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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7-10

5·18부상자들의 영화 <화려한 휴가> 시사회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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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나쁜 일로 총맞은 게 아니란다"
5·18부상자들의 영화 <화려한 휴가> 시사회 관람기
이주빈·강성관(clubnip) 기자   
 
"정신이 멍 하더라. 이 영화를 보고 잔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80년엔 영화보다 더 잔혹했고, 잔인했고…." (강구영씨)

"영화가 아니야, 90% 이상 사실이야.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영화도, 5·18도 있는 그대로 봐줬으면 좋겠어." (이순노씨)

8일 밤 10시가 넘은 광주 상무지구 한 극장 앞. 거리엔 습기먹은 바람이 불었다. 5·18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의 시사회에 참석하고 나온 강구영씨와 이순노씨는 극장 앞 벤치에 별다른 말없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5·18부상자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쏜 총알이 이순노씨의 가슴과 팔을 뚫었고, 강구영씨의 다리를 관통했다. 당시 이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다른 광주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죄 없이 끌려가 얻어맞는 이들을 보고 울분에 차서 거리에 나왔다"가 계엄군의 총알을 맞았다.

역사는 간혹 우연과 반복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화려한 휴가>의 시사회가 열린 극장이 있는 곳은 1980년 당시 상무대라는 군부대가 있었던 곳이다. 당시 상무대 영창엔 '폭도'로 몰린 광주시민들과 학생들이 수감돼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수감돼 있던 자리에서 그들을 기억하는 영화의 시사회가 열린 것이다.

그의 몸에는 아직 '5·18'이 박혀 있다

부인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온 이순노씨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담배만 피웠다. 무거운 입술을 쉽게 떼지 못하는 건 강구영씨도 마찬가지.

잔혹한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부상자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당시 상황을 다룬 영화를 보여주며 "소감이 어떠냐"고 묻는 것 자체가 몹쓸 짓이다.

기자 옆자리에서 영화를 보던 이씨는 영화를 보는 도중 긴 탄식을 몇 차례 토하곤 하다가 한 동안 상영관 밖으로 나가있다가 돌아왔다. 강씨는 "난 독해서 영화보고도 눈물 안 흘릴 줄 알았는데 눈시울이 몇 차례나 뜨거워지더라"며 쓸쓸하게 웃었다.

누가 뭐라 해도 이들에게 5·18은 몸에 남아있는 총알의 흔적과 같은 현재진행형이다. 그저 상처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이 늘 잊고 살다가 국가기념일이 된 그날을, 5월에 한번 잠시 '기념'할 뿐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한결같이 "고맙다"고 했다. "다들 5·18을 잊고 사는 것 같은데 기억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돈과 흥행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을 했다니 영화 만든 사람들에게 고맙다." (강구영)

"영화 만든 사람들이 신경을 많이 썼더라. 그 엄청난 사건의 내용을 함축해서 담아내려고 애 썼고, 전체적으로 세세하게 잘 표현해서 좋았다." (이순노)

오월항쟁 당사자들이자 부상자들인 이들에게 이 영화의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냐고 물었다.

"내가 그 당시에 고3이어서 그런지 더 몰라. 전남도청 마지막 밤에 계엄군이 막 총을 쏘는데 선생이 자기 제자가 비명 못 지르게 입 틀어막고 자기는 총 맞고 죽어가는 모습이 제일 그랬어." (이순노씨)

"난 마지막 장면. 죽은 사람들은 다 웃고 있는데 살아남은 딸만이 신부복을 입고 웃지 않고 있는 장면이 오늘의 오월을 말해주는 것 같아." (강구영씨)

5·18을 진실되게 알려주는 계기가 됐으면

처음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정면에서 다룬 <화려한 휴가>에 대한 기대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난 이 영화가 징검다리가 될 거 같아. 80년 5월과 현재를 이어주는 기억의 징검다리, 5·18을 잘 모르는 세대와 지역을 이어주는 소통의 징검다리… 그리고 이건 내 얘긴데 우리 애들이 이 아빠를 더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 아빠가 나쁜 일을 해서 총 맞지는 않았다'는…." (강구영씨)

