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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노태우 "예하 공수특전단과 20사단 광주파병 허락했다"

본문

노태우 "예하 공수특전단과 20사단 광주파병 허락했다"

진술자:노태우

진술일자:1995.12.14일 29일

담당검사:서울지검 김상희

● 언론통폐합, 결재받은 문공부가

처리하지 왜 우리한데 떠넘기나

● 수경사 예하 공수특전부대,20사

작전통제 해제, 광주 파견 길 터

● 군수사 안종훈중장 비상계엄 확대 반대에

노태우 · 정호용 발끈

● 임시국무회의 때 중앙청에 배치한 병력,

『IM 간격은 넘었을 것』

● 국무회의장 전화선 끊고 공포분위기 조성

● 정치인 연행 수경사 병력 동원



(95년 12월14일 진술)

검사:전두환의 집권 과정에 누구 누구 핵심적으로 관여하였으며,그들의 구체적인 분담 임무는 무엇이었는가 요.

노태우 :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검사 : 이학봉 정도영 허삼수 권정달 힌허화평등 이른바 5인방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대통령 만들기 작업을 위하여 수시로 피의자를 비롯하여 정호용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 등 12 · 12 주도세력과 모임을 가졌 다는데 , 사실인가요.

노태우 : 위와 같은 목적으로 서로 만난 사실은 없습니다.

검사 :80.5.17 국방부 제1회의실에서 주영복 국방부장관 주재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사실이 있는가요.

노태우 : 예, 참석한 사실이 있습니다.

검사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는 주영복 국방부장관이 독자적으로 소집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 피의자 등 신군부 측의 요청에 따라 신군부가 계획한 계엄확대, 국회해산, 비상기구 설치, 정치활동 규제 등을 추진하 기 위해 소집된 것이지요.

노태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검사: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육군군수기지사령관 안종훈 중장과 그외 1명이 비상계엄 전국확대실시에 대하여 반대발언을 하자 피의자와 정호용 특전사령관등이 그 발언에 대하여 강한 반박을 하였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노태우 :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비장계엄 확대조치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던 사실은 기억이 나나, 안종훈 중 장의 발언은 기억이 나지 않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계엄 확대 조치에 공감을 나타낸 것으로 기억 됩니다.

검사 :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 국무회의의 심의만 거치면 되는데 굳이 전군 주요지 휘관회의에서 계엄 확대를 결의하는 절차를 밟으려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태우 :시국상황의 심각성 때문에 군의 결집된 의견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검사 : 5.17 전군 주요지휘관회의가 열리는 시간에 상피의자 전두환은 이학봉 보안사 대공처장을 대동하고 청와대로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가, 김대중 등 소요 배후조종 혐의자, 김종필 공화당 총재 등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들에 대한 연행 ·조사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태우 : 당시로서는 모르는 일입니다



『간격이 1 m는 넘었을 것이고‥‥』

검사 : 80.5.17. 21:42 비상계엄 전국확대 안건을 심의하기 위한 제42회 임시국무회의가 소집되었지요.

노태우 : 예,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검사 : 그 당시 중앙청 정문에는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되어 있었고, 중앙청 현관에서 국무회의장까지는 양 쪽에 약 Im 간격으로,집총한 군인들이 도열해 있었는데, 이러한 조치는 어떠한 경위로 이루어진 것인 가요.

노태우:집총한 상태로 Im 간격"으로 서게 되면 간격이 좁아서 총기끼리 부딪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제 판단으로는 1m는 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그 병력을 누구의 요청에 의하여 어떤 경위로 증강 배치하였는가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으며,다만 제 생각으로는 그 당시에 학생 동향이 위험하였으므로 국무위원들의 보호를 위하여 병력이 증강 배치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검사:혹시 국무회의에 참여하는 국무위원들을 은근히 협박하기 위하여 일부러,한 조치는 아닌가요.

노태우 : 그것은 아닙니다.

검사 :당시 계엄사령관인 이희성은 피의자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상의하여 국무회의장 주변에 무장한 병력 을 배치하였다고 진술하는데 어떠한가요.

노태우 :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검사 : 5.17. 21:42부터 동일 21:50까지 중앙청 회의실에서 임시국무회의가 열리는 동안 회의장 복도에까지 수경사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왜 내부에까지 배치하였는가요.

