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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5.17은 군부 독재 수립 위한 쿠데타

본문

5.17은 군부 독재 수립 위한 쿠데타

미국과 사전 협의 '제 2의 유신'획책



현 군부 독재 정권이 왜 폭력과 기만의 집단으로 규정되어야 했는가? 6월 민주 항쟁은 왜 그토록 엄청난 폭발력을 지녔었는가? 이 같은 질문에 정확한 해답이 자유롭게 모색될 수 있기 위해서도 이만에 민주화가 달성되어야 한다.

노태우씨는 최근 관훈클럽 대담에서 12.12는 구국 일념에서 한 행동이며 5 ·17은 혼란을 진정시키고 질서를 잡기 위한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12·12가 군부 반란이라는 것은 당사자들의 증언을 통해 명확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전체 국민에 대한 테러리즘적 성격을 지닌 5. 17 도 그 진상이, 그 전모가 공개되어야 한다. 광주 민중 학살로 연결된 5. 17비상 계엄 화대 조치는 노태우씨의 주장대로 '혼란을 진정 시키고 질서를 잡기 위한 행위' 는 결코 아니라는 심증을 전체 국민은 갖고 있다. 학살의 주역들이 아직 권좌에 앉아 국민을 탄압하는 비정상적 상황 속에서 '거짓이 거짓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다. 민중을 살육하고 폭도로 몰았던 피묻은 손은 오늘날 보통 사람이라는 허울속에 유세 장에서 장미꽃을 뿌리고 있는 형편이다. 6 ·29가 군부 독재에 의해 주도된 전술적 기만책이며, 독재의 주무기인'폭력'은 잠정적으로 유예되었을 뿐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이 땅에 더 이상 폭력과 기만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군부 독재의 범죄 상은 공개 되야 한다. '광주의 넋'을 모독하는 노 후보의 5 ·17발언도 그 거짓의 껍질이 벗겨져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키워진 군대의 총칼에 납세자의 선혈이 낭자하던 80년 5월의 한국을 주시하던 세계의 언론은 5 ·17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규정하고 있다-12· 12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 · 노태우 세력은 미국의 비호 하에 군부 독재 정권을 수립키 위해 5.17 비상 계엄 조치를 취했다. 이 글은 5·l7를 조명한 미·일 주요 언론 매체의 보도 기사를 발췌·정리한 것이다.

미국, 3김의 집권 원치 않아

5·17비상 조치 이후 김종필씨는 부정 축재 혐의로, 김대중씨는 학생 데모 배후 조종 혐의로 체포됐고 김영삼씨는 가택 연금 되면서 이른바 '3김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이러한 5.17쿠데타의 서막은 12.12 직후인 80년 1월에 올랐다. 1월 중순 방한했던 홀부르크 미국 무성차관보는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와 함께 공화당, 신민당의 소장파 의원들을 초청 "금후의 한국 운명은 여러분들의 활약에 달려 있다"라며 미국은 구 세력의 정화를 암암리에 기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 뒤 곧바로 공화당 내부에서는 '정풍 운동'일어난 공공연히 '김종필 비판'이 시작됐다. 2월에 들어서 김종필 인맥으로 알려진 이병희씨가 "재산을 국외로 빼돌렸다" 김종필씨 측근인 김치열 전 법무 장관이 일본에 망명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또4월에는 뉴스위크지가 보도하여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주한 미 대사관 관계자의 정보가 전해졌다. 즉 박정희씨의 후계자로 매스컴에 각광받고 있는 3김씨 중 어느 누구도 차기 대통령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다음과 같은 정보였다.

김종필씨는 ▲부정 축재의 원흉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척 ▲충남 출신으로 경상도 출신이 아니며 ▲친미파 라기 보다는 친일파라는 이유로 가능성이 없다. 김대중씨는 ▲전라도 출신으로 경상도 출신이 아니며 ▲군부가 용공 파로 보고 있으며 ▲국가 안보의 견지에서 쿠데타를 일으킬 우려가 있으므로 절망적이다. 김영삼씨는 ▲국민적으로부터 사쿠라 야당으로 비쳐져 왔고 ▲기회주의자 ▲국가 지도의 정책 결여로 가능성은 적다.

