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미문화원 농성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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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화원 농성이 의미하는 것
광주의 비극은 누구의 책임인가
미국의 가장 믿을만한 우방, 반공의 전진기지로까지 불리던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의 서울 미국 문화원이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학생들에 의하여 점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5월23일 정오부터 26일 정오까지 꼭 72시간 동안 지속되었던 학생들의 농성은 광주문제에 대한 많은 내외국 인식을 새롭게 했으며 '광주'가 80년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짊어지고 해결해야 할 민족적 부채임을 다시 상기시켰다.
학생들은 미국측과 몇 차례 대화를 통하여 미국측의 사과를 받아내려 했으나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는 미국측의 완강한 태도에 실망, 더 이상의 농성과 대화를 통한 해결에 실망을 느끼고 농성 72시간만에 문화원을 자진 철수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번 사건을 통하여 "미국이 우리에게 진정 한 우방과 자유세계의 수호자로 인식되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보다 강고한 투쟁을 위해 농성을 풀기로 한 것'임을 천명하여 농성 해제가 문제가 아닌 보다 효과적인 싸움을 위한 재출발임을 분명히 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민족사적 대비극은 이 문제에 미국이 깊이 관련되었으리라는 많은 이들의 의혹이 생기면서 그때까지 굳건한 우방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킨 것이 사실이다
광주. 부산 대구의 미국 문화원에 대한 방화, 폭발사고가 잇달아 일어났으며 마지막 남은 이번 서울의 미문화원 농성사건에서 그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광주민중항쟁과 그 진압의 진상은 80년대를 상징하는 사건임에 비추어 국민 모두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는 국면을 맞이하였다. 학생들의 문제제기를 떠나 우리 민족의 참다운 미래를 위하여 이번 사건의 의미와 배경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 같다.
"광주사건은 전두환 대통령의 내외정책이 순조로이 진행되어 간다면 점차 역사 속에 묻힐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정책이 잘 진행되지 못한다면 사건은 사건으로서 언제까지나 꼬리를 끌면서 험악한 요소가 될지도 모른다. "
1980왼 5 월의 민중항쟁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글라이스틴이 일본 아샤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이와 같은 우려가 현실로서 나타났다.
광주의 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생성된 현 정권이 광주사건」을 '역사 속에 묻어버리기 위해'기울였던 노력 속에 '내외정책의 순조로운 진행'은 결코 포함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민족사의 대참극에 대해 그 진상규명은 물론이고 논의조차 봉쇄한 가운데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억압해 온 것이 지난 5년간 일관된 현 정권의 자세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2 ·12선거를 고비로 그 생성과정은 문제성을 들어 현 정권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광주사태를 다시 되새겨야 국익에 보탬이 안된다. " (노신영 총리의 국회답변) 또는 "상처를 하루속히 치유되어야 하며 그 방법은 정부와 정치인은 물론 국민 각자가 자성함으로써 그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교훈을 찾아내아 한다. "(노태우 민정당대표의 국회연설)는 등의 대국민 설득 노력은 글라이스틴이 우려해 마지 않았던 '험악한 요소'를 예방하기에는 너무나 안이한 처방이었음이 드러났다. 글라이스틴의 우려는 구체적으로 학생들이 미국문화원 도서실에 들어가 농성하면서 「광주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을 묻고 이에 대한 공개사과를 요구함으로써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들은「전국학생총연합」이름으로 발표한 .「우리는 왜 이 문화원에 가야만 했나」라는 성명을 통해 첫째. 광주민중시위의 무력진압을 지원한 책임을 지고 미국 행정부는 공개사과 할 것. 둘째. 미국은 현정권에 대한 지원을 즉각 중단할 것 세째. 미국 국민은 한미관계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할 것등을 주장했다.
그들은 미국 행정부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근거로서 한국군작전지휘권이 실질적으로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고 한미연합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승인이 없이는 병력투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고 "한국 국민은 미국을 영원한 우방으로 생각해 왔으며 이는 일제 (日帝)의 폭압에서의 해방과 공산세력과의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전쟁에서 확인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 국민은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지원에 짙은 의혹을 갖고 있으며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을 미국도 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어 "미국은 한국 국민의 짙은 의혹을 풀기 위해서 진상을 해명하여야 하며, 광주학살 지원에 대해 공개사과를 해야만 한미관계가 불행한 경우로까지 이르지 않을 것이다 " 고 밝히고 있다.