노태우 : 비상계엄이 확대되면 경호· 경비 차원에서 요원경비가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것으로 압니다.

검사 :국무회의가 열릴 당시 이미 계엄확대에 따른 전면적 병력 투입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일부 부 대 병력은 이동까지 하였는데, 국무회의 결과와 상관없이 병력 전면 투입을 강행할 방침이었는가요.

노태우: 앞서 말씀드린대로 경호 · 경비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검사 :피의자는 11공수여단, 3공수여단, 20사단 병력이 축차적으로 투입되어 발포를 하는 등 무자비한 광주 재진입 작전이 감행됨으로써 수많은 시민들이 살해된 소위 광주사태를 알고 있지요.

노태우: 광주사태에 대하여는 뭔가 큰 일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알고 있었으나 저와는 전혀 관계가 없 는 일입니다.

검사 : 수경사령관인 피의자가 전두환 보안사령관,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희성 계엄사령관 등과 상의하여 광주사태에 대한 진압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닌가요.

노태우 :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검사 :당시 피의자의 군부내 입지로 보아 당연히 발포명령 과정에 관여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구체적으 로 어떻게 관여 하였는가요.

노태우 : 저로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검사:전교사 부사령관과 헬기부대 지휘관들의 진술에 따르면, 5.21. 이후 광주시민들이 차량을 이용해 광주 외곽으로 빠져나가자 육본 작전참모부장과 차장이 무장헬기를 동원해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데 그에 관여한 사실이 있는가요.

노태우: 저로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검사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설치계획은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보안사 핵심참모인 허화평 , 허삼수, 권정달, 이학봉등 4명이 주도하여 수립하였지요.

노태우 :저로서는 처음 수립단계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검사 : 이를 위하여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피의자를 비롯하여 신군부 세력의 핵심이었던 정호용, 황영시 , 유학성 , 차규헌 등과 사전에 협의한 사실이 있는가요

노태우 :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검사 : 피의자는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 시키기로 마음먹고, 최대통령의 측근들에게 압력을 가해 대통령을 고립시키는 한편, 원로들을 동원하여 설득전을 펴는 양면작전을 구사하여 최대통령으로 하여금 하 야토록 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인가요.

노태우 : 저로서는 모르는 일입니다.

검사:최규하 대통령의 하야에 피의자 등 신군부측의 밀사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김정렬 전 국무총 리라고 하는데 , 사실인가요.

노태우 : 저로서는 모르는 일입니다.

검사 . 피의자와 전두환, 정호용 장군등은 육사 11기동기로서 육사 11기들의 후원자 역할을 하여 온 민석원 을 통하여 그와 부자관계나 다름없이 가깝게 지내는 김정렬 전 국무총리를 알게 되어 어른으로 모시 게 되었지요.

노태우 : 그 당시 저로서는 모르는 일입니다

검사 :최규하 대통령이 80.7.31, 전두환을 청와대로 불러 하야 결심을 밝히고 내자리를 대신 맡아달라고 한 것이 사실인가요.

노태우 : 저로서는 모르는 사실입니다.그러나 날짜는 모르겠으나 최대통령의 하야 직전에 전두환 장군이 그 일에 대하여 상의를 해와 알게 된 사실은 있습니다

검사 : 피의자가 고등학교 선배인 신현확 국무총리에게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를 설득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 나, 신 총리가 거절하였다고 하는데 이런 사실이 있는가요.

노태우 : 없습니다.

검사 :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 결심 과정에 피의자 등 신군부가 폭행이나 협박 등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였 다는데 사실인가요

노태우: 저로서는 그런 일이 없고 제 주변사람들도 그런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95년 12월29일 진술)

검사 : 신학기 개학을 앞둔 1980.2.18.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 명의로 충정부대 및 후방주요부대에 1/4분기 이전에 폭동진압훈련인 충정훈련 실시를 완료하도록 지시 하였지요.

노태우 :예, 그 무렵 그러한 지시가 내려온 것은 사실입니다.

검사 :그리하여 수경사령관인 피의자는 80.3.6. 수경사령부에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1·3. 5. 9 공수여단 장, 20.26·30사단장, 수도기계화사단장, 치안본부장, 서울시국경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1980년도 제1차 충정회의를 개최하여 수도권 소요사태를 점검한 사실이 있지요.

