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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해체' 주장 회오리 속의「전남 지역 개발 협의회」'광주' 장사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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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주장 회오리 속의 「전남 지역 개발 협의회」'광주' 장사 7년

[이기형 기자

전남지역개발협의회(이하 지개협)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광주시민들의 의혹과 분노가 점점 크기를 더해가고 있다. 지남 1월 19일과 24일 5.18위형탑건립 및 기념사업추진위는 지개협과 전남도청을 방문하고 "전남 지개협(회장 이훈동)의 즉각 해체 와 50여억원에 달하는 기금의 환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까닭은 지개협이 그동안 광주민중항쟁의 희석화 작업을 앞장서서 자행했다는 것 때문이다. 광주시민들의 반응도 예전과 사뭇 다르다. 5공비리 광주특위가 '빛 좋은 개살구'겪으로 마무리 되어 버리자  광주.전남 애국대중들은 "가까이 있는 돌부리부터 발본색원 해야 한다."며 지개협의 반민족적 작태를 규탄하고 나섰다. 과연 지개협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또 해체와 기금 환원의 주장이 나오게 된 근거는 무엇이고 묘지 사고 팔기 7년여에 얻은 것은 무었일까? 의혹의 실타래를 풀어보기로 하자

전두환 정권의 외곽 보루

-관변 . 어용 조직들

『사회 정화 위원회』『평화 통일 정책 자문 회의』『일해재단』이 기구들은 80년 광주 학살을 밑거름으로 삼아 자라난 관변 조직들로 5공화국 전두환 정권을 외곽에서 보호하고 측면 지원을 해 왔던 보루였다. 여기에는 내노라 하는 유지와 거물(?)들 그리고 스스로 우익이라 자처하는 세력들이 대거 몸담았고 그 활동 반경은 국민 생활 구석구석을 감시할 만큼의 힘(?)도 가지고 있었다. 시. 군은 물론 읍 . 면의 말단 행정 지역에까지 촉수를 뻗어 내린 문어 발 식 조직력을 국민들에게 마취제와 살수를 섞어 교묘하게 휘둘렀다. 『전남 지역 개발 협의회』도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 날 수 없다.

80년 5월 수천 광주 시민의 생명을 먹고 자라난 전두환 정권은 애초부터 그 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정권의 도덕성, 전통성 등 모든 부분에서 전국민적인 지탄이 쏟아졌다. 따라서 전두환 정권의 최대 급선무는 온갖 부정 비리를 은폐. 조작하는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학살의 증거물로 남아 날이 갈수록 성역화 되어 가는 망월동 묘지와 5.18관련 희생자들(유족, 부상자, 행방 불명자)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전 정권은 자신의 집권을 위협하는 광주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온갖 회유와 협박 수단을 동원하여 분열 공작을 시도했다.

지개협의 탄생과 망월 묘역의 통곡

82년5월 18일 망월동 묘지에서는 80년 이후 처음으로 5.18 2주기 추모 제가 군부 독재의 살기를 뚫고 공개적인 행사로 치뤄 졌다. 죽음과 좌절된 민중 항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광주는 다시 '홀로 서기'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 어는 누구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서서히 좌절의 늪으로부터 동터 오는 새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광주의 홀로 서기는 곧바로 군부 독재의 침전과 직결되는 것을 의미했다.

한편, 청와대를 쿠데타로 빼앗는 전 정권은 5.18정신을 희석 화시키려 안기부, 보안사 등 모든 정보기관을 동원하여 본격적인 분열 공작에 착수했다. 추모 제가 열리던 바로 그날 무등 경기장에 서는 『전남 도민 단합 대회』란 급조된 행사가 지개협 이란 유령 단체(?)의 주최 하에 치뤄 졌다. 금품을 주어 각 동별로 광주 시민을 차림으로 동원시켜 모아 놓고 지개협을 띄우기 위한 포석을 깔았다. 공식적으로 창립 식도 하지 않은 유령 단체가 『전남 도민 단합 대회』를 주최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는 묻지 않아도 당연하다.

