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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긴급동의, 이것만은 다시 생각하자/광주보상, 왜 하필 국민모금인가.이종오(신동아, 1991. 2)

본문

특집 緊急動議, 이것만은 다시 생각하자

光州보상금을 국민모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동정 베푸는 식의 발상도

그렇지만 국민이 배상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光州보상, 왜 하필 국민모금인가

李鍾旿(啓明大社會大副敎授·社會學)

지난해 12월 11일은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지원성금 모금 첫날이었다. 이날 정부종합청사의 중앙모금창구에는 민자당 광주지구당 위원장 5명이 각 2백만원씩 합계 1천만원을 접수시켰다고 한다.이 지원성금은 법정보상금 의료지원금 등 국고 지급 8백억원 이외에 별도의 생활지원금 7백87억원을 국민성금으로 충당키로 함으로써 거두워지고 있다.이 모금은 1차적으로 2월말까지 약 3개월동안에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모금열기는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물론 정부에서 이 7백80억원을 기어이 모금으로 충당하려 한다면 액수를 채우는 일이야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북한측의 금강산댐 모금을 위시한 여러 정부모금이 그리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던 것을 생각할 때 이 모금의 효과와 의의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회의적인 생각을 안할 수 없다.

誠金모금 뒤에 도사린 논리

먼저 이 모금이 돈을 내야 할 당사자인 국민일반의 자발적 성의에 의해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이 그러하다. 광주문제를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가에 관한 국민적 합의의 일환으로서 피해자 및 관련자들에게 상당한 물질적 지원을 해야하고 그 재원은 국민일반의 참여에 의한 성금으로 하자는 안이 추진되어 실시된 것이라면 얼마나 바람직하였겠는가.그러나 국민일반에게 있어서 보상금에 의한 광주문제해결은 국민적 합의이전에 홍보조차 잘 되어있지 않은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광주지역의 유관단체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90년 12월 10일 당시 姜英勳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던 「광주보상지원위원회」가 모금지원 담화문을 발표하자 5·18광주민중항쟁유족회, 민주항쟁동지회 등은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우선 「배상」이 아닌 「보상」에 반대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후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집단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5·18관련 부상자들은 이미 지난 90년 7월 9일 광주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기념사업, 피해자배상 등 5원칙을 주장한 바 있으며 그후 평민당 金大中총재는 책임자 처벌이 빠진 4원칙을 주장하고 나섰다.5원칙 4원칙 3원칙 중 어느 안이 현실적이며 타당한가를 논의하기에 앞서 「보상」과 「배상」이 갖는 의미의 차이는 매우 크다. 보상이란 법률적 의미로 국가 또는 공공단체가 적법한 행위에 의하여 국민이나 주민에게 가한 재산상의 손실을 보존하기 위하여 제공하는 代償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배상이란 함은 남의 권리를 침해한 사람이 그 손해를 보상하는 일이다.이렇게 볼 때 광주문제를 보상으로 해결하느냐 혹은 배상으로 해결하느냐는 중대한 차이를 안고 있다. 보상이냐 배상이냐는 광주문제를 사고로 보느냐 혹은 범죄로 보느냐의 차이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광주문제를 보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광주민중항쟁의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 혹은 책임자들의 「면책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은 이미 10년이나 지난 일을 더 이상 시시비비를 가려서 무얼 하겠느냐, 당시의 군인들도 고의성이 있어서 그런 짓을 했겠느냐, 급박한 상황 속에서 어찌 되다보니 그렇게까지 된 것 아니냐, 솔직히 말해서 당시 광주사람들도 좀 심한 데가 있었다는 식으로 문제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이야 억만금을 준들 되살리겠냐만 다른 교통사고나 비행기사고에 비해선 상당히 후하게 「합의금」을 지불하겠으니 이것으로써 이 문제를 그만 정리하자는 「마음씨」도 엿보인다. 5共 7년에 걸쳐서 광주문제는 항상 목에 걸린 맷돌이었고 5공과의 단절을 과감히 선언하고 나선 6공에 와서도 광주의 맷돌의 떨어지지 않자 이제 물량으로 광주의 한을 사버리려는 자세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진정한 「光州배상」의 길