노태우 : 예,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검사 : 회의 결과 대규모 학생시위를 주도하는 핵심세력을 이상주의적 맹목저항세력으로 규정하고, 문제학 생과 교수는 사회로부터 격리하며 군투입을 요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강경한 응징조치가 요망된 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노태우 : 예, 맞습니다

검사 :위 충정회의는.신군부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학생운동권의 정당한 저항을 조기 제압할 목적으로 개 최하였던 것이 아닌가요.

노태우 : 그럴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신학기가되면서 학생시위가 상당히 격렬해질 것이 명백히 예상되었기 때문에 충정훈련이 강화되었습니다



정치인 연행에 수경사 병력 지원

검사 : 80.4.14.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최규하 대통령, 신현확 국무총리, 이희성 계엄사령관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겸직금지조항에 위반하여 중앙정보부장서리직을 겸직하였지요.

노태우 : 예 ,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검사 : 전두환 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서리에 취임함으로써 군사정보는 물론,국내 민간정보와 중앙정보부의 막대한 예산을 장악하고 공식 서열상으로도 지위가 격상되어 정부내의 실력자로 등장할 수 있었다고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노태우 : 10 · 26 이후 중앙정보부의 기능이 마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력자가 그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 서 임명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검사:같은해 5월 초순경 전두환 사령관이 권정달 정보처장에게 비상계엄 전국확대, 비상기구의 설치, 국회 해산을 주요 골자로 하는 이른바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이학봉 대공처장에게 소요배후조종혐의자와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라는 명목으로 김대중, 김종필 등 주요정치인 검거계획 을 수립하라고 지시하였지요.

노태우 :저로서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검사 : 수경사 작전참모 박동원 대령은 그 무렵 피의자로부터 중앙정보부나 보안사의 요청이 있으면 병력을 지원해 주라는 지시를 받고 헌병단 등 예하부대에 병력지원 지시를 하달하였다고 진술하는데 ,그렇 다면 피의자는 전두환 합수본부장이나 이학봉수사국장으로부터 소위 시위배후조종자 등 검거계획을 설명받았기 때문에 작전참모에게 위와 같은 지시를 한 것이 아닌가요.

노태우 : 수경사가 위와 같이 병력을 지원해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관례로서 행해지는 일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검사 :피의자의 지시에 의하여 이현우 30경비단장은 5월17일 17:00경 3백40여명의 병력을 출동시켜 광화문 앞에 전차 4대와 장갑차 등을 배치하고, 중앙청을 에워싼 다음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성환옥 헌 병단장은 2백50여명의 헌병을 출동시켜 중앙청 현관에서 국무회의장 입구까지 집총한 병력을 1m 간격 으로 도열시키고 특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한계단에 1명씩 집총한 헌병을 배치하고, 중앙청 각 사무실을 수색하여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공무원들을 밖으로 내쫓아 5층에 있는 수개의 방으로 모 이게 하여 감금하고, 외부에서 중앙청으로 연결되는 전화선을 절단함으로써 국무회의장을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하였지요.

노태우 : 제가 수경사령관으로서 중앙청의 경호 ·경비를 지시한 것은 사실이나,구체적인 내용까지 지시한 사실은 없습니다.

검사 : 5월17일 17'00경에는 전혀 국무회의가 예정되어 있지도 않았는데 무슨근거로 위와 같이 병력을 배치 하였는가요.

노태우 : 기억이 없습니다.

검사 : 위와 같이 사실상 비상계엄 전국확대안건에 대하여 국무위원들이 반대할 수 없도록 공포분위기를 조 성한 상황에서 5.17. 21:42부터 21:50까지 제42회 임시국무회의를 개최토록 하여 아무런 찬반토론 없이 8분만에 비상계엄 확대선포안을 의결하도록 하였지요.

노태우 : 저로서는 모르는 일입니다.

검사 : 80.5.25. 11 :00경 국방부장관실에서 광주시내 재진압작전을 80.5.27.00:00 이후 실시할 것을 결정 할 때 피의자도 회의에 참석하였나요.

