼선을 피하자는데 의견을 모으면서, 우선 한국의 안보를 위한 대외적 과시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결정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소식통을 인용, 이 회의에서 결정된 미국의 정책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 회의에서는 2단계의 미국정책을 결정했다. 첫단계로 광주사태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안보와 공공질서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중용을 지키도록 충고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로 광주사태가 가라앉으면 좀더 개방적인 대의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다시 노력토록 촉구한다는 것이다. 그같은 촉구는 국회와 정당, 그리고 기타 민간지도자들을 제외시키려는 한국고위장성들의 시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 고위정책조정위원회와 관련, 미관리들은 한국군부지도자의 민간정부구성을 종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를 삭감할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한국군부지도자들의 민주통치를 위한 조치만이 장기적인 정치 안정의 보장책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이날 결정된 미국의 대한 정책 테두리는 그 이후의 정책에 일관된 원칙으로 적용된다.
이보다 앞서 21일(미국시간) 주한 미대사관측은 주한미국인들에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여행을 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이같은 대사관측의 당부는 어느 나라에서나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을 경우 상례적으로 나오는 것이었으나, 주한미대사관은 4.19혁명 이후 처음으로 「외출자제령」을 내린 것이었다. 주한미군들에게도 「외출금지령」이 내려졌음은 물론이다. 미국방성의 「토마스 로스」대변인은 22일(미국시간) 주한미군들에 대한 외출금지령을 발표하면서, 미군이나 그 군속이 피해를 받은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당시 광주시에는 미국 일본 프랑스 등 모두 12개국의 외국인 2백7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외국인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국내신문들은 보도했다. 이들 외국인들은 대부분 미국평화봉사단원과 선교사들이었는데, 미국인이 1백34명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 13명, 일본 9명, 영국 3명 기타 48명이었다고 보도했다.
「로스」대변인은 또 이날 처음으로 「존위컴」주한유엔군사령관겸 한미영합사령관이 광주사태의 진압을 위해 일부 부대에 대한 작전권을 한국측에 이양했다고 밝혔다. 「로스」대변인은 작전권이 이양된 부대는 휴전선 방위를 맡고 있는 부대가 아니라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한국의 장성들이 광주사태 진압을 위해 일반예비병력중 4개연대의 병력을 요청, 미국측의 허락을 받았다고 보도했다(이 신문은 작전권이 이양된 부대가 5월 30일까지 「위컴」의 지휘권아래 들어오지 않았다 고 보도했는데, 언제 다시 「위컴」의 지휘권하에 들어 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편 「위컴」사령관은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3일전인 14일, 휴가를 이용해 귀국, 워싱턴에 있었다. 당시 매스컴은 「위컴」 사령관의 귀국이 한반도주변정세 및 한국내의 사태 등에 대해 워싱턴당국과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27일까지 미국에 머물려던 당초의 계획을 취소하고 18일 오후 급거 서울로 돌아왔다.
미국 광주사태에 「중립」 유지
23일(미국시간) 워싱턴에서는 한국교민 약 50여명이 군부통치에 대한 반대구호를 외치며 데모를 벌였다. 이들은 미국무성의 정문을 막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미국은 군사정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마침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부통령이 국무성을 방문중에 있었다. 「무바라크」 부통령은 공식방문 일정을 마치고 「머스키」국무장관과 오찬을 하기 위해 국무성을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한국교민 데모대가 국무성 정문을 막고 있자 경비병들이 이들을 해산시켰고, 「무바라크」부통령 일행을 태운 리무진은 아무련 어려움 없이 국무성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데모대 바깥이 소란한 가운데 국무성 안에서는 「카터」대변인이 기자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는 광주사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이미 지난 며칠동안 발표한 것 외에는 아무런 다른 할 말이 없다. 더 첨가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대답을 자제했다. 또다른 한고위관리는「위컴」 사령관이 일부 군의 작전권을 이양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위컴」의 결정을 옹호하기도 했다. 이 관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 한 「위컴」사령관이 그 요구를 거절할 다른 방도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당시에 가장 시급한 일로 생각했던 것은 우선 광주사태가 진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점은 22일의 성명에서도 언급이 됐으며, 26일 다시 확인됐다.
