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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한용원 "안필준 보안사령관 친위쿠테타 지시"

본문

한용원 "안필준 보안사령관 친위쿠테타 지시"



진술자:한용원(전 보안사 감찰실장)

진술일:1996년 2월 5일

담당검사:서울지검 임성덕



●안필준, 친위쿠데타 지시

● 『쿠데타 불가 건의, 홀대받았다』

●허화평,5 · 16연구 지시

●국보위 참여, 조순은 거절

●신당 참여, 정대철 거절



검사 : 진술인(전 보안사 감찰실장)의 예편 사유는 무엇인가요.

한용원 . 1985.2.10. 실시된 12대 의원 총선결과 의석수로는 민정당이 의석의 과반수를 약간 상회하 였으나 야당인 신민당과 민한당이 합한 득표수는 14% 정도 민정당보다 많은 현상이 발생하였는데 당 시 안필준 보안사령관이 총선 직후인 2월13일 오후에 사령관실에서 불러 가봤더니 85년 3월경 전두환 대이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 레이건 대통령을 친선방문할 계획을 수립하였다고 하면서, 저한테 전대통령의 방미기간중 친위쿠데타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친위쿠데타는 군장성들이 야당 에서 선동 정치를 하여 표를 많이 얻었으니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하여 재선거 를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심사숙고한 결과 1년후면 국회를 헌법에 의해 서 해산할 수 있는데 굳이 쿠데타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2월15일 경 ▲상황분석 ▲쿠데타 의 불가능성 ▲대안의 순으로 18절지 50매 정도 분량의 보고서를 제가 직접 작성하여 안필준 보안사 령관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있지 않아 인사처장인 김도윤 대령이 찾아와서 육군본부 보 안부대장 직무대리였던 것을 부부대장 근무한 것으로 강등시키라고 지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저를 홀 대하기 시작하여 기분이 나빠서 자진 예편 신청하였습니다.

검사 : 10.26 사건이 발생하자 허화평 비서실장이 진술인에게 5 16에 대하여 연구할 것을 지시한 사실이 있 는가요.

한용원 :.79.10.26. 21 : 00경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육본에서 박대통령 시해사실을 확인한 후 보안사에 잠 깐 들렀다가 다시 육본으로 가기 위하여 나오던 중 보안사 뒤뜰에서 우연히 저와 마주치자 『한중 령, 국가에 변란이 났으니 허화평실장을 만나보아라』라고 말하고 훌쩍 떠나버리길래 제가 허화평 실장 방으로 올라갔더니 허실장이 5· 16혁명에 관해 연구해 두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가 변란에 따른 문제라면 계엄선포일 것으로 판단하고 곧바로 보안사 도서관에 있는 『군사혁명 사』라는 책을 가져와 정보1계장 진국흥(2급갑 군무원)씨와 상의하여 포고령초안을 기안하였는데 이미 육군본부에서 모든 조치를 취하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검사 : 허화평 비서실장은 5 · 16혁명에 관해 연구해 두라고 지시했는데 진술인이 계엄포고령을 기안한 이 유는 무엇인가요.

한용원 :허화평 비서실장은 5 16혁명에 관해 연구해 두라고 지시하였으나 제 생각에 국가변란에 따른 문제 라면 우선 급한 것이 계엄선포일 것으로 판단하고 5 · 16때 발령한 포고령 제1호와 제2호를 각색하 여 제가 계엄포고령을 기안하였는데, 그 다음날 육군본부에서 자체적으로 포고령을 기안하여 선포하 는 바람에 제가 기안한 포고령초안은 계엄사에 보내지 않고 정보1계장 진국흥씨가 보관하고 있었으 며, 계엄사령부에는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검사 :보안사에서 비상계엄확대, 국회해산 등 정치활동 규제 , 비상기구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시국수습방 안을 수립하여 추진한 경위는 어떠한가요.

한용원 :80년 .5월 초순경 허화평 비서실장이 저를 불러놓고 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비상대책기구를 만들 구상인데 비상기구에서 일할 사람으로 경제분야에 조순씨와 정치 분야에 손제석씨를 접촉하여 참여 의향을 확인하여 달라』고 지시하여 보안사에서 시국안정방안으로 비상대책기구 설치를 검토하고 있 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80년 5월 초순경 권정달 정보처장이 저를 불러놓고 시국을 안정 시키기 위해서는 권력형 부정축재자를 처리해서 민심을 바로잡아야되겠다고 하면서 김종필 이세호 이후락 박종규 김진만 길재호등 10여명의 명단을 저에게 건네주면서 이 사람들이 거론되고 있으니 안기부와 경찰자료를 건네받고 탐문하여 자료를 만들되 특히 재산관계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어 이들에 대한 비위자료를 종합하여 보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제가 중앙정보부로부터 넘겨받은 존안 자료와 정보처 요원들이 수집한 정보를 기초로 3,4일 동안 작업을 하여 5월10일경 권정달 정보처장 에게 보고한 사실이 있어 보안사에서 시국안정방안으로 권력형 부정축재자에 대한 처리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비상계엄확대와 국회해산은 사전에 알지 못하고 5월17일 경에야 뒤늦 게 알았습니다

검사 : 위 조순씨와 손제석씨를 만나서 국보위에서 일하여 달라고 요청한 경위 및 접촉결과는 어떠한가요.

한용원 :당시 조순씨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이고 손제석씨는 정치학과 교수였는데, 앞서 진술한 바와 같이 제가 서울대에서 위탁교육을 받아 손제석교수님에게 직접 강의를 받은 적도 있어 그러한 사실을 알 았는지 80년 5월 초순경 허화평 비서실장이 저를 불러서 "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비상대책기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종사할 사람으로 경제분야에 조순씨와 정치 분야에 손제석씨를 접촉하여 참여 의 향을 확인하여 달라"고 지시하므로 제가 직접 서울대학교를 방문하였으나 부재중이어서 메모를 남 겨두고 돌 아왔더니 그후 전화가 왔습니다. 조순씨는 그런 기구에 가서 일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 거절하였고, 손제석씨는 승낙하므로 이를 허화평비서실장에게 알려주었으며,그리하여 손제석씨는 국보위 자문위원으로 일하다가 80년 9월1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청와대 교 문수석비서관으로 들어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검사 : 진술인이 접촉을 지시받은 사람은 조순 교수와 손제석 교수 2명뿐인가요

한용원 : 허화평 비서실장으로부터 비상기구에서 일할 교수들로서 제가 접촉을 지시받은 사람은 조순 교수 와 손제석 교수 2명 뿐이며, 제가 알기로는 그당시 허화평 비서실장이 저를 포함하여 보안사 각처 장, 과장 등에게 임무를 분담시켜 여러 교수들을 접촉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 현재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곽태환 교수도 그당시 권정달 정보처장으로부터 국보위에서 일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거절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참고로 덧붙여 말씀드리면 80년 8∼9월 경에 권정달 정보처장이 저한테 신민당 오세응의원과 정대철의원을 접촉하여 신당참여를 간곡히 부탁하라고 지시하므로 제가 그 무렵 서린호텔 방(10 · 26 이후부터 80년 말경까지 보안사 정보처에서 서린호텔 방 1개를 빌려 쓰고 있었음)으로 신민당 오세응의원과 정대철의원을 함께 초청하여 신당참여를 간곡히 부탁하자, 오세응의원은 생각해보겠다고 하였으나 정대철의원은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유학을 가겠다고 하면서 거절하였습니다 그후 오세응의원은 전화로 신당에 참여하겠다고 통보하여 정치활동 규제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 정대철의원은 정치활동 규제대상에 포함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