"한참 영화를 보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이 영화는 안보고 문자메시지만 계속 주고받고 있는 모습을 봤어. 세태가 많이 바뀌었다는 건 알지만 보기엔 좀 그렇드라고. 그래서 이 영화가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또 청소년들에게 5·18을 진실되게 알려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 (이순노씨)

자정이 넘은 늦은 밤. 순대국밥집에서 늦은 허기를 채운 강구영씨가 신음하듯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내 원래 꿈이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는데 5·18로 삶의 목표가 다 틀어져 버렸어. 그 때 부상당하고 병원에서 나온 뒤에 술·담배를 배웠어. 내겐 꿈이 없어져버린 상태였으니까. 아무리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지만 두 번 다시는, 절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다시 눈물로 다가온 5·18... "많은 분들이 봤으면" 
 8일 영화 <화려한 휴가> 광주 시사회 
 
웃다 울고, 생생한 '증언'에 놀라기도 하고 다소 담담하기도 했다.

8일 오후 80년 5·18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 광주 시사회가 열린 광주광역시 상무지구 CGV영화관 객석은 그랬다.

이날 시사회에는 5·18 유족회 등 5월 단체 관계자, 엑스트라로 출연했던 광주여고와 전남여고 학생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인봉(박철민 분)의 맛깔스런 전라도 사투리와 익살스러움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고 민우(김상경 분)와 신애(이요원 분)의 애틋한 사랑에 푸근해 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일상'을 짓밟는 공수부대의 잔혹한 진압 장면, 민우의 동생 진우(이준기 분)가 진압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싸늘한 주검이 되는 장면, 무고한 시민들이 잔인하게 학살되는 장면에서 5·18유가족들은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5월 27일 새벽 4시 도청을 사수하고 있던 시민군들이 죽어가는 모습, 특히 도청을 빠져나오려던 민우가 공수부대의 "폭도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에 "폭도가 아니"라며 저항하다 죽어가던 모습을 지켜보며 관람석 곳곳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시사회에 참석한 정수만 5·18유족회 회장은 "과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단편적으로 5·18을 다뤘는데 이 영화는 당시 처참하게 죽었던 광주 시민들의 모습을 사실에 근거해서 충실하게 다루려고 노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영화에 5·18을 적나라하게 다 담아내는데 어려움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5·18을 겪지 못한 분들에게는 당시 실상을 사실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순 국립5·18민주묘지 소장은 "광주시민들이 보여줬던 나눔과 대동의 정신, 시장 아주머니들이 주먹밥을 만들어서 나눠주던 모습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서 아쉽다"면서 "마지막에 민우가 '우리는 폭도가 아니'라고 했던 모습이 많이 남는다, 많은 이들이 5·18에 대해서 기억하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민아(16) 학생은 "영화를 보면서 슬펐다, 다른 지역에서는 '폭도'로 알려져 있는 부분도 있는데 광주시민이 폭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다"며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울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편으로는 광주 시민이어서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고은정(18) 학생은 "사진이나 글로 조금씩 봤는데 직접 영상으로 보니까 충격적"이라며 "많은 학생들이 영화를 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강연구(19)씨는 "진짜로 군인들이 저렇게 잔인하게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5·18에 대해서 조금 알기는 하지만 잔인하고 슬픈 역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배경이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아쉽기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시사회에 참석한 관람객들은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휴가>를 통해서 5·18의 진상을 정확히 알게 되고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80년 5월 27일 새벽, 진압군이 전남도청 시민군을 진압하는 순간 신애가 "시민여러분 우리를 잊지말아주십시오"라는 울림이 퍼진 지 27년. 시사회에 참석한 이들의 바람처럼 <화려한 휴가>가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지 관심이다.

한편 영화 <화려한 휴가> 제작사는 지난 5일부터 서울·부산·대구에서 시사회를 열고, 8일에는 3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광주 시사회를 열었다. 출연 배우들은 각 지역 시사회에 참석해 영화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화려한 휴가>는 오는 26일 개봉한다. / 강성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