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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장군님,저를 꼭 법정에 세워야겠습니까?"

본문

장세동 12 · 12 고소인들에 화해 요청했다.

          "장군님,저를 꼭 법정에 세워야겠습니까?"



이성희(본지기자)



12 12의 공소시효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검찰은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서면질의론 결정했다. 두 전직 대퉁령 캠프에서도 당당하게 맞서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당당함의 뒤안길에서는 12 · 12고소인들을 찾아다니며 요청하는 모습도 확인이 되고 있다. 대구 경주 보궐선거로 '보수신당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 사이에서 정치9단 YS와 전후한 캠프의 숨가쁜 정치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12일. 12 · 12쿠테타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게 서면질의를 하겠다고 전격발표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전직대통령이 조사를 받기는 이번이 세번째. 전직대통령이 조사를 받는 것은 그만큼 흔치않은 불명예다.
  그러나 그런 불청객을 맞이하는 두 전직대통령 진영의 표정은 의외로 당당했다. 아니 마치 바라던 일이라는 표정이었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민정기 비서관은 "그동안 한쪽의 일방적인 얘기만 알려져 12.12의 실체가 상당히 왜곡돼 있다"며 역사에 바른 기록을 남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하겠다는 여유까지 보였다. 한마디로 이젠 당당히 맞서겠다는 얘기였다.
  이런 자세는 지난해 8월 감사원의 평화의 댐, 율곡사업조사 때 보인 반응과는 대조적이다. 당시만 해도 "대통령이 통치권차원에서 결정한 걸 가지고 법정에 서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였다.

장세동 패자에게 고개숙이다

  그렇다면 12 12 수사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응으로 돌아선 이유가 뭘까. 그들은 정말로 김영삼 대통령이 규정한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인 사건'의 멍에를 벗어던질 자신이 있는 것일까.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표면에 드러난 사실을 거꾸로 이해하는 독해법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 혹시 12-12 쿠데타 주역들의 자신감도 그런 것 아닐까. 기자는 그 당당함의 뒤안길을 찾아갔다 거기엔 12 · 12 쿠데타 주역들의 또다른 얼굴이 있었다.
  5공화국 실세 장세등.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권력을 쥐고 흔들던 그가 전쟁기념관에 나타난 것은 지난 7월 23일 오후 2시 30분.
12.12당시 쿠데타 주역들에 의해 점령됐던 육군본부 자리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을 관리하는 전쟁기념사업회의 현재 회장은 공교롭게도 12.12 당시 쿠데타 주역들에 밀려 군복을 벗어야 했던 이재전 장군.
  역사의 변화무쌍함 때문일까 12.12 당시 승자와 패자였던 두사람은 이제 피고소인과 고소인이라는 뒤바뀐 처지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장세동씨는 이재전 장군과는 평소에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 만남을 위해서 장세동씨는 세번이나 전화를 해야 했다. 장세동씨는 그저 개인적으로 찾아온 것이라고 굳이 밝히는 조심스러움까지 보였다.
  서먹한 분위기가 흐르고 얘기는 장세동씨의 정중한 설득으로 시작됐다. 장세동씨의 목소리는 정중했다. "군의 선후배 사이인데 그럴 수 있느냐. 피고소인들 중에는 중령도 있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사람이 중령을 고소하는 것도 보기좋은 모습은 아니다. 이렇게 나가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소를 취하해줄 수는 없느냐"는 논리로 간곡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재전 장군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이보시요, 장장군. 당신과 나는 잘 아는 사이도 아니요. 장군도 군형법을 알겠지만 군사반란죄의 경우 그 수괴는 총살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잖소. 그리고 고소인은 개인으로 고소한 것이 아니요. 당시 군지도부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 거요." 장세동씨는 아무말이 없었다. 설득은 실패로 끝났다.
  비숫한 시기 장세동써는 12.12고소인 중 또다른 한사람이자 12.12 당시 직속상관이었던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찾아갔다. 장태완 장군은 12.12루데타 주역들에 의해 체포되어 온갖 고문과 수모를 당한 12.12피해의 장본인.장세동씨는 감옥에서 나을 때마다 그를 찾았다고 한다. 장태완 장군은 이날의 만남도 그런 인사방문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안부인사로 시작해서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가 오고갔다. 그리고 해어질 무럽, 장세동씨는 은근히 웃으며 장태완 장군에게 "사령관님 저를 꼭 법정에 세워야 하겠습니까?" 하며 말을 건넸다. 그러나 장태완씨의 마음을 돌이키지는 못한 듯. 장태환씨는 전두환씨가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안하는데 어떻게 고소를 취하할 수 있느냐"며 고소취하는 절대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장세동씨가 만난 12.12 고소인들은 더 있다. 전성각 장군은 장세동씨를 만나긴 만났다. 이전에 알던 사이니까 인사차 만난 것"이라고 말할 뿐 자세한 얘기는 꺼리고 있다. 이외에도 장세동씨는 최명재 장군도 만났다고 한다. 또 12.12쿠데타 주역 중의 한사람인 차규헌써도 정승화 총장을 찾아가 고소취하를 요청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만큼 장세동씨의 움직임은 장세동씨 개인적인 움직임이라기보다 연회등 전두환 캠프의 동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12.12조사 '장난이 아니네"