「마이클 아마코스트」 미국무성 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는 이날 ABC방송의 특별뉴스시간에 출연, 「한국 사태에 대한 미국의 기본입장은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요구도 경청해야 하고, 질서와 안보확립도 해야 한다는 것」이라 밝히고, 「지금의 상황에서는 질서확립에 중점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코스트」 부차관보는 또 「북한이 광주사태를 이용하지 않을까 두려우나 현재까지 그들이 직접 관련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한국정부나 광주사태관련자 어느 쪽으로부터도 중재요청을 받은 바 없으며, 타국의 국내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고 미국의 불간섭정책을 분명히 했다.
광주사태의 「진정」을 우선적으로 바라면서도 그것이 한국국내문제라는 이유를 들어 적극적인 행동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정책은 뚜렷이 드러난다.
즉 국무성의 「토마스 레스턴」대변인은 다음날인 27일 「광주사태」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분명히 한국국민들의 국내문제인 광주사태와 같은 상황에 외국으로서 미국이 개입하는 것은 어려운일」이라고 말했다.
「레스턴」대변인 역시 광주사태 관련자들부터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 한국지도자들이 사태협상을 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일부 보도를 부인했다. 「레스턴」대변인은 미국이 누차 국민억압 정책에 위험성에 대한 견해를 한국정부에 알려왔다고 말하고, 「그러나 극도로 긴장된 상황의 한가운데에 들어가는 것은 유용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레스턴」대변인의 이같은 발언은 미국이 광주 사태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우회적인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미국은 한국당국의 조치에 대해서는 큰 불만을 갖고 있지만, 광주사태에 대해서는 일종의 「중립」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레스턴」대변인은 이어 「광주사태가 그같은 사태까지 이른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비교적 평온을 되찾은 지금, 우리는 현안들이 재화협의 정신으로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 의해 이야기되어지고 광범한 지지를 받는 민간정부의 수립을 위해 전진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한국 군부에 「불쾌감」표명
한국군부의 실권이 표면에 드러나자 이에 고심중이던 미행정부는 마침내 5월28일 「머스키」국무장관과 국무성 각 지역담당자 30여명이 참석한 주례 분석 보고회의에서 이를 주요의제로 등장시켰다. 원래 이 회의는 「밴스」국무장관 시절부터 마련된 것으로, 국무성 각 부서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로의 현안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자리. 그러나 이날 회의는 거의 하루종일 계속됐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문제 토의로 보냈다. 취임 20여일이 지난 「머스키」장관에게는 한국문제가 처음으로 등장한 난제였기 때문에 관련이 없는 부서관리들도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히도록 했다.
이 회의와 관련한 28일자 「뉴욕 타임즈」지의 해설기사는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회의 내용을 전하고 있다.