도민 단합 대회 이후 내부적인 음모와 공작을 진행하던 지개협은 소위 정치. 경제계를 주름잡는 거물들과 사회적으로 한몫 한다는 유지들 3백 여명을 동원하여 82년 12월15일 지개협 창립 총회를 갖고 마침내 광주 사냥에 나섰다. 발기 취지문에 나열된 화려한 미사려구들 "우리 전남은 … 소득은 낮고 산업 구조는 위약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 5공화국 수립 이후 국토의 균형 있는 개발이라는 차원에서 대통령 각하께서는 전남 개발 촉진을 위해 344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지원해 주셨고 … 바야흐로 전남 개발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은 광주의 혼을 빼앗기에 충분했었다. 회유와 협박에 의해 학살 원흉이 구세주로 뒤바뀌어 버린 여기에서 지개협의 진로는 확인하지 않아도 뻔하게 드러났다. 사실 권력과의 밀착은 숱한 5공 비리를 되돌아 볼 때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초대 회장에 피선되었던 고광표(대창 운수 대창 석유 회장)씨등 지개협 이 사진은 83년 3월 16일 청와대로 전두환을 알현하고 지개협 결성을 직접 보고 했다. 전두환으로부터 지시된 내용은 "지역 안정과 발전에 기여하라"는 새로운 『광주 진압』작전명령 하달이었다.

『도민 화합과 민간 차원의 전남 지역 개발 촉진』이란 미명하에 관변 조직인 지개협이 내세운 사업 내용은 장학 사업, 전통 문화 예술 진흥, 지역 적성 산업 유치, 자원 개발, 복지사업이었지만 가장 주안점은 『지역 안정』이었다. 그런데 부풀어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독재 권력에 대한 불신감과 민주화의 열망이 움터 있는 광주 시민의 높은 정치의식은 지역 안정이란 꼬락서니로 독재의 촉수가 파고들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고작 나온 수순이 금품과 칼을 동원한 방법이었다. 막대한 돈으로 틀어막고 칼로 쑤시자는 것이었다. 사무국 개설 수일만에 정치 . 경제 . 교육. 노동. 언론 .문화. 예술 .종교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3백 여명의 유지 급 인사들이 전격 입회하였다. 그리하여 고문 82명 회원 203명으로 이루어진 지개협은 83년 2월 1일 신양 파크 호텔에서 회의를 갖고 사업 추진을 위해 기금 조성 3차년 계획을 수립, 85년 말까지 모두 60억을 모으기로 했다. 일해재단 기금 모금 과정에서 보았듯이 강제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 기금 모금에는 도 외 기업인, 전남 도내 기업인 23명, 재경 전남 출신 기업인 18명과 13개에 달하는 각종 기관 단체가 적게는 1-2백 만원에서 수억에 이르기까지 참여했다.

당시 기금 조성에 참여한 대표적인 기업인과 기금 액수 :(1천 만원 기부자)-박기인 호남대 이사장, (2천 만원)-주영연 고려 시멘트 사장, 문방흠 광주 은행장, 나동원 아세아 자동차 대표이사, 홍순기 남양 어망 대표 이사, 이연술 화니백화점. 삼양 시내 버스 회장, (3천만원)-박철웅 조선대 총장, 신태호 동화 석유 대표이사, 서성환 태평양 그룹 회장, (5천만원)-고재철 금광 기업 사장 , 고광표 대창 운수. 석유 대표이사, 김창성 전남 방직 대표이사,(6천만원)-김남중 전일 그룹 회장, 윤태호 크라운 제과 사장, (1억원)-박태준 포철 사장, 신격호 롯데 그룹 회장 이의순 셋방 그룹 회장,(2억원)--박인천 금호 그룹 회장, 구자경 럭키 금성그룹 회장, 신용호 대한 교육 보험 회장(2억 5천만원)--이훈동 조선 내화. 전남 일보 회장, 박건배 해태 제과 대표이사, 박성용 금호 타이어 대표이사, (3억원)--이병철 삼성 그룹 회장,( 3억5천 만원)--최원석 동아 그룹 회장

83년 5월16일 광주 관광 호텔에 모인 복지 분과 위원회 회의 는 '광주 사태'로 인한 부상자 및 유가족 지원 계획을 협의하기 시작하여 10월13일 생계 지원 심사 규칙 안을 마련함으로써 5월 운동의 내부분열과 망월 묘지 이장 계획을 어느 정도 완결 지었다. 지개협의 백정 짓에 장단을 맞추고 구색을 갖추기 위해 교육, 종교, 문화 법조계 등의 사이비 지식인들도 간 쓸개 다 버리고 두 팔 걷고 나서서 얄팍한 지식 나부랭이로 지개협의 속을 채워 나갔다. 지개협의 연구 자문 기관인 전남 개발 연구원은 광주 시민의 손에서 나온 돈을 받고 지개협의 존립 근거라는 연구 논문이나 발표하고, 법률 상담이니 자원 개발, 문예 진흥 분과위에 소속된 어용 지식인들은 세치 혀로 강변했다. 이제 남은 것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강제력을 적절히 가미한 탄압의 서곡을 언제 터뜨리느냐 였다.