노태우 :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검사 :그 자리에서 광주시내 재진압작전을 80.5.27.00:00 이후 실시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함과 동시에, 그 날 오후 최규하 대통령의 광주 방문을 결정하였지요.

노태우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기억나는 일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그무렵 어느 장소에서 인지 주영 복 국방부장관을 만났는데, 그가 저에게 아주 애절한 표정으로 『광주사태 이후 최규하 대통령이 약 일주일 가까이 두문불출 하시면서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고 무슨 조치를 하시지도 않아서 큰일』 이라고 걱정을 많이 하면서 『오늘쯤은 3군 참모총장들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서 석고대죄를 하고 대통령을 광주로 모시고 내려가 시민들에게 자제를 호소하는 담화를 발표하도록 해야겠다』고 말했 습니다.



신군부, 최대통령 광주행 추진의 숨은 이유

검사:그에 따라 이희성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와 함께 같은날 14:30∼ 16:20 청와대로 최 규하 대통령을 방문하여 위 회의결과를 보고한 후 최규하 대통령과 함께 광주로 내려간 사실이 있지요.

노태우 : 저로서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검사 : 최규하 대통령의 광주방문은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의 적극 권유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지요.

노태우 : 저로서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검사 : 신군부가 최규하 대통령의 광주방문을 추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태우 : 저로서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검사 : 신군부가 최규하 대통령의 광주방문을 추진한 진짜 이유는 그 시점까지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으로 엄 청난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나 그 사실을 그동안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추인받 고 향후 상무충정작전을 승인받기 위한 것이었지요.

노태우 : 저로서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검사 : 광주에 처음 투입되었던 7공수여단 2개대대 이외에 11공수여단, 3공수여단, 20사단이 투입되었는데 현지 지휘관인 31사단장이나 전교사 사령관으로부터 증파 요청을 받은 바 없었음에도 위와 같이 병력 을 추가로 투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태우 : 저로서는 모르는 일입니다

검사 : 수도경비 사령부 작전통제하에 있던 공수특전부대나 20사단을 광주에 투입하기 위해 작전통제를 해 제하여준 것은 사실이지요.

노태우 :수경사가 작전통제를 해제해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육본의 작전명령에 따른 것이고, 또한 당시 광주 현지 사정이 워낙 다급해졌기 때문에 상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검사 : 피의자는 광주사태가 진압된 이후인 5.27. 11:25경 육본에서 이희성 육군참모총장에게 보고한 사실 이 있지요.

노태우 :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검사 : 그날 보고내용은 무엇인가요.

노태우 :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검사 :피의자는 광주사태와 관련하여 광주 현지에 내려간 사실이 있는가요.

노태우 : 광주사태와 관련하여서는 광주에 내려간 사실이 없습니다.

검사 : 전교사 작전참모 백남이의 진술에 의하면 1980.5.29. 피의자가 광주에 내려와 전교사 사령관실로 소 준열장군을 만나러 가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하는데도 광주에 간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노태우 :제가 광주사태 기간중이나 그 직후에는 광주에 내려간 사실이 없으나,광주사태가 모두 끝나고 나서 한달인가 지난 후에 소준열 장군을 위로하기 위해 광주에 가서 그를 만난 사실이 있는데, 만약 백 남이. 작전참모가 저를 광주에서 보았다면 그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검사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당초 계엄확대와 동시에 이른바 대통령 긴급조치에 의한 비상권력기구로 계획되었는데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국무총리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긴급조치의 발동은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며 그 설치를 반대하자, 그후 합법적인 외관을 갖추기 위하여 대통령령에 근거한 대통령 자문 보좌기관으로 계획이 변경된 것이지요

노태우 : 저로서는 모르는 일입니다.

검사 :최광수 대통령비서실장은 특히 수경사령관인 피의자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강한 반대의사를 표시한다 고 하여 최규하 대통령이 직접 피의자를 청와대로 불러 설득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는데,사실인가 요.

노태우 : 그 무렵 제가 최규하 대통령을 가끔 만난 사실은 있으나, 그 문제에 관하여는 기억이 없습니다.



박동진 외무, 국보위 설치 반대

검사 :.80.5.26. 중앙청 국무회의실에서 주영복 국방부장관, 박동진 외무부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권정달 보 안사 정보처장이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에게 국보위 설치안을 보고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박동진 외무 부장관이 반대하였나요.