『「머스키」장관은 이 회의 서두에서 한국의 위기와 관련된 인권문제의 해결과 민주화추세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홀부르크」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한국군부가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의 표면적인 움직임을 보고했다. 그러나 「홀부르크」차관보는 사태가 더욱 분명해질 때까지 한국군부를 비난하는 어떠한 성명도 발표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글라이스틴」주한미국대사와 「위컴」한미연합사사령관이 한국군부인사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미국은 민간인과의 대화를 갖고 국민의 지지 기반을 얻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절대로 중요한 것으로 믿는다는 사실을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미국이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전에 이같은 얘기를 그들이 새겨듣도록 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군부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정보가 국무성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정보가 국무성이 만족할 만큼 완벽하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머스키」장관이 왜 그렇지 못했느냐고 묻자, 「홀부르크」차관보는 광주사태에 지나친 신경을 쓴 나머지 좀더 광범위한 의문들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결국 이 회의는 한국군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더 두고 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만일 군사위원회같은 것을 만들어 독재를 영구화시키려고 한다면 미국은 비판적이 되어야 할 것이고, 반면 민간정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미국의 경고와 의도를 받아들인다면 찬양을 해야 할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이 회의에 참석한 한 관리는 한국의 현 상황이 「팔레비」시절의 이란 상황과 닮은 점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만일 미국이 압력을 가한 결과로 한국정부와 사회가 무정부상태로 뒤바뀐다면 유사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그는 이란과는 달리 북한의 위협 때문에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친미적이고 군부나 시민들 모두 미국의 지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즈」지는 계속해서 미국의 고민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의 안보는 이 지역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3만9천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고,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미국은 대한지원을 주저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전두환 장군과 그의 지지자들이 군사적 권력을 강화한다면 사회와 군부 내부에서 모두 심각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의 안보가 약화될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손상시킴이 없이 어떻게 군부통치를 막을 수 있는가」
그러나 한국정정은 미국의 희망이나 고민에 아랑곳없이 「계획된」 진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5월31일(한국시간) 한국당국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신설발표가 있자 미국무성은 몇 시간후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사태에 대한 비상검토회의를 가졌다. 당초 미행정부는 백안관에서 국가안보회의의 고위정책조정위원회(PRC)를 열 예정이었으나 계획을 바꾸어 국무성에서 「홀부르크」차관보 주재 아래 대책회의를 열고 종합적인 대처방안을 협의한 것.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정부가 취한 조치들을 검토했을뿐 최종적인 결론을 얻지는 못했으며, 어떤 공개성명도 발표되지 않았다. 다만 회의참석자들은 한국사태의 진전을 지켜보면서 신중하고 단계적으로 대처한다는 기본방침을 세운 것으로만 알려졌다. 이같은 기본방침은 28일의 주례분석보고회의의 결과를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광주사태 이후 그해 5월말까지 미국이 취한 정책은 군사적인 대북시위 외에는 이처럼 우려와 희망, 그리고 한국군부에 대한 일종의 「불쾌감」 표명에 그쳤다. 어떻게 보면 소극적이고 신중한 대한정책을 추구했다는 해석도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정책의 배경에는 당시 상황에 대처하는 미국의 현실주의적 이해관계가 깊이 깔려 있었다.
미국, 한국의 안보와 민주화 추구
당시 미국의 대한정책은 두가지 큰 줄기, 즉 한국의 순탄한 민주발전을 위한 촉구와 이 민주발전을 뒷받침할 안보확보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이같은 미국의 두가지 대한정책 골격은 광주사태의 와중에 발표된 미국무성이나 국방성의 성명에도 자주 언급이 됐지만, 1980년 6월1일 「카터」대통령의 CNN(Cable News Network)TV와의 회견에서도 거듭 확인이 됐다.
「카터」대통령은 이 회견에서 「한국에는 미국의 정책에 항상 영향을 미쳐온 두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어왔으며,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공격, 즉 1차적으로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한국의 안보를 확보하는 것이고, 둘째는 민주화과정을 고취시키고 인권을 보호하며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일이다」라고 미국의 대한정책 골격을 밝혔다.
광주사태가 악화되자 미국이 가장 신속히 취했던 조치는 북한의 남침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는 일이었다. 한국의 민주발전을 위한 직접적이고도 물리적인 수단의 영향력행사는 미국측으로 봐서 상당히 신중을 기해야 할 사안이었다. 그같은 직접적인 수단의 행사는 자칫하면 누가 정권을 잡아도 반공.친미정책을 취할 한국당국으로부터 유익하지 못한 반작용을 유발시킬 가능성이 많았다.