  물론 이런 장세동씨의 바쁜 행보는 물밑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2.12 고소인들을 만나는 장세동씨의 태도에는 검찰 조사과정이나. 언론에 보여준 그런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이재전 장군처럼 그동안 만나지도 않던 사람까지 찾아다닌 걸 보면 뭔가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장세동씨가 그렇게 잠행을 하면서 시도한 화해제스처가 실패로 끝나갈 무렬 12 · 12피고소인측에서는 갑자기 공세적인 대응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28일 12 12당시 신군부측에 가담했던 차규헌 전 수도군단장은 정승화 총장 등고소인들을 상대로 무고죄로 맞고소 했다. 며칠 뒤인 8월3일 피고소인 중 당시 30사      단장이었던 박회모씨 는 30사단 병력을 움직인 것은 직속상관인 황영시 1군단장의 명령에 의한 것 이라며    고소인들 22명을 무고죄로 고소했다. 이 외에도 8월 12일에는 12.12당시 실병지휘관이었던 박희도씨등 8명이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과 김진기 전 헌병감을 내란 또는 반란 협의로 서울지검에 맞고소했다.
  장세동씨의 화해제스처와 그것이 실패하자 이어지는 전격 맞고소. 불과 10여일 사이에 전두환캠프의 표정은 극에서 극으로 바뀌었다. 그만큼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12 · 12고소사건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두 전직대통령이 당당하게 서면조사에 응하겠다고 나오는 것과 그런 절실함은 어떤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동안 검찰의 12 · 12 사건 조사과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2 ·12 쿠데타 주역들은 처음에 검찰조사를 그저 한 번 지나가는 바람으로 별 부담없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작년 5월 13일 김영삼 대통령이 '12.12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인 사건'이라고 규정하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평가는 하되 처벌은 역사에 맡기자"며 사법처리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검찰에 출두한 피고인들이 웃으며 사진기자들에게 포즈까지 취해주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여유는 몇시간 뒤 검찰청사를 나을 때면 어두운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한명 한명 조사를 받고 나을 때마다 무슨 내용을 조사받았는지 서로 확인을 하게 됐다. 그렇게 34명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12.12사건 피고소인들의 표정에서는 초조한 빛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투한, 노태우 진영이 찾은 탈출구

  물론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 진영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지만은 않았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면서 뭔가 탈출구를 찾아나선다. 그런 고민끝에 만들어낸 작품이 바로 6월 25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등이었다. 이 모임을 주선한 유학성 전 의원은 "뭐하는 거냐 이러다가 다 죽는다"는 논리
를 펴며 두 전직 대통령이 손을 잡도록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지난 88년 이후 한번도 개인적으로 만나지 앉았을 전도로 소원했던 두 전직 대통령든 12 · 12 검찰 수사에 대응하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마치 12 12당시처럼.
  그러던 YS는 정녕 사법처리라는 칼을 뽑을 것인가 지금까지 YS는 그 칼을 날카롭게 갈기만 했을 뿐이었다. 이미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는 1년에 걸친 조사 끝에 거의 밝혀졌다. 그러나 검찰은 사정을 두지 않고 조사를 할 뿐 사법처리 여부는 항상 '조사가 끝나봐야 안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왜 그랬을까.
  물론 사법처리가 쉬운 것은 아니다 허삼수. 허화평 의원 등 12.12 피고소인들 중에는 현직 의원들도 있다 또 민자당 의원들의 상당수는 사법처리가 될 경우 비빌 언덕이 없어진다. 그만큼 전직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는 민자당 내의 심각한 반발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YS가 사법처리를 서두르지 않는 것은 그런 민자당
내 역 관계와도 관련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Y5의 스타일은 이런 사안을 미리 결정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어차피 칼자루는 이미 쥐고 있고 여론의 동향을 봐가면서 결정하면 되는 문제기 때문이다. 결국 사법처리 문제도 여론의 동향과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진영의 대응을 봐가면서 막판에 결정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12.12의 사법처리를 서두르지 않는 것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세력에 대한 견제용으로 쓰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과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그렇게까지 견제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견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YS의 집권후반기 구상을 위한 비장의 카드가 들어있다.