노태우: 기억이 없습니다.

검사 : 그 소식을 전해들은 피의자는 박동진 외무부장관을 보안사령관실로 불러 국보위 설치의 필요성을 역 설하면서 박장관을 설득하였다고 하는데 , 사실인가요,

노태우 : 제가 보안사령관실에서 박동진장관을 만나 그에게 국보위 설치의 필요성을 설명한 사실은·기억이 납니다

검사 :수경사령관인 피의자가 박동진 외무부장관을 보안사령관실로부터 불러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태우:그 당시 보안사쪽에서 조치한 것 같은데 제가 부른 일은 없고, 그가 반대한다고 하여 면담한 사실은 있습니다

검사:박동진 외무부장관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신 군부측에서 비상기구를 설치하려는 기미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발상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표시하였는 바, 얼마 후 보안사에 불려가서 그곳 사령 관실에서 피의자를 만났는데 피의자가 국보위설치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고 분명히 진술하는데요.

노태우 :예, 그가 말하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다만 제가 기억하기로는 박동진 장관이 국보위 설치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닌 것 같고 미국 등 외국에 대하여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하여 제가 그 논거를 설명 해 드린 것 같습니다.

검사 : 5.27. 16:00 박충훈 국무총리서리 주재로 열린 제46회 국무회의에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령 이 원안대로 의결되었으나, 광주사태하에서 그러한 충격적인 사실을 바로 발표하기가 곤란하고 위 원 인선이 완료되지 아니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발표를 연기하다가 5월31일 대통령령 제9897호로 공 고함으로써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하게 되었지요.

노태우 : 예, 그것은 사실입니다.

검사 : 피의자 등 신군부의 집권계획의 일환으로 무리하게 삼청교육을 추진하다보니 선량한 국민들을 불량 배로 몰아 삼청교육을 보낸 사례도 많이 발생하였고,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함부로 국민의 기본권 을 침해하게 된 것도 사실이지요.

노태우 :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절차상은 약간 ·문제가 있었으나 의도는 좋았고, 그것을 추진하는 과 정에서 여론의 지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검사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존속하는 동안 최규하 대통령이 직접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전체 회 의를 주재한 것은 발족하던 날인 5.31. 청와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과 6.5. 삼청동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열린 국보위현판식 등 두번 밖에 없었지요.

노태우 : 예, 그렇습니다.

검사 : 그렇다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대통령의 자문 · 보좌기구로 설치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의장 인 대통령이 두번 밖에 회의를 주재하지 않았던 것은 상임위원장인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가 정부의 실권을 장악하려는 목적 때문이 아닌가요.

노태우 : 저로서는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검사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법적으로는 대통령령에 의한 대통령의 자문보좌기관의 성격을 지니고 있 지만, 실질적으로는 내각을 강력히 조정, 통제하면서 국정 전반을 장악하였는데, 이러한 점으로 미루 어 보아 상임위원장 전두환 등 신군부가 사실상 국정을 좌지우지하면서 내각을 무력화시킨 것은 아닌 가요.

노태우 :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검사 : 피의자와 상피의자 전두환은 대위시절인 5 · 16때 이미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비서관으로 함께 일 하였으며, 유학성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사무위원회 보좌관으로 일한 적이 있어 피의자 등은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를 혁명평의회 성격의 5 · 16당시 국가재건최고희의와 같은 형태로 운영한 것은 아 닌가요.



『잘 모르겠습니다』로 일관

노태우 :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입법권까지 가진 강력한 기구임에 반하여 국보위는 대통령 자문기구이기 때문 에 여러 가지 성격상 차이점이 많습니다.

검사 :자문기구 내지 보좌기관에 불과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대통령 내지 행정부의 소관사항인 공무 원 숙정,사회악 사범 일소, 과외금지 등 조치를 입안하여 집행한 것은 월권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초법적인 조치이므로 그 자체가 국헌문란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노태우 :저로서는 대답할 성질의 사항이 아닙니다.