이에 비해 한국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적 조치는 한국국민과 정부로부터 아무런 「직접적인 응전」을 유발시킴이 없이 다목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북한과 대치해 있는 한국의 특수한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해 볼 경우 안보를 위한 군사적 조치는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중 한 사람의 반대도 없이 복잡한 외교정책결정과정을 쉽게 통과,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미국의 군사적인 조치는 신속한 것이었다. 22일 미국은 한국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그들의 확고한 결의를 재확인하고 이에 대한 실증을 보이기 위해 오끼나와에 있는 조기경보기 2대와 필리핀의 수빅만에 정박중인 항공모함 코럴시호를 한국근해에 긴급출동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코럴시호는 인도양과 서태평양해역에서 4개월간의 작전임무를 마치고 캘리포니아로 귀항중 필리핀의 수빅만에 들르고 있었다.
5만톤급인 코럴시호는 50대 이상의 전투기와 폭격기 등을 탑재한 항공모함으로 한국 남해부근에 주둔해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이 항공모함은 6월 3일 철수). 조기경보기 E3A 두대는 오끼나와의 가데나 미공군기지에 도착, 대북한 정찰임무에 돌입했다.
미국, 북한의 남침을 경고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는 북한이 남침을 해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사실을 한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 보다 앞서 5월 18일 발표된 미국무성성명은 「미국은 한국의 현 상황을 이용하려는 어떠한 외부적 기도도 체결된 조약의 의무규정에 따라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헤럴드」국방장관은 특별인터뷰를 통해 한반도에서 치열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두달동안은 그 전쟁을 수행할만한 충분한 전략물자가 준비되어 있다고 공언하면서, 대북경고를 했다.
이와 때맞추어 「뉴요크 타임즈」지는 미국이 지난 30년동안 유지해온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우위의 이른바 「스윙전략」을 포기했다고 특종보도했다. 스윙전략은 유럽에서 소련의 공격이 있을 경우 태평양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유럽쪽으로 이동배치한다는 전략. 스윙전략의 포기는 25척의 주요함정을 거느리고 있는 7함대와 3만9천명의 강력한 주한미군, 오끼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1개 해병사단과 공군, 그리고 12개 전투 기중대를 주력으로 한 태평양주둔 미군을 항구배치해 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스윙전략포기 결정은 전적으로 한국사태와 연관되어 나왔다고는 볼 수 없으나 미국의 대한공약을 재다짐하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밖에도 미국 관리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한국방위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었다.
당시의 남북한대치상황은 어떠했는가. 미국은 광주사태를 악이용해 기습도발을 하려는 북한측의 계획을 탐지하고 그와 관련된 신빙성있는 정보를 획득하고 있었는가.
최근 윤성민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5.17비상계엄령을 확대할 당시의 북한동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북괴는 혼란한 국내정세에 고무되어 대규모 기갑부대를 전방으로 추진 배치하고,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무력부 상황실에 나와 사태추이를 주시하고, 또한 인민군 총참모장 오극렬은 최전방인 개성에 나와있는 등 군사적 긴장상태를 고조시키고 있어 국내외적으로 국가안보와 국민생존권이 크게 위협되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북괴가 곧 남침을 감행할 것이라는 첩보로 인해 건국 이래 최대의 난국을 맞게됨으로써…」
사실 광주사태발발 이틀전인 15일 판문점 동쪽 8백m지점의 공동경비구역에서 미군장병들과 수를 알 수 없는 북한군과의 교전이 있었다. 유엔군측 발표에 따르면 북한군들은 이날 새벽 1시반경 아군의 모GP 전방 20m지점까지 침투했으나 조명지뢰 폭발로 침투기도가 발각되어 도주하면서 아군을 향해 자동화기 40여발을 발사하고 도주했다는 것. 이 보다 앞서 12일 밤에도 이 지역에서 총격전이 있었으며, 그해 들어 여섯차례나 도발을 했다는 것이었다.