학생들은 마지막으로 미국국민을 향해 "올바른 한미관계는 양국의 주체적 자주권을 존중하고 국민적 합의 하의 정권에 의해 대표될 때 더욱 성숙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미국 국민은 비극적인 광주학살에 미행정부가 깊숙히 개입되어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통감하고 미행정부의 해명과 공개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만이 양국국민은 진정한 우방으로서의 한미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생들의 미국문화원 농성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충격을 받은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보인 반응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반응은 학생들이 미문화원에 들어간 24일의 국회에서 있은 노신영총리의 답변에 집약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의 행동을 한미관계를 이간시키고, "정부의 자율화 조치를 악용한 방종과 무법 적인 집단행동이며 장기간 계획하고 방법을 꾸며 도시 게릴라적 수법으로 침입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정부는 이같은 폭력이나 집단에 의한 문제해결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혀다.
반면에 신민당은 학생들의 행동을 "정부여당이 광주사태에 대해 납들할 만한 진상파악을 회피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규정하고 "광주사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학생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밝혔다. 신민당은"그러나 문화원 점거가 학생들의 의도와는 달리 국가이익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 칠 수 있다는 점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인에게 맡기라'고 권고했다.
「민주화추진협의회」공동대표인 김대중씨와 김영삼씨는 25일 "우리는 국회 안에서 신민당을 적극 내세워서 광주사태의 납득할 수 있는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건강을 위해서도 목적한 바의 효과를 위해서도 지금이 농성을 중지할 시기"라고 권고했다(학생들에게 전달된 메시지). 그러나 양김씨는 정부가 광주사태의 성의 있는 해결과 광주영령들이 열망하던 민주화에 대해 아직까지 충분한 성의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정부 자세의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했다. 그들은 또 "정부가 학생행동을 뚜렷한 근거도 없이 용공. 반미로 몰려는데 대해서는 절대로 이를 동의하지 않으며,분노를 느낀다 "고 말하고 언론의 유사한 자세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양김씨는 이어 "학생들의 태도 즉 인질을 잡지 않은 점 폭력을 사용하지 않은점. 그리고 진지하게 대화를 진행한 점은 미국 조야에 큰 인상을 주었으며 우리 국민과 모든 정치인에게 광주사태 해결의 중요성과 민중성을 인식시키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재야 민주화추진 단체들은 일제히 학생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미국측의 성실한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재야 민주화추진 단체들의 연합체인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의장 문익환 목사)은 "이번 농성사건의 근본적 책임은 미국측에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번 농성사건의 원만한 수습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주장과 행동을 정당한 것으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및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등 5개 단체도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은 오로지 광주의 진실을 동시에 미국의 책임 여부 및 입장을 밝히려는 애국학생들의 충정에서 나온 행동이며 이는 언론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데서 올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하고 학생들의 농성을 지지했다.
한국의 저치상황에 대한 미국정부의 잭임문제는 긴밀한 한미관계가 수립된 이후 간간히 제기되어 왔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한반도의 남부에 진주한 미군이 미소 냉전체제 속에서 한반도의 분단에 동의함으로써 미국은 민족해방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와 함께 민족분단의 씨앗을 뿌렸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 미국은 한국에 막대한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한국민의 감사를 받았지만 한편 한국경제가 미국 시장권에 편입됨으로써 자립과는 거리가 먼 보세가공형 산업을 건설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감기가 든다고 할 정도로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져오게 한 책임 또 한 벗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온갖 불만에도 불구하고 한국민들은 미국을 '혈맹'으로 부를 정도로 미국민들의 선의를 신뢰하고 있었고 심지어 한국의 민주화가 미국 정부의 강력한 압력에 의해 달성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그야말로 사대주의적이고 착오적인 환상에 빠진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대주의적인 기대는 미국정부의 영향력이 종종 독재정권을 유지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차츰 드러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것이 근본적으로 붕괴된 것은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진압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미국 정부가 이 사건에 깊이 개입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이에 따라 한미관계의 역사와 현실이 비판적으로 분석되면서 미국 정부가 그러한 사건에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이 부각되었다.
