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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고 신영일 열사 민주시민장(국민신문, 1988. 5)

본문

故 신영일 열사 민주시민장

동지들 애도속에 망월동 5·18묘역 안장



애국학생 故신영일열사의 장례식이 11일 오전10시 유족과 민주운동제단체,동지 친척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독교 병원에서의 발인, 영결식파 YMCA앞 노제로 진행되었다.생전에들불야학과 전남민주주의 청년연합(이하 전청련)을 통해 기층민중의 주인된 삶을 위해 열정적인 활동을 해왔던 고인은 그 뜻을 기려 민주시민장으료 치러졌다.

기독교병원 뜰앞에서 있었던 발인.영결식에서 전청련의장 송재형씨는 조사를 통해 "전청련의 주인이자 이세상의 주인으로서 청년의 모범을 보였던 그대는 민주화운동을 해나가는데 누구 보다도 열정적이였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는 데는 안스러을 정도로 소홀했다"고 토로하며 "지금도 고인의 음성과 정열을 따라 끝없는 행렬을 짓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한과 열정의 생에서 휴식한번 못취한 그대의 육신을 이젠 망월동 묘지에서 편이 쉬게 하소서"라고 애도했다. 이어 조시는 민주제단체의 장과 고인의 후배동지들이 생전의 고인을 그리며 크나큰 슬픔을 표현했다. 이 자리에서 유족회 전계량회장은 "큰별은 땅에 떨어지고, 광주는 한사람의 자랑스런 해방전사를 잃어 버렸다"고 말했다.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렬은 대형초상화와 50여개의 만장을 선두로 동지·시민들의 애도 속에 전대의대 사거리와 금남로를 지나 노제장소인 YWCA앞과 전대교정을 지나 장지인 망월동으로 향했다. 이날 운구행렬은 상두꾼이 이끄는 전통적인 장례의식으로 행해져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또한 운구행렬이 모교인 전남대 교정을 지날때 후배인 전남대 생들이 운구뒤를 따르며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출정가'를 부르며 고인을 전송했다.

장지인 망월동에 도참한 운구는 가족과 300여명의 참석자의 오열속에 가톨릭예식으로 5·18묘역에 안장되었다.

약력

·58년 전남나주출생 광주일고 졸업

·77년 전남대학교 국사교육학과 입학

·78년 광천등 들불야학 창설에 참여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운동 전개

·81년 9월 29일 전남대교내시위 주도.

5·18 이후 침묵과 패배의식을 떨치고 반제 반과쇼 투쟁의 첫봉화를 올림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 5·18 진상규명과 교도소내 처우개선을 주장하며 40일간의 단식투쟁

(이때 함께 단식투쟁을 했던 박관현열사는 끝내 숨지고 신영일 동지는 기적적으로 소생)

.84년 11월18일 전남지역민주화운동 구심체로서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 창설,

홍보부위원장으로 활동. 「광주의소리 」 편 집

·86년 5월3일 정상용 정동년씨 등과 5 3인천투쟁 주도

·전남민주주의 청년연합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

·88년 5훨9일 새벽4시 경 기독벙원에서 투병중 운명

·유족으로 부인 김정희여사와 2남(새벽, 누리)이 있음



추도사

故 신영일 동지의 영전에 바칩니다.

사랑하는 신영일 동지 !

오늘은 5월11일 당신이 눈을 감은지 벌써 3일이 지났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이 우리곁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이대로 죽어가야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몇일 동안의 어려운 고비를 인내와 열정으로 이겨낸후 잡았던 당신의 따스한 손길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손발이 퉁퉁붓고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는 상태에서도 동료를 걱정하며 미소 짓던 당신의 얼굴이 눈에 선한데, 이렇게 떠나시려고 우리더러 건강에 신경 쓰라고 전청련 활동을 열심히 하라고 당부했더란 말입니까 !

열정으로 살았던 신영일 동지 !

당신은 이 세상의 주인이었고 우리 전청련의 주인이자 청년의 모범이었읍니다. 어떠한 일에 대한 당신의 고민은 너무나 진지했고 그러한 고민의 과정은 언제나 바른 해답들을 주었읍니다.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실천하는데는 냉철하고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쳤읍니다.고런데 당신은 민주화 운동을 해가는데는 냉철하고 과학적이었지만 당신의 몸을 돌보는데 는 안스러을 정도로 소흘했율니다. 좀 쉬어가면서 하라고 당부를 해도 당신의 생활은 항상 바빴고 그러한 열정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읍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고민을 항상 자기것과 똑같이 받아들이고 그 해결을위해 몇날 몇밤을 지새는 당신은 항상 당신의 시간이 없었고 매일을 하루같이 12시, 2시까지 일했지요.

보낼 수 없는 신영일 동지 1

당신이 앓아 눕기전 우리는 이틀밤을 꼬박새었지요. 그러한 피로가 겹쳐 당신의 몸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슬퍼집니다. 그래 이대료 가시면 어쩌란 말입니까 ! 아빠의 소원은 통일, 엄마의 소원은 통일, 새벽이 소원도 통일이라는 4살난 새벽이의 해맑은 눈동자가 지켜보는데, 당신의 노래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당신이 그렇게도 바라던 통일의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한데, 그래 '지가 죽을려면 81년 관현이하고 단식한 후 반신불수가 되었을 때 죽었지 이렇게 쉽게 죽지는 않을 걸세,틀림없이 살아날걸세'라던 아버님의 믿음도 보람없이 결국 떠나가야만 하다뇨.한맺힌 80년 5월 형제들이 박관현열사가 묻혀있는 망월동의동산으로 이렇게 빨리가야만 하다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당신의 몸뚱이를, 당신의 눈동자를 볼 수 없고, 당신의 열변을 들을 수 없는 것이 엄연한 사실인 것을 어쩌란 말인가요 ! 늦은밤 참기름에 밥을 함께 비벼 먹을 수도, 새벽녘에 딱한잔만 하자던 당신의 목소리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민주화의 새벽에 다시 부활할 신영일 동지 !

이제 더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오. 31살 당신의 청춘 모두를 바쳐 싸우다 인주화의 제단에 들어서는 당신앞에서, 이제 무엇을 두려워하여 주저하리오. 당신이 가다가다 끝내 못다 간길 오직 바른길을 향해 민족이 해방되고 민주주의와 통일의 신새벽이 열리는 민중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향해 오직 당신을 따라 달려가는 것뿐 !민족과 민중을 위해 항상 구체적으로,행동을 통해서 봉사와 헌신했던 당신을 따라가는 것뿐 ! 이것만이 우리가 당신속에서 당신이 우려와 함께 사는 것일 겁니다.

차마 감을 수 없는 눈을 감고 있을 신영일 동지 !

오늘도 뛰어놀 새벽이의 맑은 눈동자와 당신을 사랑하는 부모님과 아내의 얼굴을 간직하면서, 지금도 당신의 음성과 정열을 따라 끝없는 행렬을 짓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이제 편안히 망월등의 묘역으로 돌아가십시오. 한과 열정의 샘에서 휴식한번 못취한 당신의 육신을 편안하게 하시오. 광할한 청년의 바다위에 우리가 굳게 뿌리내리는 날, 이땅에 민주주의가 이룩되고 남과 북이 동포가 하나로 만나는날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우리는 기필코 다시 만나야만 합니다.

1988. 5. 11.

전남민주주의청년연합의장 송 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