5.18공중 분해 작업, 분묘 이장 강요

성지 망월 묘지를 해체시키기 위한 음모가 돈의 회유와 독재 권력의 칼 아래 시작되었다. 생계 지원 심사 규칙 안이 마련되자 전남도와 정보기관들(안기부, 보안사, 경찰서 등)은 삼위일체가 되어 묘지 이장에 응한 유족들에게 1천 만원의 위로금과 50만원의 장례비를 미끼로 하여 결국 83년 묘 5기 이장을 필두로 84년 4월까지 모두 26기의 무덤을 파내는 장사를 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묘지 이장 작업은 너무나 교활하게 진행되었다. 유족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면서 『묘를 이장하면 당신에게는 특별히 보상금을 더 주겠다. 만약 옮기지 않으면 당신은 물론이고 당신 자식들 친척들은 재미없을 줄 알아라』는 회유와 협박은 예사였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협박과 예사였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협박과 회유책으로 5.18유족 회 및 부상자 회는 상당 정도 각개 격파 당해 내부분열을 일으켜 소위 관제. 어용 단체인 5.18광주 민중 항쟁 유족 회(회장 박찬봉). 부상자 회(회장 박옥재)와 5.18광주 민중 항쟁 유족 회(회장 전계량). 부상자 회 (회장 이지현)등으로 사분 오열되었다.

지개협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도민 화합에 헌신. 노력할 것』을 주장하며 84년 3월9일 2대 회장에 등극한 이훈동(조선 내화 및 전남 일보 회장)씨는 〈망월 묘지 개발〉의 공로와 전두환이 의장으로 있는 평화 통일 정책 자문 회의 전남 대표로서 전남 자문 의원의 자질 향상과 주민 계도. 평화 통일 기반 구축에 힘썼다는 공로가 인정되어 5공화국으로부터 평통 부의장 임명장을 받는 한편 국민 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묘지 이장 작업이 흡족할 만한 성과였음을 지개협 스스로도 자화자찬한 흔적은 지개협의 기관지 『전남 개발』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남 개발 제 8집(1985년 겨울호)에서 이훈동 회장은 지개협 3년가느이 성과를 "4백만 도민의 화합과 안정, 지역 발전의 구심체로 … 본 협의회는…웅비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 특히 광주 사태로 인한 지원 사업은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도민 화합과 지역 안정에 도 비중을 차지했으며, 도민 화합과 지역 안정에도 큰 몫을 차지했으며, 도민 화합과 지역 안정에도 큰 몫을 차지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고 평가했다. 묘지 이장을 하고 오월 가족들을 분열. 이간을 조장하여 대립시키고 광주 진상을 은폐. 조작한 일이 도민 화합이고 지역 안정이라고 흡족해 한 것이다.

광주 학살을 은폐하는 지개협은 즉각 해체되어야

지개협은 즉각 해체되어야

지개협이 5.18광주 민중 항쟁을 희석 화시키기 위해 뿌린 돈은 모두 26억 5천 여 만원으로 전체 지출금의 60%정도를 차지한다.

광주 학살의 진상 은폐에 급급하여 돈을 쓸곳에 안 쓴 지개협의 존재는 기본 사업 계획에서도 벗어난 기형적 구조를 드러냈다. 물론 지개협의 사업 중 광주 진상 희석 화를 빼면 여타의 사업들은 겉치장에 불과하기 때문에 논외의 것이지만 어쨌든 존립의 명분을 찾기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하물며 민족의 아픔을 폭도들의 난동쯤으로 희석 화시키고 갈갈이 찢어발긴 마당에 어디서 존립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환원해야 할 기금과 65억 원에 달하는 또 다른 국민 성금은 물론 성금 기탁 자의 취지와는 엉뚱하게 벌인 어린이 대공원, 노인 회관은 즉시 광주. 전남 애국 대중들의 손으로 돌아와야 마땅하다. 또 충성을 다해 광주의 홀로 서기를 거부하고 광주의 양심 허물기 작업에 일조를 했거나 앞장섰던 일부 인사들도 대명천지 아래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식과 정도〉가 지켜질 때 제 6공화국 노 정권이 떠들어대는 지개협의 또 다른 쌍생아 겪이 될 『지역사회 안정 협의회』도 발붙일 곳이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