미국적부에 대한 항의는 아무리 '혈맹'의 우방이라고 해도 어떤 방향으로든 국내정치에 공공연히 개입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업사는 자주성의 발로로서도 볼 수 있다. 그후 광주 및 부산에 있는 미국 문화원이 미국의 광주민중항쟁 진압에 대해 항의하는 한국인에 의해 방화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학생들의 이번 미문화원 농성은 종래의 미문화원 방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학생들이 보인 이번의 집단 행동은 폭력과는 거리가 먼 평화적인 시위였으며 미국 국무성도 "폭력 인질사태는 없었다"고공식 발표했다. 이들은 또한 구체적인 요구를 제시함으로써 자기들의 목적이 '반미'가 아니라 올바른 한미관계의 정립을 위한 전제조건의 충족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많은 한국민들은 미국 정부가 광주민중항쟁 진압에 개입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통해 이 문제가 온 세계 앞에 제기된 이상 미국 정부는 인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해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미국정부의 대응에서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음이 보인다. 미국무성의 버너드 칼브대변인은 학생들의 농성사태에 대해 "학생들의 주요 문제는 80년의 광주사태 및 전두환 대통령정부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의 개입을 부인하고 있으며 워커 주한 미국 대사는 농성 학생들에게 편지를 보내 "본인은 많은 문제점들에 관한 여러분 자신들의 견해를 표명함에 있어서 여러분이 택한 그 방법에 대해서는 뜻을 갈이할 수 없지만 우리 양국관계와 연관된 중요한 사실들을 조사하고 논의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대에는 의견을 같이 한다"고 매우 함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학생들의 농성이 끝난 5필26일 오후 내외신기자회견에서 그는"이번 사태로 한미관계에 해가 미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고 다시 종래의 미국 정부 입장을 고수하였다.
농성과정에서 보인 미국 정부의 애매하고 상호모순되는 견해가 앞으로 미국의 대한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한미 간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이번 사건을 종래의 방식대로 처리할 경우 한국민의 미국에 대한 불신이 더욱 뿌리깊게 자리 잡을 것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학생들의 농성사건은 광주민중항쟁 무력진압의 진상에 대한 국내의 논의에 대해.결정적인 자극제가 되었다. 김대중·김영삼씨의 학생들에 대한 약속이 없었더라도 국회는 이제 이 문제를 더 이상 어물쩡 넘겨버릴 수는 없게 되었으며, 이 문제는 민주화추진의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된 셈이다.
광주의 비극은 누구의 책임인가
미국의 가장 믿을만한 우방, 반공의 전진기지로까지 불리던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의 서울 미국 문화원이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학생들에 의하여 점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5월23일 정오부터 26일 정오까지 꼭 72시간 동안 지속되었던 학생들의 농성은 광주문제에 대한 많은 내외국 인식을 새롭게 했으며 '광주'가 80년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짊어지고 해결해야 할 민족적 부채임을 다시 상기시켰다.
학생들은 미국측과 몇 차례 대화를 통하여 미국측의 사과를 받아내려 했으나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는 미국측의 완강한 태도에 실망, 더 이상의 농성과 대화를 통한 해결에 실망을 느끼고 농성 72시간만에 문화원을 자진 철수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번 사건을 통하여 "미국이 우리에게 진정 한 우방과 자유세계의 수호자로 인식되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보다 강고한 투쟁을 위해 농성을 풀기로 한 것'임을 천명하여 농성 해제가 문제가 아닌 보다 효과적인 싸움을 위한 재출발임을 분명히 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민족사적 대비극은 이 문제에 미국이 깊이 관련되었으리라는 많은 이들의 의혹이 생기면서 그때까지 굳건한 우방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킨 것이 사실이다
광주. 부산 대구의 미국 문화원에 대한 방화, 폭발사고가 잇달아 일어났으며 마지막 남은 이번 서울의 미문화원 농성사건에서 그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광주민중항쟁과 그 진압의 진상은 80년대를 상징하는 사건임에 비추어 국민 모두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는 국면을 맞이하였다. 학생들의 문제제기를 떠나 우리 민족의 참다운 미래를 위하여 이번 사건의 의미와 배경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 같다.
"광주사건은 전두환 대통령의 내외정책이 순조로이 진행되어 간다면 점차 역사 속에 묻힐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정책이 잘 진행되지 못한다면 사건은 사건으로서 언제까지나 꼬리를 끌면서 험악한 요소가 될지도 모른다. "
1980왼 5 월의 민중항쟁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글라이스틴이 일본 아샤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이와 같은 우려가 현실로서 나타났다.