미. 『즉각남침 정보 없어』
그러나 당시 미국측은 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방위공약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북한측의 남침준비에 대해서는 아주 냉정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의 모든 군사적 조치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한 「사전경고」의 뜻이 다분히 담겨있다.
「카터」 국무성대변인은 19일 낮 국무성 브리핑에서 이렇게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호딩」, 한국에 대한 외부의 어떤 위협 조짐을 발견했는가.
「우리는 이 순간에 북한군의 어떠한 비정상적인 이동조짐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만 얘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이 즉각적인 남침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지난주 한국측의 보도가 이를 시사했을 때 당신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그 당시 우리가 활용했던 정보로는 그같은 보도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 당신은 아직까지 계속해서 그같은 답변을 얘기하고 있는가.
「그렇다」
-아니다. 지금 당신은 좀더 긍정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 지난주 당신은 확인을 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분명히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증거가 없다」
-근본적으로 같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우리는 북한이 한국에 대한 즉각적인 공격준비를 하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AEP통신」 역시 21일 국무성의 한 고위관리가 북한측이 한국의 최근 혼란을 이용해 남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증거를 이용해 남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증거를 미국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하면서, 그러나 미국은 휴전선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이 관리가 덧붙인 것으로 보도했다.
22일 발표된 미국무성의 두번째 성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호딩 카터」대변인은 「미국은 한국의 불안한 정정을 이용하려는 북한측의 어떠한 기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하겠다. 일주일 전 한국에서도 반정부데모가 발생한 이래 북한군이 어떠한 비정상적인 군의 이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미국이 강경한 대북한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북한의 위험스러운 오판을 방지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불안한 정정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중공당주석이자 수상인 화국봉이 27일 중국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동경을 방문했다.
화국봉은 그의 일본방문 이틀째에 「북한은 한국의 불안한 정정, 특히 광주사태를 악용해 침략을 개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아주 신빙성 있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화국봉이 갖고 있는 정보가 어떤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주목할 만한 발언이었다. 중공은 자신들의 경제발전과 미국과의 유대를 위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원치 않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었지만, 동경에서의 화국봉의 발언은 중공이 친북한공산국가라고 하더라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날 워싱턴에서도 중공의 고위관리가 화국봉과 똑같은 발언을 했다. 친미군사지원장비 구매를 중심으로 한 미.중공간 군사협력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중이던 경표중공부수상겸 당중앙군사위원회 서기장은 「머스키」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남침하려는 북한의 군사적 작전이 지적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경측이 평양측으로부터 보장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28일 미하원 군사조사위원회는 「사뮤엘 스트레튼」의원의 사회로 비공개 청문회를 열고 미국방정보국(DIA)의 동아시아 및 태평양담당인 「찰스 데소니에」로부터 최근 한국정정에 대한 정세보고를 들었다. 이 위원회에서는 주로 북한의 동향과 그에 따른 한반도안보문제가 중심적으로 다루어졌다. 「데소니에」도 역히 한국사태로 인한 북한측의 특별한 군사적 움직임은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뉴욕 타임즈」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6월 3일 북한과 중공이 한국의 국내불안을 악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장교들은 화력이 우세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북한군이 한국의 정치 경제 중심부를 장악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즈」지는 북한이 서울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 후 평화협상을 하고 월맹이 취한 방식대로 한국이 붕괴되어 그들의 수중에 떨어지도록 기다릴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관리들은 소련으로부터는 북한의 남침을 고무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소련은 아프리카에서 쿠바군을 이용하는 것처럼 북한을 고무시켜 남침을 유도할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북한측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하고, 한 미군장교가 「북한군은 비상상태에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북한에 대한 한미간의 이견
광주사태당시 북한의 기습공격준비 여부에 대한 한국정부와 미국정부 사이의 시각에는 표면상 이같은 차이가 있었다. 북한이 광주사태 등 한국 국내의 소요를 이용해 남침계획을 세웠는지는 최고급 정보를 다루고 있는 통치자나 그 주변인물 외에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북한이 정치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한국의 불안한 정정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며, 이를 「활용」하려고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과거의 경험이나 오늘의 현실로 봐서 누구나 할 수 있다.