국회 주변에 떠도는 '신당설'의 실체

  잘 알려진 대로 YS는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서 집권여당인 민자당을 YS당으로 만들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추진해오고 있다. 새정부 출범 이후 1년 6개월여 동안 줄곧 정비작업은 계속됐다. 지금까지 75개 지구당 위원장이 바뀌었다. 머지않아 또다시 25개 정도의 지구당 위원장을 교체할 계획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것만 해
도 전체 2백75개 지구당의 42%가 교체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15대 총선을 앞두고 더많은 지구당 위원장들이 교체될 것은 불문가지.이런 추세로 간다면 15대 총선을 거치면서 민자당은 명실공히 '김영삼당' 으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이런 민자당의 조직개편은 당연히 탈락하는 지구당 위원장들을 양산하게 마련이다. 아마도 그 주요한 대상은 5, 6공세력이라 불리는 민정, 공화계 의원들일 가능성이 크다. 5공화국 시절 안기부장까지 지냈던 한 의원 보좌관은 그심경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 의원은 지금도 민자당 내에서 별다른 역할이 없다. 만일 15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다면 의원은 정치를 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다. 의원과 같은 처지의 정치인들이 모여서 정치결사체를 만든다면 적극적으로 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민자당의 YS당화 과정에서 탈락하는 5, 6공 시대의 정치인들이 만드는 정치결사체. 이른바 신당설은 YS가 집권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얼굴을 가지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을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 5.6공 소외세력들이 만드는 신당설. 대구경북지역에 근거를 둔 TK신당설. 5. 6공 탈락세력과 일부 보수적인 야당세력과의 연합으로 만드는 보수신당설 등등‥‥ 어쨌거나 YS의 민자당 조직개편은 신당창당설의 토양을 제공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 YS의 그늘에서 벗어난 5,6공 인사들 중에는 벌써 준비운동을 시작한 사람들도 눈에 띄고 있다. 박희도, 안병호씨 등 군출신 인사들이 사무실을 내고 활동을 시작했고, 노대통령의 아들인 재헌씨도 대구에 사무실을 내고 활동중이다. 박준규 전 국회의장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비록 전면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뜻있는 정치세력을 뒤에서 밀어주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이 신당이라고 하는 실체까지 가기에는 아직 이르다. 현재로서는 이미 조직책에서 탈락하거나 '팽'이 된 사람들 말고는 민정계가 대거 탈당할 가능성은 없다 민자당의 한 인사는 '공천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10%의 가능성만 있어도 당을 떠나지 못하는 게 여당의원들의 생리"라고 말하고,있다. 결국 신당
에 참여할 수 있는 인사들이 대거 배출되는 시기는 15대 총선이 눈앞에 다가와야 윤곽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손오공의 머리에 씌워진 쇠고리

  신당창당의 어려움은 그것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간판스타가 없다는 점이다. 민자당의 한 민정계 인사는 "신당 창당은 회오리 바람과 같다. 한번 볼기 시작하면 주변에 널린 가능성들을 빨아들이며 탄생돼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오리바람의 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그 핵은 돈도 있어야 하고. 대중적인 명망성도 갖추어야 한다. 그 핵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정치인. 지금으로서는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이 가장 흡인력이 있다.
  특히 전두환씨의 경우 그런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일단 탄탄한 재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채시장에서는 '연희동 머니'라는 이름이 나돌 정도라고 한다. 또 그동안 과거 부정적인 이미지도 상당히 씻어냈다.전대통령 주변을 집중적으로 취재했던 한 일간지 기자는 그 비법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일단 전두환씨나 그 측근들은 기자들을 잘 만나주지 않는다. 당연히 그들의 움직임은 베일에 싸이고 만나는것 자체로 기사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기사를 쓸 만한 기자들만 가끔씩 만나주는 식이다. 그러니 전두환씨에게 우호적인 보도가 많이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 게다가 정치에 대한 의욕도 있다. 특히 장세동, 안현태씨 등 측근들은 그런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장점 때문쉐 YS정권하에서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난 민정,공화계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행보를 곁눈질로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진영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겨냥한 제스처를 보이고 있긴 하다. 지난 6월 25일 두 전직 대통령이 화해의 악수를 나눈 것도 한편으로는 검찰수사에 공동전선을 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행보를 바라보고 있는 5, 6공 세력에게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하는 일석이조의 효와를 노린 것이다. 두 전직 대퉁령 진영에서는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미리 그 전날 연합통신에 정보를 흘려서 기자들의 관심을 최대한으로 모으는 치밀함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 진영에겐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서유기』에서 나오는 삼장법사가 손오공 머리에 씌워준 쇠고리처럼,전두환 전 대통령 진영의 머리위엔 12 12라고 하는 굴레가 쐬워있다. YS가 '12 · 12 검찰조사 사법처리'라는 주문만 외면 언제 사법처리의 올가미가 조여올지 알수 없는 일이다.
  YS는 이 지점에 주목해왔다.한편으로는 민자당을 '김영삼당'으로 조직개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당연히 생길 수 밖에 없는 이탈세력이 정치세력화 하는 것을 최대한 견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12 · 12에 대한 수사는 아주 효과적인 견제수단이다. 그 자체로 신당창당을 방지하거나 억제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 사법처리를 하는 것과는 별도로 검찰조사를 원칙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YS의 발목잡기와 두 전직대통령의 손잡기. 어찌보면 YS의 민주계와 5. 6공 핵심세력은 그렇게 12 12를 놓고 보이지 않는 긴장관계를 유지해온 것이다. 당연히 긴장관계의 주도권은 YS손에 쥐어진 채로.