광주의 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생성된 현 정권이 광주사건」을 '역사 속에 묻어버리기 위해'기울였던 노력 속에 '내외정책의 순조로운 진행'은 결코 포함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민족사의 대참극에 대해 그 진상규명은 물론이고 논의조차 봉쇄한 가운데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억압해 온 것이 지난 5년간 일관된 현 정권의 자세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2 ·12선거를 고비로 그 생성과정은 문제성을 들어 현 정권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광주사태를 다시 되새겨야 국익에 보탬이 안된다. " (노신영 총리의 국회답변) 또는 "상처를 하루속히 치유되어야 하며 그 방법은 정부와 정치인은 물론 국민 각자가 자성함으로써 그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교훈을 찾아내아 한다. "(노태우 민정당대표의 국회연설)는 등의 대국민 설득 노력은 글라이스틴이 우려해 마지 않았던 '험악한 요소'를 예방하기에는 너무나 안이한 처방이었음이 드러났다. 글라이스틴의 우려는 구체적으로 학생들이 미국문화원 도서실에 들어가 농성하면서 「광주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을 묻고 이에 대한 공개사과를 요구함으로써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들은「전국학생총연합」이름으로 발표한 .「우리는 왜 이 문화원에 가야만 했나」라는 성명을 통해 첫째. 광주민중시위의 무력진압을 지원한 책임을 지고 미국 행정부는 공개사과 할 것. 둘째. 미국은 현정권에 대한 지원을 즉각 중단할 것 세째. 미국 국민은 한미관계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할 것등을 주장했다.
그들은 미국 행정부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근거로서 한국군작전지휘권이 실질적으로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고 한미연합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승인이 없이는 병력투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고 "한국 국민은 미국을 영원한 우방으로 생각해 왔으며 이는 일제 (日帝)의 폭압에서의 해방과 공산세력과의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전쟁에서 확인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 국민은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지원에 짙은 의혹을 갖고 있으며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을 미국도 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어 "미국은 한국 국민의 짙은 의혹을 풀기 위해서 진상을 해명하여야 하며, 광주학살 지원에 대해 공개사과를 해야만 한미관계가 불행한 경우로까지 이르지 않을 것이다 " 고 밝히고 있다.
학생들은 마지막으로 미국국민을 향해 "올바른 한미관계는 양국의 주체적 자주권을 존중하고 국민적 합의 하의 정권에 의해 대표될 때 더욱 성숙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미국 국민은 비극적인 광주학살에 미행정부가 깊숙히 개입되어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통감하고 미행정부의 해명과 공개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만이 양국국민은 진정한 우방으로서의 한미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생들의 미국문화원 농성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충격을 받은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보인 반응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반응은 학생들이 미문화원에 들어간 24일의 국회에서 있은 노신영총리의 답변에 집약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의 행동을 한미관계를 이간시키고, "정부의 자율화 조치를 악용한 방종과 무법 적인 집단행동이며 장기간 계획하고 방법을 꾸며 도시 게릴라적 수법으로 침입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정부는 이같은 폭력이나 집단에 의한 문제해결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혀다.
반면에 신민당은 학생들의 행동을 "정부여당이 광주사태에 대해 납들할 만한 진상파악을 회피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규정하고 "광주사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학생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밝혔다. 신민당은"그러나 문화원 점거가 학생들의 의도와는 달리 국가이익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 칠 수 있다는 점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인에게 맡기라'고 권고했다.
「민주화추진협의회」공동대표인 김대중씨와 김영삼씨는 25일 "우리는 국회 안에서 신민당을 적극 내세워서 광주사태의 납득할 수 있는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건강을 위해서도 목적한 바의 효과를 위해서도 지금이 농성을 중지할 시기"라고 권고했다(학생들에게 전달된 메시지). 그러나 양김씨는 정부가 광주사태의 성의 있는 해결과 광주영령들이 열망하던 민주화에 대해 아직까지 충분한 성의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정부 자세의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했다. 그들은 또 "정부가 학생행동을 뚜렷한 근거도 없이 용공. 반미로 몰려는데 대해서는 절대로 이를 동의하지 않으며,분노를 느낀다 "고 말하고 언론의 유사한 자세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양김씨는 이어 "학생들의 태도 즉 인질을 잡지 않은 점 폭력을 사용하지 않은점. 그리고 진지하게 대화를 진행한 점은 미국 조야에 큰 인상을 주었으며 우리 국민과 모든 정치인에게 광주사태 해결의 중요성과 민중성을 인식시키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재야 민주화추진 단체들은 일제히 학생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미국측의 성실한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재야 민주화추진 단체들의 연합체인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의장 문익환 목사)은 "이번 농성사건의 근본적 책임은 미국측에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번 농성사건의 원만한 수습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주장과 행동을 정당한 것으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및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등 5개 단체도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은 오로지 광주의 진실을 동시에 미국의 책임 여부 및 입장을 밝히려는 애국학생들의 충정에서 나온 행동이며 이는 언론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데서 올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하고 학생들의 농성을 지지했다.