이점은 「아마코스트」미국무성차관보가 광주사태 이후인 6월 25일 미하원 외무위원회 아시아문제소위원회에서 「북한이 이 사태를 틈타서 그 자체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고 촉구할지도 모른다」고 밝혔듯이 미국도 우려했던 바였다.
「AFP통신」도 북한의 평양방송이 20일부터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한국국민들이 계엄령철폐를 위한 봉기를 하도록 선동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전 한국이 혼란의 와중에 휩싸여 있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측의 분석과 보도는 윤성민국방장관이 「곧 남침을 할 것이라는 첩보…」라고 밝힌 것과는 어감상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어느 것이 정확한 분석이든 간에 미국이 한국방위에 대한 확고한 결의를 거듭 밝히고 북한측에 경고를 보내면서도 「북한의 기습남침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되풀이 공언한 데는 어떤 정책적인 고려와 의도도 깔려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한국의 통치자가 북한의 남침문제를 정권유지적인 차원에서 이용했던 과거의 선례를 미국은 알고 있으며, 순수한 정보분석의 차원을 벗어난 과장된 발표가 한국국민들의 감정에는 물론 한반도주변의 국제정세에 결코 유익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 나름대로 종합분석한 결과를 사실대로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한관과 당시 한국 통치자들의 대북한관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며, 똑같은 정보라도 접근하는 방식과 분석이 다를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의 한계
광주사태 직후 미국은 한국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지만, 한국내부 상황을 그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는 그 수단이 제한되어 있었고, 스스로의 이해타산에서 연유된 한계가 있었다.
먼저 미국이 당시 한국정국에 대해 어떤 구체적 압력조치-성명이나 기타 구두 또는 외교적인 것이 아닌-를 취했는지 알아보자.
미국이 한국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구체적 제재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6월12일(한국시간) 최규하대통령이 「81년 6월까지 정권이양을 하고 이에 따른 개헌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등의 정치일정을 발표하고 난 직후였다. 미국은 한국사태를 예의분석해오다가 한국군부가 계속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은후의 일인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지가 6월12일(미국시간) 보도한 미국측의 대한제재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미국해외민간투자공사(OPIC)회장 「브루스 레윌린」의 방한이 6월 초로 계획되어 있으나 미국이 신규투자를 장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그의 방문은 무기한 연기됐다.
② 두건의 대한차관(아시아개발은행 즉 ADB의 인천 항만시설을 위한 5천4백만달러와 국제금융공사 즉 IFC 의 1천만달러)에 대한 투표가 미국의 요청으로 연기됐다.
③ 한국외무부 전략입안관리와 미국무성 정책입안관리의 상례회담이 분위기가 정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연기됐다.
④ 고위 미국관리의 한국방문은 「홀부르크」미국무성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가 주재하는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존 모어」미수출입은행장이 이끌고 있는 경제협력그룹의 방한일정은 한국경제를 더욱 손상시킬 서울 금융가의 걱정을 줄이기 위해 계획대로 진행된다.
또다른 관리들은 미국이 79년 약속했던, F4 전투기와 F5E전투기의 대체용인 F16전투기의 판매문제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취한 이같은 조치들은 당시 한국정가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충분한 압력수단이 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미국은 이보다 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할 수는 없었는가. 미국은 한국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친미적 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미국의 우방국으로 있게 될 것이라는 확고한 판단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5월19일 「카터」대변인의 기자들과의 문답, 5월22일 「맨스필드」대사의 발언 등 참조)
이점은 당시 미국이 한국정국의 흐름을 전환시키기 위한 제재수단을 동원하는데 스스로 1차적인 한계를 설정해 놓는 요인이 된다. 한미간의 근본적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단의 동원은 자제할 수 밖에 없었다.(5월28일자 「뉴욕 타임즈」 참조).