검사 : 6월5일 국보위 상임위원회 산하에 14개의 분과위원획를 설치하여 각 분과위원회의 결정으로 공무원 숙청조치 삼청교육 등 사회악 일소조치, 언론통폐합조치, 김종필 등 부정축재자에 대한 수사와 부정 축재 재산에 대한 몰수조치 등 계엄업무와는 무관한 조치들을 국무회의의 의결도 없이 결정, 집행함 으로써 계엄업무에 관한 자문기구인 국보위의 권한을 넘어 사실상 내각의 기능을 무력화시킨 것은 사실이지요.

노태우 :저로서는 대답할 성질이 아닙니다

검사 :신군부의 실세인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이 80년 6월 말경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에게 국가보위비 상대책위원회 법사분과위원들을 동원하여 개헌안을 연구하도록 지시하고,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 과 박철언, 우병규 법사분과위원이 주도하여 같은 해 7월 중순경까지 개헌안 시안을 만들도록 하였 다는데 사실인가요.

노태우 :저로서는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검사 :. 국가보위 비 상대 책위원회 설치 직후, 법사분과위원들로 하여금 정부의 헌법개정심의위원회와 별 도로 은밀히 헌법개정 작업을 추진한 것은 결국 집권을 염두에 두고 다음 공화국의 헌정구도를 그 려보고자 한 것이 아닌가요.

노태우 :저로서는 대답할 성질이 아닙니다.

검사 :권정달, 허화평의 진술에 의하면 피의자, 전두환 보안사령관, 보안사의 정도영 보안처장, 권정달 정 보처장, 허삼수 인사처장, 이학봉 대공처장, 허화평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의 이종찬 총무국장, 허문 도 비서실장 등이 7.15, 10:00경 보안사령관실에 모여 대통령 선출 방법, 대통령 임기,국회의원 선 거구제 등 헌법 개정안, 정치일정 단축 방안,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 문제 등에 대하여 논의를 하였 다는데 사실인가요.

노태우 : 기억이 없습니다.

검사 :그 자리에서 피의자는 안정론을 내세워 간선제를, 허삼수 인사처장은 국민들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이 유를 내세워 직선제를 각 주장하여 논란을 벌이다가 전두환 사령관이 간선제로 낙점하였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노태우 . 그러한 회의에 참석하거나 그러한 사실을 논의한 기억이 없습니다

검사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법사분과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한 헌법개정 작업 진행 상황을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이 있는가요.

노태우 :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검사 :우병규의 진술에 의하면 권정달,허화평, 피의자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전두환 대통령에케 보고하여 헌법개정안을 확정하였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노태우 .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검사 : 그때 피의자는 박철언을 통하여 헌법 개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였다고 하는데 어떠한 의견을 제시 하였는가요.

노태우 :그 당시 박철언을 통하여 헌법개정 작업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가끔들은 사실은 있으나 달리 관 여한 사실은 없습니다.



전두환, 눈물 흘리며 군의 추대 수락

검사 : 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의 진술에 의하면 당초에는 최대통령이 밝혀온 정치일정에 맞추어가자는 것 이 신군부의 기본 입장이었는데 , 광주사건을 겪으면서 신군부 내부에서 최대통령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확고한 중심이 될 수 없다는 회의론이 강하게 제기되어 피의자 및 정호용, 황영시, 유학성 등 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조기집권을 권유했고, 그리하여 기존의 정치 판으로는 도저히 정치발전 을 기대할 수 없어 새로운 정치판을 짜기 위하여 신당창당을 결정하였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노태우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차원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 사실은 있으나, 구체적으로 전장군의 집권 을 권유한 사실은 없습니다.

검사 :피의자가 지난 5월에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를 보면 『청와대에 다녀온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피의자에 게 최대통령이 대통령을 맡아달라고 하는데 어떻게하면 좋겠느냐』고 물어 보므로 피의자가 운명일 지도 모르니 군부원로들의 의견을 한 번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한 사실이 있다는데 사실인가 요.

노태우 : 예 , 그것은 사실입니다.

검사 : 그래서 전두환 사령관은 군 원로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절차를 밟았나요.

노태우 : 예, 제가 확실히 기억하기로는,그 무렵 날짜는 잘 모르겠으나, 저녁시간에 공군참모총장 관사에서 국방부 장관을 위시해서 각군 총장, 각군 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와가 있었는데 그때 참석자 들이 결국 전장군이 맡는 길밖에 더 있느냐고 건의하고 전두환 사령관은 눈물을 흘리면서 비장한 자세로 이 건의를 수용 했습니다.

