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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피 뿌려 자란 나무 - 5.18광주 의거 청년 동지 회

본문

피 뿌려 자란 나무

5.18광주 의거 청년 동지 회

80년 5월, 대학에서 일터에서 이 땅의 민주화 . 자주화를 위해 떨쳐 일어선 젊음의 피가 아직 민주의 제단에 흩뿌려지고 있다. 그 젊음의 피는 이 시대 우리의 과제가 무엇이며 어떻게 이 어둠을 불사르고 찬란한 신 세벽을 맞이해야 하는가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직도 계속되는 5월의 복판에서 그날 이후 피 뿌려 자라 온 5월의 나무, 5.18광주 의거 청년 동지회를 찾았다.대담에는 동지 회의 박경순 회장, 정길영 총무와 자리를 같이 했다.

먼저 5.18광주 의거 청년 동지 회 발족 당시의 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85년, 5.18광주 의거 유족 회와 부상자 회 내에 청년 부와 청년 위원회가 각각 결성되어 교류를 가져오다 구속자 청년들과도 연합하면서 5월 청년들의 입장을 모색. 정리하였지요 .그러다가 86년 부상자 회 이지현 회장의 구속 이후 5월청년들의 결집을 재인식하고 5.18광주 의거의 정신 계승과 공식적으로 독자적인 기구를 상정 하자는데 합의를 봅니다. 두어 달 정도의 창립총회 준비를 끝낸 뒤 86년 4월 5일 무진 교회에서 '5.18광주 의거 청년 동지회'로 창립총회를 가졌습니다.(이하 오청동)

청년들의 5월 제 단체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오청동이 반 독재 민주화 투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창립 초기에는 이 땅의 민주화 통일을 염원하는 의지를 세우고 내부 결속을 다지고 이를 바탕으로 87년에 접어들면서 가열 찬 반 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게 됩니다. 청년 특유의 행동성을 가지고 직접적 몸싸움을 주도 해 온 것이지요. 87년 2월 전남 도청에서 나오는 전두환을 향하여 정길영, 이순노 회원등이 차도로 돌지 , 구호를 외치며「광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제하의 유인물을 뿌리며 항거하다 살인마의 하수인인 경호원과 폭력 경찰에게 무차별 구타, 폭행을 당하고 구류를 살다 나왔습니다. 같은 해 7월 17일에는 화염 방사기에 맞아 7년 동안 처절한 투병 생활 중 끝내 운명하고만 5.18부상자 고 최강식 열사의 운상 행렬을 향한 무차별 최루탄 난사 속에서도 "나 죽거든 도청 앞 분수대를 돌아 옛날 함께 싸웠던 동지들 옆에 묻어 달라"는 유언대로 도청을 향해 행진, 수많은 애국 시민, 학생들의 애도 속에 망월 묘지에 안장하였지요.

대선 기간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싸움 또한 치열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염주동 실내 체육관에서 노태우가 유세할 때 최루탄, 달걀 투척을 시도하고 송정리에서 정확하게 노태우 폭도에게 투척, 회원등 7명이 수배를 받아 검거되기도 했지요. 11월 '5.18광주 민중 항쟁 증언 록'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노태우 방문 시 유족 회와 함께 망월 묘지 성역을 수호 그의 경호원들을 혼쭐을 내주었지요.

오월 유관 단체와의 연대 내지 협조는 어떻게 해 가고 있습니까.

- 우리 단체는 오월 관계자들이 전체적으로 구성(유족, 부상자 , 구속자 청년)되어 있기 때문에 청년으로서 인식의 차이는 있지만 일이 있을 때마다 잘 연대해 가고 있습니다. 청년으로서 보다 발전적 시각을 가지고 오월의 의미를 정치적, 물적 이해관계를 떠나 순수하게 지켜 내고 오월 정신을 계승 진정한 민주화와 이 땅의 통일을 위해 끝까지 싸워 나갈 것입니다.

5.18 진상 규명을 위한 오청동의 구체적 활동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요.

-5.18광주 의거 기념 사업 및 위령탑 건립 추진 위원회가 개편이 될 경우 '5.18진상 규명 특별위원회'가 구성될 예정입니다. 동시에 자체적으로 일들을 해갈 것입니다. 작년 이후 5.18부상자나 구속 자등 관계자를 찾는 신고 센터를 설치 부상자 100여명, 행방 불명자 20명 등 접수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지난 5월 3일 행불자 가족 15세대가 모여 첫 모임을 가져 창립 준비 위원회를 구성해 10일 창립 대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쉽게 손댈 수 없는 암매장의 진상에 대해서도 그 규명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 사이에 떠돌고 있는 암매장에 대한 오청동은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행방 불명 자들이 있고 그 당시 여러 곳에서 혈전이 있었기 때문에 분명 사상자는 엄청난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아직 확실히 밝혀지고 있지 않는 암매장은 틀림없이 규명되어야 합니다.

우리 회의 회보 '무등산 깃발' 제5호에도 나와 있듯이 운암동 주공 아파트 단지 착공 이후 경지 정리를 하기 위해 포크 레인과 불도저를 동원하여 야산을 깎아 버리기 시작하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시체와 책가방을 발견하고 당시 일을 하시다 목격한 노동자와 근처 주민 30여명 중 한명인 이모씨께서 85년 6월 치떨리는 분노를 금치 못하고 YWCA6층 민주화 운동 단체에 직접 오셔서 증언한 바도 있습니다. 그 당시 목격자 30여명을 보낸 후 청소차가 와서 포크 레인으로 퍼내어 3트럭에 실려 나갔다고 합니다.

오월 제단체와 비교해 오청동이 갖는 특성과 활동은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를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정치적 입장과 물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그리고 그만큼 철저하게 싸워 갈 것입니다. 청년으로서의 특성 즉 진취성과 행동성을 살려 자주화를 위한 외세 척결, 민주화를 위한 반 독재 투쟁 나아가 분단 극복을 위해 총 매진할 겁니다. 또한 오월은 어느 단체에게만 있는 것이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그래서 시민들과 유리된 모습이 아닌 밀접한 연관을 이루어 내고 대중화 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전남 민주주의 청년 연합회(본지 준비 최종 호에서 소개한 바 있다)와 연대하여 나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