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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중항쟁 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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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2 절 계엄군의 퇴각(17:00 - 20:00) 계엄군은 22일로 예정되었던 철수작전을 하루 앞당겨 감행하게 된다. 전남대 내에 주둔해 있던 3공수는 오후 2시경 철수명령을 하달받고 교도소로 이동했으며, 도청에서 시민군과 교전중이던 35대대와 11여단은 조선대 뒷산을 넘어 화순 길목의 주남부락으로 철수했다. 시외곽지역으로 철수한 계엄군을 27일 충정작전에 투입되기까지 광주 외곽도로 차단 및 봉쇄 임무를 수행한다. 계엄군의 퇴각을 모르고 있던 시민들은 뒤늦게야 총소리가 멈춘 사실을 깨닫고 총을 쏘며 도청으로 들어갔다. 도…

  • 제 3 장 무 장 봉 기 제 1 절 무장시민군의 등장 (21일 오후 13:00 - 17:00) 화순, 해남, 나주 등 시외지역으로 진출한 시위대는 지역주민들에게 광주의 참상을 알리고 지서, 경찰서, 군부대 등을 털어 다량의 총기를 탈취해 돌아왔다. 카빈, M1 소총, 탄약뿐만 아니라 LMG와 TNT도 시민들의 손에 들어왔다. 이 무기들이 오후 3시경부터 시민들에게 지급되어 총과 실탄으로 무장한 '시민군'이 등장, 싸움은 이제 '시민군'과 '계엄군'의 총격전으로 전개된다. 시민군은 자신들의 손으로 광주를 지키기 위해 …

  • 제 2 절 집단발포 (21일 12:00 - 13:00) 12시까지 퇴각하겠다던 계엄군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분노한 시민들은 차량을 앞세우고 한 발 한 발 도청을 향해 나아갔다. 그때 장갑차 한 대가 전속력으로 시위대를 앞질러 분수대를 돌아 질주, 전남대 쪽으로 빠져나갔고, 트럭에 실은 기름통을 불질러 밀어붙이는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하자 전일빌딩으로 가로질러 포진해 있던 공수들이 분수대까지 밀려났다. 시민들이 이렇게 서서히 계엄군을 도청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귀를 찢는 총소리가 들렸다. 시민들은 건물벽과 골목으…

  • 제 2 장 계엄군의 발포 제 1 절 차량탈취(21일 오전) 광주역에서 옮겨온 시위대와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시민들로 금남로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많은 희생자를 냈던 지난밤의 충돌로 시민들은 무장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껴 아세아자동차 공장으로 달려가 장갑차와 군용트럭 등 많은 차량을 끌고 왔다. 이렇게 동원된 차들은 외곽지역을 돌며 시민들을 중심가로 수송해 오기도 하고, 시외로 진출해 광주의 소식을 알리는 등 기동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차량시위가 전개된다. 시위소식은 더욱 빠르게 퍼져나갔고 시민들 …

  • 제 5 절 민주기사들의 봉기(20일 18:00 - 21일 아침) 버스와 택시를 세워놓고 젊은이들을 무작정 끌고 가는 과정에서 기사들이 구타, 연행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분노한 기사들이 광주역과 무등경기장에서 모여 대형버스와 트럭을 앞세우고 일시에 금남로로 몰려왔다. 금남로를 가득 메운 이들의 경적과 헤드라이트 불빛은 시위대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가공할 무력으로 인한 패배감이 강한 연대의식과 자신감으로 전환되어 계엄군을 몰아내고 광주를 해방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시위대는 도청을 지키는 군경을 …

  • 제 4절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항거 (19일 오후- 20일 오전) 공수부대의 살륙전에 치를 떨던 시민들은 이제는 공포감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싸움에 가담하게 된다. 시민들의 이러한 참여와 투쟁은 학생시위에서 민중항쟁으로 질적인 변화를 함과 동시에 지금까지보다 훨씬 치열하고 공세적인 국면으로 상황이 변화된다. 개머리판과 대검을 휘둘러대며 점점 더 포악해지는 공수부대에 맞서 일부 고등학생까지 합세한 시위대는 비가 오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음을 각오한 싸움을 계속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뒤처진 공…

  • 제 3 절 일시적 소강상태 (19일 오전) 분노와 공포의 밤을 지새운 시민들은 시내상황을 살피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금남로로 모여들었다. 초.중.고등학교와 관공서, 일반기업체는 정상근무를 계속했으나 시내의 상가들은 대부분 철시했다. 대동고와 중앙여고 등 일부 고등학생들이 교내시위를 주도하게 되고, 오후로 접어들수록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날 오후 시내 중.고등학생들을 귀가조치시켰다. 7공수여단이 11공수여단에 배속되고 31사단 병력을 재배치시키는 등 전열을 정비하고 탱크까지 동원한 공수들의 잔인한 진압에 시위군중은 방화와 투석, …

  • 제 2 절 공수부대의 무차별 진압작전 (18일 13:00 - 18일 밤) 수창초등학교에 집결한 공수부대가 조를 재편성해 시내 각 곳으로 배치된다. 이들은 모두 철망이 부착된 철모를 쓰고 등에는 총을 메었으며 대검과 곤봉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한편 오전의 수동적이고 산발적인 시위와 달리 학생들은 적극적인 공격의 형태로 이들과 맞서게 된다. 광주공원 부근에 모인 시위대는 도청 쪽으로 진출해 학생회관 앞에서 경찰과 충돌, 페퍼포그차 한 대를 불질렀으며 파출소를 파괴하였고 농장다리 부근에서는 버스에 탑승해 있는 경찰들을 무장해…

  • 제1장 전면적인 민중항쟁 제1절 계엄확대 조치와 산발적인 학생시위 (17일 21:40 - 18일 13:00) 17일 자정을 기해 선포된 계엄령 전국확대 실시를 전후하여 전남대, 조선대를 포함, 광주시내 각 전문대 관공서 등에 계엄군이 진주했다. 이 과정에서 전남대, 조선대 학생 69명이 연행되었다. 18일 아침 전남대학교 앞에는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횃불시위 때 휴교령이 내리면 전남대 정문 앞에서 모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귀가를 종용하는 계엄군과 학생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이 최초의 충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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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연구소가 5월 25-6일 양일간 개최 예정인 「5․18광주민중항쟁 27주년 기념 학술대회」대학원생 세션에 발표할 논문을 공모하오니 대학원생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전남대학교 5․18연구소는 5․18기념 행사기간에 5.18항쟁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특히 6월 민주항쟁 20주기를 맞는 올해에는 5.18이 한국 민주화과정에 대해 지니는 의미를 재성찰하고 격변 속의 동아시아와 남북관계에 대한 거시적 전망을 모색하기 위해 해외의 세계적 석학과 국내의 대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