이 미국무성 관계자의 정보는 차기 대통령에 관한 미국의 희망을 실질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또한 12.1군부 쿠데타로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 국군 보안 사령관의 배후에 윤필용 전 수경 사령관이 있으며 당시 군 집행부인 이희성 계엄 사령관-전두환 라인과 미국이 친일. 반 미 색채의 김종필 씨 등장을 막은 것으로 추정된다.

'5.17정변'을 일으킨 전두환 중장의 인맥을 보며 신임 계엄 사령관 이희성 장군은 전두환 소장의 자형이며, 노태우씨는 육사 동기생으로 충실한 동생 격이다. 정호용 공수 단장은 육사 동기생이다. 또한 황영시씨는 노태우씨와 의형제이며, 김복동씨는 노태우씨의 의형제이며, 김복동씨는 노태우씨의 자형이다.

이들은 모두 경상도 출신으로 이른바 '경북 마피아'로 불린다. 김종필씨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유의 하나도 경상도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3개월간의 미국 체재를 끝내고 3월1일 귀국한 이후락씨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최규하--신현확 라인에 대립했던 김종필씨를 드러내 놓고 비판, 퇴진을 요구했다.

이후락씨의 귀국을 공작했던 인물은 차규헌씨(12.12주역)로 알려졌다. 차씨는 이후락씨를 '김종필 비판'에 이용함으로써 김종필 인맥의 숙청 구실을 삼았다. 그러나 결국엔 이후락씨 자신도 부정 축재로 체포되고 말았다.

신현확 총리의 뉴욕 타임즈 (4월17일)인터뷰에서도 5.17정변을 예측할 수 있다. 동지의 인터뷰에서 신 총리는① 권력의 이원집 정제 ②정치 일정의 확립 ③헌법개정의 정부 주도④소선거구제를 중 선거구제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는 권력을 이원화하여 미국이 원하는 독재 배제에 응하고, 정치 일정은 최 대통령의 취임 공약을 실현시키며, 헌법개정은 정부 주도로 여당. 재야 세력의 주장을 거부한다는 뜻이었다.

마지막의 중선거구 제로의 전환은 김종필씨가 이끄는 민주 공화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회의 세력 균형을 와해, 최-신라인의 확고한 결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최-신라인이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을 이면에서 조작했다는 증거도 있다. 3월 중순 학생들이 내건 슬로건에는 '유신 잔당 일소'가 첨가돼 전남의 모 대학내에 이 내용을 담은 유인물이 처음 뿌려졌다. 그 뒤 5월1일 10.26이후 최초로 충남의 모 대학생들이 가두데모를 벌였다. 박 정권 하에서는 반정부 투쟁을 전혀 벌이지 않았던 이 대학생들은 계엄사가 학원 데모에 대해 엄중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한 다음날 돌연히 가두로 진출, 경찰과 충돌한 것이다. 이는 '유신 잔당=김종필'을 국민들에게 어필시키기 위한 공작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경북 마피아'들로 신당 결성 움직임

확실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여론 조작과 함께 신 총리는 석유 가격 상승 조치로 6백억원의 신당 결성 자금을 확보해 놓았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또 김종필씨의 자금을 끊기위해 화폐개혁도 고려했다고 한다. 최 대통령은 현 체제를 스스로 '위기 관리 체제'라 부르고 과도 정권을 연장시켜 시기가 오면 경상도 출신을 중심으로 신당을 결성. 정부 주도하에 헌법을 개정하고 신당이 추대하는 인물을 81년 가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국의 대학생이 가두로 뛰쳐나왔던 5월13일 주한 미군과 한국군은 한국 영공에서 연합 방공 훈련을 시작했다. 다음날인 14일 위컴 주한 미군 사령관은 '개인적인 용무와 모종의 업무 연락을 위해' 귀국했다. 위컴 사령관의 귀국 중에 '5.17 정변'이 일어난 것이다. '12.12숙군 쿠데타'때는 주한 미군에게 사전 통고하지 않고 휴전선의 부대를 동원했기 때문에 미국은 전두환 보안 사령관에게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이번에는 여야 정치인, 재야 세력 지도자들을 대량 체포했는데, 사전에 미국에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