그러나 광주문제를 교통사고 사후처리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광주민중항쟁의 직접 피해자 및 그 관련자들에게 있어서 광주문제는 피해배상에 앞서서 명예의 문제요, 의의의 문재이다. 즉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의의가 올바로 정립되는 것이 광주인의 마음을 푸는 첩경이 되는 것이다. 또한 지나간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은 바로 현실의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이기도 하다.광주문제의 역사적 청산이 왜 이리 어려운가. 그것은 바로 지금의 역사가 아직도 바르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음에 연유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광주의 문제는 아직도 오늘의 문제이며 그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88년의 5공 및 광주관계 청문회는 대단히 불완전한 과거청산방식이었다. 만약 이때에 광주민중항쟁에 관한 모든 진실이 낱낱이 파헤쳐지고 책임소재가 밝혀졌다면 그것은 위로금이나 지원금 얼마를 더 주는 것보다 진정한 배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문제에 관한 책임자 처벌은 고사하고 책임소재 자체도 밝혀지지 못한 상태에서 보상금을 통하여 광주문제의 동결을 기하려는 발상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여기서 우리는 해방 후 몇 번의 계기에서 매번 과거청산에 실패했음을 상기하게 된다. 해방 후 반민특위를 통한 일제잔재의 청산작업이 그랬고, 유산잔재의 청산, 5공청산 등에서 매번 철저한 과거의 규명과 극복에 실패해왔다. 광주가 또 하나의 새로운 예가 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따라서 광주문제의 해결은 배상문제와 아울러 광주민중항쟁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이에 따른 후속조치, 그리고 우리 역사속에서의 광주항쟁의 정당한 자리매김을 하는 일에서 찾아야 한다.

광주항쟁 당시의 피해가 공권력의 남용 혹은 공권력을 사용한 범죄였다는 사실이 규명된다면 배상책임은 당시의 책임자들과 국가에 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이를 일반국민을 상대로 한 모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광주문제에 관하여 일반국민이 동정을 베푸는 태도를 가져서도 안되고 일반국민에게 배상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당연히 국가가 배상하여야 하나 재정형편상 국민의 도움을 구하는 상황도 아닐 것이다. 8백억원 정도의 돈은 우리 재정상 얼마든지 조달 가능한 금액으로 여겨진다.광주문제 해결이 시급한 현실적 이유는 이것이 우리 정치와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인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을 극복해나가는 실마리를 이룬다는 데 있다. 朴正熙정권이 남긴 가장 나쁜 정치유산으로서의 지역감정의 조장과 이로 인한 지역대립의 구도는 한국민주화의 최대의 장애물로서 존재하고 있다. 광주항쟁 발발의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지역주의에 의한 호남의 상대적 낙후, 호남인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차별이었다.