보궐선거, 정치에는 내일이 없다.

  그런데 그 안전판에 경고등이 켜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대구 경주 보선 결과 민자당에게 1숭2패란 참패를 의미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지난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대구경북지역에서 민자당이 연패했다는 사실이다. 민자당은 14대 , 총선에서 48%, 14대 대선에서'61.3%를 얻는 등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으나 4차례 보결선거에서는 평균 33.9oA로 급전직하해버렸다. 작년 대구동을지역 보궐선거에 이어 이지역의 반YS정서가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그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장영철 경북도지부장은 "대구 수성갑의 정해창 위원장은 1년 이상 준비를 해왔는데 참패했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대구 경북지역의 민자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제 민자당 간판으로는 힘들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 보선결과로 대구 경북의 정계기상도에는 언제 소나기가 내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대기층이 형성되었다.
  게다가 내년부터 지자제 선거, 15대 총선 등 정치일정이 본격 가동되기 시작한다. 정치인들로서는 내년 지자제 선거는 중요한 전초전. 이때 정치기반을 구축하지 않으면 그 다음엔 이미 때는 늦어버린다. 따라서 민자당에서 탈락했거나 탈락할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사들은 이제 독자적으로 살림을 꾸릴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다시말해 대구. 경주 보선이 없더라도 신당창당의 움직임은 활발해질 수밖에 없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대구. 경주지역의 보귈 선거는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이번 선거결과가 신당창당설이 또 다시 고개를 들게 하는 강력한 지렛대가 돼버린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언론에는 선거결과가 나오자마자 신당창당 가능성에 대한 조심스런 관측기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정가에서 떠돌고 있는 것은 보수우익신당설. 5, 6공은 물론 현정권에서 밀려난 인사들을 포용해서 신당을 창당한다는 것이다. 5, 6공의 잔당이라는 이미지를 벗기위해 민주당이나 YS의 민자당보다 보수적인 이념을 내세우면서 이 사회의 보수적인 대중을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나가는 정당을 만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안병화씨의 구속, YS의 신속한 반격

  그런 신당출현가능성이 커지면서 YS로서는 집권후반기 구도를 짜나가는 데 상당한 부담을 안게됐다. 여기서 정치9단 YS의 신속한 반격이 시작된다. 대구 보궐선거 결과가 나온 바로 다음날인 8월 3일. 검찰은 안병화 전 한전사장을 뇌물수수혐의로 전격소환했다. 수사결과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에게 원전건설 수주를 둘러싸고 2억원대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다.그러나 단순한 뇌물수사라고 보기에는 몇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의 안병화씨에 대한 수사는 이미 몇달전에 조사가 다 끝났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환이 되자마자 혐의사실을 다 시인했다는 것은 미러 준비되었던 결정적인 근거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안병화 전 사장은 6공화국 시절 돈을 주무르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가 한전사장의 연임을 위해
뇌물을 ,받았다면 그 돈을 누구에게 건넸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당연히 그 여파는 5, 6공의 정치인사들에게 번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안병화씨에 대한 수사는 대우, 동아그룹 두 회장들을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그것은 한편으로는 5, 6공 세력에게 경거망동을 하지 말 것을, 다른 한편으로는 재계서는 민자당이외의 다른 당에 돈주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보선결과를 놓고 5,6공 세력이 꿈틀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대증요법 차원의 수사가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정치성을 띠고 있다는 얘기다.

YS와 전대통령의 정치게임

  YS의 이런 신속한 반격은 내심 기회만 엿보고 있던 전두환, 노태우 진영에도 당흑스러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안병화 한전사장의 구속으로 5, 6공세력은 또다시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12· 12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가 어떤 결말이 날지도 모른다. 뭔가 길을 찾아야 한다. 더이상 움츠리는 모습을 보이면 신당 창당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그렇지만 12 · 12 검찰 수사결과가 아무래도 걸린다. 12· 12고소사건만 벗어날 수 있다면‥‥ 그런 절박감이 12 · 12 고소인들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고소취하를 요청해보기도 하고, 무고죄로 맞고소도 해보도록 만든 것 아닐까.
과연 YS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치게임의 결론은 어떤 것일까.아마도 그 답은 12.12의 검찰수사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