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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미국은 광주문제에 책임없다?/글라이스틴 전 주한대사, 책임회피 발언(말,198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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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광주문제에 책임없다 ?

글라이스틴 전 주한대사, 책임회피 발언



월리엄 글라이스틴 전(前)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5월15일 , 미국은 80년 5월 광주 사태 당시 폭동진압을 위해 한국 육군의 광주 출동은 허가했으나 한국측이 미정부의 거듭된 경고와 자제 요청을 무시하고 무력진압을 결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워싱턴에서 가진 일본 아사히신문 이와무라 특파원과의 회견에서 유엔군 지휘 하에 있는 제20사단을 광주에 파견한 것은 이 사단이 도시 군중의 취급에 익숙했기 때문에 자신이 워싱턴에 연락, 허가 했다고 말하고 , 그러나 학생과 시민을 도발한 공수특전단까지 미국의 양해로 파견됐다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글라이스틴 전 대사는 당시 한국에서는 "군대 출동에 의한 탄압수단을 취하도록 지시한 것은 미국 정부" 라는 소문이 퍼졌고 지금까지도 그같은 견해가 남아있는데 대해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한국은 독립국이며 미국의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고 부인했다.

그는 학생운동의 첨예화가 민주화운동 세력과 정부 및 군부와의 대립을 격화시켰다고 주장하면서, "광주사태 직전의 80년4월 자신이 김대중,김영삼, 김종필등 3김씨를 찾아가 학생운동의 첨예화는 군부의 개입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 했으나 이들은 반동으로 몰리는 것이 싫어서였던지 사태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고 말했다. 그는 또 "사건 발생 후 광주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가톨릭교회를 통해 쌍방 (광주 시민과 군부)에 냉정할 것을 강력히 호소했으나 당시 상황에서는 효과가 없었다." 고 말했다. 글라이스틴은 "제20사단을 광주에 투입할 때 위컴 주한 미사령관이 한국군 수뇌에게 시민 살해가 없도록 신중히 대처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데모진압에 익숙치 않은 특수부대를 투입했고 이들이 학생데모에 대해 매우 도발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일반시민들이 학생들에 동조하는 계기가 됐다. "고 주장 특전단 투입은 완전히 한국 당국의 독자적 판단에 의한 것임을 시사했다.그는 "그러나 당시 광주에서는 군대의 강압행동이 미국의 지시라는 소문이 퍼져 반정부감정이 반미로 발전하는 정세였는데 미국이 여기에 관여했다는 것은 전적으로 선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서울의 제20사단이 광주에 진입하기 2시간 전에 데모지도자 측으로부터 군부 측과 최종 교섭의 중개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전달받았으나 외국 대사로서 떠맡을 수 있는 임무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변명하였다. 그는 광주사태의 근제에는 한국 내의 역사적인 지역 대립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개발로부터 비교적 소외되고 냉대 받아온 전라도의 중심도시로서 광주가 중앙정부에 대항하는 거점이 된 측면도 있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글라이스틴은 카터정권 때인 78년 6월부터 레이건정권 초기인 81년까지 주한 미대사로 근무하는 동안 벌어졌던 주한 미지상군 감축문제와 카터대통령의 방한, 10.26사건과 그 이후 민주화운동의 고조, 12.12사태와 계엄령의 전국 확대, 광주 사태와 전두환정권의 발족 및 레이건,전(全)정상회담등 일련의 한국 정세의 전개과정과 한·미 관계에 대해 가장 소상하게 알고 있는 인물이며, 특히 광주사태에 대해서 그는 미국의 책임자였다.

그러한 그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단을 요구하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때를 겨냥, 광주사태 확대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특전단의 현지 투입에 대해 "미국의 양해로 파견됐다는 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한 발언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점에 대해 글라이스틴과 회견한 아사히신문은 5월17일 자 해설기사에서"한군의 부대이동에는 미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광주사건 후 한국 내에서는 사건책임이 군의 투입을 인정한 미국에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부산·광주 미문화원 방화사건 등 전례없이 반미감정이 높아졌다. 글라이스틴의 발언은 이같은 한국 내의 견해를 부인하려는 목적이 있을것"이라고 분석한다.한편 「민주. 통일 민중운동연합」의장 문익환목사은 5월18일 "미국을 군대 이동에만 동의했지 학살은 말렸다. "는 글라이스틴의 주장을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글라이스틴이 광주 민중 학살의 책임을 군사독재정권에만 돌리고 그 비극은 3김씨의 학생데모 방관, 학생의 과격한 시위, 그리고 광주시민의 지역감정 때문에 빚어졌다고 말함으로써 모든 책임을 한국인에게만 전가하고 있다 "고 비판 "광주의 비극은 남북한의 분단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자국의 이익을 유지. 확대하기 위해 한국에 민중 주체의 정부가 수립되고 있는 것을 저지하려는 미국이 군대의 광주 이동을 자발적으로 승인한데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미국이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글라이스틴의 변명을 일축 ①공수특전단과 20사단이 광주에서 살육을 자행하고 있던 때에 미국 행정부가 한국군 4개 대대의 광주이동을 승인했다고 발표한점②한국군에 대한작전을 장악한 미국이 5월27일 군대가 전남도청에 난입하기 전 철수시키지 않은점,③광주 학살이 시작되기 직전 글라이스틴과 주한미군사령관 위컴이 ‘업무협의’라는 명목으로 귀국, 학살을 방관한 점④80년 8월7일 위컴이 기자회견에서 "정치탄압정책과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없는 상태가 계속되더라도 미국은 전두환장군을 지지할 것"이라고 발언한 점 ⑤레이건 정권이 집권 직후 광주학살 책임자를 초청, 지원을 약속한 점등을 들어 "미국은 광주 학살에 대한 책임을 군사독재집단과 함께 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또 광주시민중 항쟁이 ‘한국 내의 역사적인 지역적 대립’에서 비롯됐다는 글라이스틴의 발언에 대해 "광주의 민중은 민주화의 꿈을 짓밟은 군사독재집단에 맞서 일어난 것이지 지역의 이익을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것은 아니었다. "고 반박했다. 성명은 마지막으로 미국에 대해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을 계속 지원,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방해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미국이 광주학살의 공동책임을 부인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군사독재정권을 지원한다면 한국의 민중은 정당하게 미국을 비판하고 미국의 그릇된 행동을 규탄할 것 "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