검사 : 80.8.21. 군지휘관들이 모인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전두환장군의 대통령추대를 결의하였는데 그 모임은 피의자가 주도하여 소집한 것인가요.

노태우 : 제가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무렵 전군지휘관 회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검사:'군지휘관들이 모여 현역장군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자고 결의하는 것은 군인의 정치관여를 금지하는 군인복무규율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이 아닌가요,

노태우 : 그것은 사실입니다.

검사 :80년 9월 경 허문도 정부1비서관이 피의자를 찾아와 언론통폐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실이 있는가 요.

노태우 : 그 당시 허문도 정무1비서관이 저를 찾아와서 그러한 주장을 하였는진느 기억이 나지 않으나, 허 비서관이 평소 언론통폐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검사 :그러면 피의자는 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에게 언론통폐합 방안을 연구해보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는가 요.

노태우 :저는 그러한 지시를 하였는지 기억이 없으나 만약 제가 그러한 지시를 하였다면 허문도가 그런 주 장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타당성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하였을 것입니다.

검사 :그러면 80년 10월 중순경 피의자는 권정달 정보처장을 대동하고 그가 마련한 언론통폐합에 대한 의견 서를 가지고 청와대를 방문하연 이광표 문공부장관, 이웅희 공보수석비서관, 허문도 정무1비서관 등이 배석한 가운데 전두환 대통령에게 언론건전육성종합방안에 대하여 보고한 사실이 있지요.

노태우 : 허문도가 주장하는 언론통폐합방안에 대해서 반대하는 보고를 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문공부가 처리하지 왜 떠넘기는 거요』

검사:그 자리에서 어떤 결론이 났는가요.

노태우 :저는 언론통폐합이 문제점이 많으므로 추진하여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말했고, 전두환 대통령도 제 의견에 동의하여 위 계획은 보류되었습니다.

검사 : 그런데 80.11.12, 피의자가 초도순시차 강원도 속초에 가 있던중 보안사령부 비서실로부터 이광표 문공부장관이 언론통폐합에 관한 대통령 결재서류를 갖고 왔다는 연락을 받고 헬리콥터편으로 급히 보안사로 돌아온 사실이 있는가요.

노태우 : 예, 그러한 사실이 있습니다.

검사 : 11.12. 16:00경 피의자가 보안사령관실에 도착하자 그곳에 기다리고 있던 이광표 문공부장관이 대통 령의 결재를 받은 서류를 피의자에게 건네주면서 집행을 의뢰하였지요.

노태우 : 예 , 그러한 사실이 있습니다.

검사 : 그러나 피의자는 『결재받은 문공부가 처리하지 왜 우리한테 넘기는거요,왜 악역을 맡겨요』라면서 화를 내자, 사색이 된 이장관이 『각하께서 보안사의 협조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하면서 대 통령의 지시임을 강조하였지요.

노태우 : 예 , 그러한 사실이 있습니다

검사 : 이광표 문공부장관이 전달한 전두환 대통령의 최종재가문서의 제목이「언론창달계획」이 었는가요.

노태우 :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검사:그 당시 보안사 정보처 소속 언론대책반에서 일하던 김기철은 11 12. 전두환 대통령이 결재한 문건은 허문도 정무1비서관이 작성한 「언론창달계획」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인가요.

노태우 : 아마도 사실일 것입니다

검사:이광표 문공부장관이 전달해 준 전두환 대통령의 최종 재가문서에는 지방언론사의 통폐합 내용에 관하 여 1도1사 원칙만이 명시되어 있었을 뿐 어느 언론사를 어느 언론사에 통합시킨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담겨있지 않았다는데 알고 있나요.

노태우 :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할 수 없습니다.

검사 : 그날 피의자는 한용원 정보처장과 안병호 비서실장, 김충우 대공처장에게 언론사 사주들을 불러 서로 협조해 집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나요.

노태우 :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검사 : 언론사 사주들은 순순히 각서를 쓰지 않으려고 하였으며, 특히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반발이 심하 였고, TBC에 관하여는 이병철 회장이 포기각서를 쓰지 않으려고 몇 시간이나 버텄다고 하는데 사실 인가요.

노태우 : 잘 모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