지역주의 극복의 실마리로

광주항쟁 이후 호남인들은 억압과 피해의식의 공유를 통해 강한 정치적 결속을 보였다. 87년의 대통령선거, 88년의 총선, 그리고 90년의 영광·함평 보선을 통하여 이 결속의 정도가 얼마나 강한 것이냐는 익히 드러났다. 그러나 이러한 호남인의 정치적 결속은 반사적으로 타지역 특히 영남에서의 평민당에 대한 강한 거부로 나타나고 있다. 원래 지역감정에 호소한 유권자의 동원은 63년 67년 71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진영에 의해 구사되었다. 이 지역감정이 영호남대결이라는 구도로 나타난 것이 71년 대선에서의 영호남 상징인물로서의 박정희 대 김대중의 대결이었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하더라도 영남지역에서의 박정희에 대한 지지도는 호남지역에서의 김대중에 대한 지지도 보다 높았다.71년의 선거에서 박정희는 부산을 포함한 영남지역에서 유효투표의 80%를 획득하였는데 반해 호남지역에서의 김대중표는 60%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보면 호남의 몰표현상이 타지역의 몰표현상을 불러일으켰다고는 말할 수 없고, 오히려 그 역이 사실인 것이다. 80년 광주민중항쟁의 무참한 탄압과 그후의 5공정권의 지역주의적 색깔이 호남인의 지역적 결속을 절대적 수준으로 끌어 올렸던 것이다.호남문제와 역사적 근원을 간과하는 사람들은 87년 대선과 88년 총선에 나타난 지역당구도만 가지고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호남인에게 돌리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지역감정과 지역주의의 최대의 피해자를 지역감정과 지역주의의 장본인으로 모는 이중가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사고로는 한국사회에서 현재 심각한 양태로 나타나고 있는 지역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지역문제에 관해선 호남의 비호남을 兩是兩非論으로 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현재 노동과 자본의 관계, 기타 사회적 분쟁시에 우리 사회에서 흔히 적용되는 양시양비론은 공정을 가장한 편파성으로서 사실상 힘있는 자, 가진 자의 변호논리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광주문제를 양시양비론으로 대하는 것은 공정과 중립이 아니라 가해자의 논리인 것이다.광주항쟁의 피해자에 대하여 보상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가해자 죄책을 인정하지 않는 양시양비론에 연유한다고 보겠다.더구나 우려할 만한 일은 지배권력이 조장한 지역감정과 지역구도가 일반대중사이에 상당한 정도로 침윤되어 있는데다가 민족민주운동의 일부에까지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사회운동은 80년대 들어 계급과 민족문제를 가지고 씨름해 왔지만 이제 지역문제가 가진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하여야 된다고 여겨진다.89년과 90년의 운동권은 독자적 정치세력화, 민중당의 창당과정 그리고 영광·함평보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제반 논쟁과 현상들은 민족민주화운동 내부에도 지역구도가 일정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계급문제, 통일문제, 민족자주에 대한 올바른 이론과 전략전술이 수립되어야 민족민주운동의 승리를 전망할 수 있다고 흔히 이야기되어지지만 사실 한국민주화는 지역문제에 관한 올바른 인식과 정책이 없이는 전망하기 힘들 것이다.

87년 대선당시의 야권분열과 민족민주운동의 분열, 90년 민중당창당에 따른 민족민주운동이 혼란, 90년 야권통합의 실패는 바로 제도권정당과 민족민주운동이 다같이 현실로 존재하는 지역문제에 대한 올바른 정책이 부재하였음을 말해준다. 지역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정책이 없이는 야권통합은 물론이고 민족민주운동의 분열은 극복하기 힘들다.야권과 민족민주운동이 분열된 상태에서는 당연히 결론으로서 민주화의 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의 정치와 사회는 지나간 30년이 그랬왔던 것처럼 끝없는 위기와 불안정의 연속이 될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과연 통일의 전망이 있는가, 혹은 바람직한 통일의 전망이 있는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지역문제가 한국정치와 민족민주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혹자는 이제는 광주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하여야 할 때가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이는 특히 민중당창당과정과 야권통합의 실패에서 좌절감과 피로감이 심화되면서 나온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문제를 잊어버린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광주문제는 아직도 오늘의 문제로서 제기되어야 한다.91년 1월호 「말」지에는 호남지역 대졸취업률이 전국 최하위라는 짐작할만한 그러나 충격적인 기사가 게재되었다. 광주의 전남대(47.4%) 조선대(39.2%)출신의 취업률이 대구의 경북대(80.7%) 계명대(61.3%) 영남대(64.0%)와 부산의 부산대(64.4%) 동아대(62.4%)에 크게 밑돌도있다 한다. 이런 경향은 출신도별 기업체수, 대기업 임원인사, 군장성승진 등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호남, 광주출신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이 개선될 때에 혹은 개선하려는 최소한의 시도가 시작될 때에 이것이 진전한 광주에 대한 배상이 될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정권상층부에서부터 해결하든지 혹은 지역구도를 극복한 정치세력의 승리로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광주배상」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