한국의 저치상황에 대한 미국정부의 잭임문제는 긴밀한 한미관계가 수립된 이후 간간히 제기되어 왔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한반도의 남부에 진주한 미군이 미소 냉전체제 속에서 한반도의 분단에 동의함으로써 미국은 민족해방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와 함께 민족분단의 씨앗을 뿌렸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 미국은 한국에 막대한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한국민의 감사를 받았지만 한편 한국경제가 미국 시장권에 편입됨으로써 자립과는 거리가 먼 보세가공형 산업을 건설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감기가 든다고 할 정도로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져오게 한 책임 또 한 벗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온갖 불만에도 불구하고 한국민들은 미국을 '혈맹'으로 부를 정도로 미국민들의 선의를 신뢰하고 있었고 심지어 한국의 민주화가 미국 정부의 강력한 압력에 의해 달성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그야말로 사대주의적이고 착오적인 환상에 빠진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대주의적인 기대는 미국정부의 영향력이 종종 독재정권을 유지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차츰 드러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것이 근본적으로 붕괴된 것은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진압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미국 정부가 이 사건에 깊이 개입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이에 따라 한미관계의 역사와 현실이 비판적으로 분석되면서 미국 정부가 그러한 사건에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이 부각되었다.
미국적부에 대한 항의는 아무리 '혈맹'의 우방이라고 해도 어떤 방향으로든 국내정치에 공공연히 개입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업사는 자주성의 발로로서도 볼 수 있다. 그후 광주 및 부산에 있는 미국 문화원이 미국의 광주민중항쟁 진압에 대해 항의하는 한국인에 의해 방화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학생들의 이번 미문화원 농성은 종래의 미문화원 방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학생들이 보인 이번의 집단 행동은 폭력과는 거리가 먼 평화적인 시위였으며 미국 국무성도 "폭력 인질사태는 없었다"고공식 발표했다. 이들은 또한 구체적인 요구를 제시함으로써 자기들의 목적이 '반미'가 아니라 올바른 한미관계의 정립을 위한 전제조건의 충족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많은 한국민들은 미국 정부가 광주민중항쟁 진압에 개입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통해 이 문제가 온 세계 앞에 제기된 이상 미국 정부는 인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해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미국정부의 대응에서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음이 보인다. 미국무성의 버너드 칼브대변인은 학생들의 농성사태에 대해 "학생들의 주요 문제는 80년의 광주사태 및 전두환 대통령정부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의 개입을 부인하고 있으며 워커 주한 미국 대사는 농성 학생들에게 편지를 보내 "본인은 많은 문제점들에 관한 여러분 자신들의 견해를 표명함에 있어서 여러분이 택한 그 방법에 대해서는 뜻을 갈이할 수 없지만 우리 양국관계와 연관된 중요한 사실들을 조사하고 논의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대에는 의견을 같이 한다"고 매우 함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학생들의 농성이 끝난 5필26일 오후 내외신기자회견에서 그는"이번 사태로 한미관계에 해가 미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고 다시 종래의 미국 정부 입장을 고수하였다.
농성과정에서 보인 미국 정부의 애매하고 상호모순되는 견해가 앞으로 미국의 대한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한미 간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이번 사건을 종래의 방식대로 처리할 경우 한국민의 미국에 대한 불신이 더욱 뿌리깊게 자리 잡을 것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학생들의 농성사건은 광주민중항쟁 무력진압의 진상에 대한 국내의 논의에 대해.결정적인 자극제가 되었다. 김대중·김영삼씨의 학생들에 대한 약속이 없었더라도 국회는 이제 이 문제를 더 이상 어물쩡 넘겨버릴 수는 없게 되었으며, 이 문제는 민주화추진의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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