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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5.18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동정일지 - 전두환 부장, 계엄사령관과 세 차례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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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동정일지

전두환 부장, 계엄사령관과 세 차례 만나




                                          김용삼(월간조선 기자)



  계엄사령관의 동정일지는 광주시위의 촉발에서 진압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활동과 역할을 시간표 순으로 담고 있다

  5· 18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의 「동정일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특히 광주에 공수부대가 투입된 5월18일부터 진압작전이 완료된 5월27일까지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시간별 일정을 자세히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간단명료하게 기록된 이 일지는 언뜻 보면 무미건조한 일정의 나열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의미들은 간단치가 않다. 이 일지와 검찰의 「5 · 18 관련 사건수사 결과」 자료를 상호체크하면 광주시위와 관련한 계엄군 지휘관들의 대응, 신군부 핵심실세였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서리의 역할등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5월18일(日). 이날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비상계엄 전국확대에 따른 후속조치로 전군에 소요진압부대 투입 작전명령을 하달했고, 새벽 1시에는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했다.
  시국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오후 1시30 분-3시30분 사이 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 주최 오찬행사가 있었다. 참석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 유병희 합참의장, 전두환 중정부장서리 겸 보안사령관, 해 공군 참모총장,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정호용 특전사령관, 노태우 수경사령관.
  5월19일(月 )은 별다른 일정이 눈에 띄지 않는다.
  5월20일(火).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 하루 종일 관리참모부장, 정보참모부장,헌병감, 작전처장, 법무감 등의 보고가 이어졌다. 검찰 수사결과에 의하면 이날24시경 윤흥정 전투교육사령관은 계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을 끌면 피차간에 유혈충돌이 일어날 것 같다』며 광주에 보병부대 투입과 공수부대의 시 외곽 철 수를 건의, 승인받았다.
  5월21일(水)은 석가탄신일이자 오후에 광주 금남로에서 11공수여단의 집단발포가 있었던 날이다. 새벽 4시 30분-5시45분 계엄사령관 주재로 「계엄사 대책회의」가 열렸다. 오후 2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국방부 장관 주재 회의에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계엄군의 광주 외곽 철수와 자위권 발동이 최종결정되었다. 계엄사령관은 오후 7시30분,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자위권 보위를 알리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5월22일(木)은 하루 종일 동원참모부장, 군수참모부장, 정보참모부장의 보고가 이어졌다. 검찰수사결과에 의하면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이날 자위권 발동 대상, 시기와 방법, 결과보고 등에 관한 계엄훈령 제11호를 하달했다.
  5월23일( 일 ). 오전 8시50분 이희성 계엄사령관은황영시 육군참모차장과 참모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소요진압작전 계획을 논의했다.
  5월25일. 검찰수사결과에 의하면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새벽 4시, 김재명 작전참모부장에게 광주 재진입 작전계획 수리 지시를 내렸고, 지시에 따라 육본 작전 지침인 「상무충정작전」이 작성되었다.
  이날 오전 11시10분-12시15분 사이 전두환 보안사령관, 노태우 수경사령관의 보고에 이어 12시15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오찬회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는 주영복 국방부 장관, 이희성 계엄사령관,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전두환 보안사령관, 노태우 수경사령판이 참석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법적 대리인인 이양우 변호사의 주장에 의하면 이 자리에 보안사령관을 참석시킨 이유는 북한군의 동향을 보고받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계엄군 수뇌부는 이날 회의에서 광주사태 진압을 위해 광주시내에 계엄군을 투입할 때 발생할지도 모를 북한군측 도발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에 해군의 증강을 요청
키로 했다.
  그들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 후 유병희 합참의장을 통해 미국 정부에 해군력 강화를 정식요청했다. 이 요청에 따라 미 항공모함이 한국 해역에 배치된 것이라고 한다.
  5월27일은 광주시에 계엄군이 투입되어 진압작전이 마무리된 날이다. 이날 동정 일지의 「주요전화」란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남아 있다.
  「05 : 15 전교사령관 지휘보고 전화. 05:17 작전참모부장 지휘보고 전화. 05 : 19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보고.05:23 각하께 전화보고. 15 : 30 각하 전화」
  이날 특기사항란에는 「03:30광주 전지역 작전개시, 15 : 10도청잔당 소탕 완료,일반피해 없음. 생포 약 2백명, 아군 피해 없음」으로 기재되어 있다.
  「동정일지」에 의하면 5월18일∼27일 사이 광주에서 민주화 시위가 촉발되고 진압되는 과정에서 전두환 중정부장 서리 겸 보안사령관은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세차례 만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날짜별로는 ▲5월 18일 오후 3시30분(총장주최 오찬)▲5월20일 오후 4시45분-5시30분(보안사령관 보고) ▲5월25일 11시10분-오후 2시 30분(보안사령관 보고 및 오찬회의)
5공측 변호인단은 이 자료를 근거로 광주의 진압작전은 군 작전의 적법한 지휘계통에 의해 이루어졌고, 신군부로 상징되는 전두환 장군측의 진압작전 개입은 불가능했다는 것을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