또 우방국인 한 나라의 기반을 흔들어 놓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결과적으론 미국의 이익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이 반미, 공산주의 노선으로 등을 돌렸던 그라나다와 오늘날 니카라과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정책을 그대로 구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르코스」대통령의 독재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하나의 좋은 예를 제공해준다. 필리핀은 어디까지나 친미국가이며, 국내공산세력의 위험을 안고 있다. 미국은 태평양전략에 필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군사기지를 필리핀에 두고 있다.
5월22일자 「뉴욕 타임즈」는 당시 미국이 취할 수 있었던 대한정책 선택의 한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현 시점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대변인들은 「글라이스틴」대사나 「위컴」사령관 등 한국에 있는 미국관리들의 고충은 타협수단(bargaining levers)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관리들은 3만9천명의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하거나 경제적인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위기상황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로 취급하고 있다. 미국이 당면한 또다른 문제는 최규하대통령이 군부인사를 퇴역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위컴」장군의 명령권과 한국군부의 명령권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없다. 일부 미국인들은 60만 한국군중 절반 이상이 미국의 장악하에 있다고 보지만, 서류상에 그렇게 되어 있을 뿐이다」
한 기자가 한국에 대한 조치를 어떻게 취할 것이냐고 묻자 한 관리는 오히려 「좋은 생각있으면 말해 달라」고 하더라는 보도도 있었다.
한국군부, 미국의 한계 인식
「AFP통신」은 29일 미국은 한국지도자들이 좀더 민주적인 방식을 취하는 것이 더 이상의 사태악화를 막는 길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대한관계를 단절할 계획은 하고 있지 않다고 국무성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그대신 서울에 대한 외교적 압력을 가중시켜 민간정부 구성을 촉구할 것이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이 통신은 미국 지도자들이 새로운 사태가 야기될 가능성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압력전술이 제한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미국이 1억3천만달러의 군사원조를 삭감하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같은 군사원조 삭감방법은 한국이 전략적으로 미국에 대해 상호적 이해관계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위험스러운 부메랑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나아가 5월 30일자 한국관계 사설에서 이란 니카라과 한국에서처럼 민간폭동이 모두 미국전략상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미국이 「팔레비」이란 왕에게 더 진전된 민주주의를 촉구하자 더욱 권위주의적 국가가 됐고, 좀더 자유로운 정부를 수립한다는 명목으로 「고딘 디엠」정권의 전복을 승인하여 월남전을 초래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개발도상국들은 자유세계대열에서 추방당하지만 않는다면 훨씬 더 민주주의적 방향으로 전진해나갈 것이라고 미국의 신중한 태도를 촉구했다. 미국은 일종의 방관자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조이나 이같은 논조의 배경에는 한국사태에 대해 「미국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대한정책의 한계성이 깔려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월 5일자 「뉴욕 타임즈」는 특히 한국의 군부지도자들이 이같은 미국정책의 선택 한계성을 잘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달리 표현하면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대한정책의 한계를 자세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군부는 자신들이 계획한대로 정국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서울의 군부는 미국이 대통령선거에 정신을 쏟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그들은 또 미국이 지역안보에 큰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3만9천명의 주한미군을 포함해 군사원조를 줄이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 또한 그들은 호황기의 한국경제에 투자한 그들의 자본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어 경제적 제재조치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 「5·17 사전에 몰랐다」
어떤 정치적 변혁기에 다른 나라가 그 변혁의 흐름의 주도하는 데는 또다른 한계가 있다. 타국이 물리적인 수단으로 그 흐름을 주도하지 않는 한 그 타국은 타국의 입장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태를 예의분석하고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변혁의 작품을 만드는 주역이 될 수는 없다.
「아마코스트」부차관보는 6월25일 미하원 외무위원회 아시아문제소위원회의 한국문제청문회에서 개회벽두 행한 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으로 파벌주의가 전해 내려왔고, 또 솔직히 말해 정치적 타협기록이 별로 없는 한 사회에서 선출된 민간정부가 질서있게 발전하는 데는 첫 출발부터 두가지 커다란 위험이 있었다. 그 하나는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학생 및 일부 반정부집단들이 성급한 행동으로 체제 내 다른 계층들의 용인범위를 넘어서, 그리고 외부 세력의 개입 우려를 낳는 혼란을 야기할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과도정부의 비능률, 그리고 민주정치의 무질서상태를 참지 못한 군부의 일부가 사회 내의 질서와 기강을 회복하기 위해 실권을 자기들 손아귀에 넣을지도 모른다는 거이었다. 이 두가지 위험은 모두 현실로 드러났다……12월 12일부터 시작해 육군 내의 한 집단은 마침내 5월17일의 계엄령전국확대와 정치활동규제에 이르게 된, 단계적 조치들을 취했다..... 미국은 이들 행동의 어느 것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지 못했고 또 지지를 표한 바도 없다」
미국이 예측과 분석은 하고 있었지만, 정작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따돌림」을 받았다는 얘기다. 이같은 「아마코스트」부차관보의 발언은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측이 이례적으로 발표한 성명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주한미국대산관측은 5월30일 미국이 5.17계엄령 확대조치를 사전에 알았다는 일부 한국언론의 보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성명문을 서울의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 이 성명은 12.12사태를 포함한 모든 정치적 행동들이 미국도 모르게 진행됐다고 주장하면서, 5.17계엄령선포의 경우 「글라이스틴」주한미국대사는 계엄령 확대를 위한 각의가 열리기 30분 전에야 그 내용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 성명은 이어 일부 언론들이 「글라이스틴」대사가 5월23일 한국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5.17계엄령을 「이해」 또는 「승인」한 것처럼 시사했으나 이 자리에서(한국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계엄령과 시위학생들에 대한 거친 조치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주장했다. 「글라이스틴」대사는 또 정치지도자의 구속과 국회해산 등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광주사태 당시 미국기자들도 미국이 한국정국의 흐름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방관자」적 상태에 있나 하는 의문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카터」대변인은 18일 첫 대한성명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 한국측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느냐는 집요한 질문을 받았다. 다음은 기자들과의 1문1답 내용.
-미국은 미국의 관심을 한국지도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분명히 밝히고 있는가 「글라이스틴」대사가 권력에서 밀려난 민간정부지도자들과 협상을 하고 있는지, 또는 당장 모든 것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군부지도자들과 직접 얘기를 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특별한 흥미가 간다.
『「글라이스틴」대사의 접촉수준은 내가 얘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과 관련된 이 메세지에 가장 적절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한 측근은 그러나 『「글라이스틴」대사는 무척 당황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우선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공식적이든 사적이든 서로 만나 미국의 입장과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한 듯 했다.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채널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미국은 정말 사태를 몰랐는가
미국측이 당시 한국군부가 취한 조치를 정말 사전에 몰랐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미국측의 설명이나 해명만 듣고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시대의 중요한 정치사는 대부분 두꺼운 베일에 가려 만들어지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이고 보면 다른 나라가 한 주권국가의 정치적 이면을 속속들이 아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더구나 미국이 그 이면을 샅샅이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인지할 수 있는 여러가지 한계가 있었다. 이 한계를 미국은 어떻게 수용했고 당시의 한국정치무대에 어떻게 반영시켰느냐하는 문제는 한.미 두나라의 복잡미묘했던 정책결정과정과 환경을 백일하에 드러내놓고 대비 검토해보아야 어느 정도 해답이 나올 것 같다. 그래야만이 미국이 그때의 한국정국의 흐름을 「묵인방관했느냐」 「지지했느냐」 「적극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느냐」하는 문제의 실마리나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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