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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중항쟁 검색 결과

  • 게시물 3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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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우의 불나방 장마가 시작될 무렵부터 초소 안에선 머지않아 부대가 이동하리라는 소문이 심심찮게 떠돌았다. 해안 초소에서 전경 부대를 철수 시키고 대 신 육군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조용히 살다가 옷 벗을라고 했드만 말년에 또 훈련받게 생겼으니. 하여튼 군대복이라곤 좆도 없는 놈이야, 내가." 그 소식에 제일 먼저 반응을 나타낸 사람은 역시 제대를 석 달 남겨둔 양수경이었다. "한 달 동안 특수훈련을 시켜 갖고 시위 진압용으로 써 묵을 모양이든디요. 또, 미문화원 경비를 슬 …

  • 광주여 빛고을이여 1 고 은 -삼가 이 노래를 광주민중항쟁의 전사 여러분께 바친다 밤이거든 저 검푸르른 밤하늘 독수리자리 별들은 안다 대낮이거든 이제 모든 것들이 안다 간밤 비가 내렸다 아침 푸른 하늘 속바람 인다 저 무등산은 안다 여기 태어난 자 여기 있는 자 여기 떠난 자 그 누구 할 것 없이 그들 모두의 아버지인 무등산은 안다 여기 죽은 자 그 누구에게도 낱낱이 그들의 어머니인 무등산은 안다 왜바람쳐도 끄떡없이 다 알고 있다 무등산 천왕봉은 안다 표고 1천1백87미터 저 위에서 지왕봉은 안다 인왕봉은 안다 무…

  •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소시민적 문학관을 비판한다 이강은(문학평론가) 1. 머리말 홍희담의 「깃발」은 광주민중항쟁(이하 '광민항쟁')을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처음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창작과 비평』 복간호(1988)에 실렸던 이 작품은 발포되자마자 즉각적으로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반응에 나타난 각 계급적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지만, 이 작풍으로 인해 광민 항쟁에 대한 문학적 관심이 상당히 증폭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최근 새로운 작품 「이제금 저달이…

  • 광주민중항쟁과 문예운동 이정표에 대한 확신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현재성'이라는 제목 아래 첫째, 광주민중항쟁이 민족문학사에 미친 영향, 둘째, 그로 인한 1980년대 문학운동의 양상, 셋째, 1990년대의 과제와 광주민중항쟁을 살펴보려 한다. 사회발전의 어느 측면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먼저 평가해야 할 문제가 있다. 현실을 변화시켜 간 실세가 뉘 손에 있었는가를 따지는 일이다.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변화시키는 궁극적인 힘은 정치인이나 진보적 지식인 혹은 선진적 사회운동가 등 소수에게 있지 않다. 역사는 민중의 것이다. …

  • 광주민중항쟁과 문학 5월 민중 항쟁은 1980년 5월 18일에 광주 일대에서 늦봄의 따스한 햇살을 받아 활짝 피었다가 5월 27일에 정치군부의 총칼에 의해 무참하게 잘린 한국민중운동의 꽃이다. 휴전협정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민중운동이 비축한 역량을, 특히 4 월 혁명의 유산을, 총체적으로 계승하되 그런 운동의 수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한 그 고귀한 항쟁의 꽃은 상대적 빈곤과 지역적 소외와 반민주로 불결해진 세상의 변혁을 열망하며 피었건만 도륙도 서슴지 않는 패륜의 무리들에 의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 ■ 학술제 / 광주민중항쟁과 문학 희망 뿌리 내리기 고려대 교육문예모임 1.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들의 두려움이었다 2. 피흘리지 않고서야 세계를 획득할 수 있겠는가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배경과 성격 3. 우리가 읽은 소설은요 4. 다시 그 거리에 서면 --소설 속에 나타난 광주민중항쟁의 상황과 전개 5. 져도 지는 것이 아닐 수 있어, 그래도 이런 엄청난 피의 대가로 알게 되는 것이 슬퍼 --광주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인식내 6. 기다림이 아름다운 세월…

  • 「해직시절」을 말한다 광주민중항쟁관련 李光宇 교수 교수노릇 못해도 애비노릇은 해야지 앞치마 두르고 튀김 튀기며 삭인 울분 崔時永 “후덥덥하던 장마철, 마침 부슬비가 내리던 초저녁이었어요. 저녁상을 막 물리고 앉아 있는데 우악스럽게 생긴 사내 둘이 느닷없이 들이닥칩디다.”1980년 7월 10일 밤.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이광우(56·李光宇)교수는 이렇게 체포되었다. 그에게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길고도 험난한, ‘악몽의 49개월’의 첫날은 이렇게 시작됐다. 5·18직후부터 교수들이 하나 둘씩 끌려감에 따라 극도의 공포감에…

  • 특집/광주민중항쟁, 그후 15년 군인들이 쏜 총에 두 눈을 잃고 강 해 중 구술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1980년 5월, 광주의 중심가는 피범벅이 되었지만 외곽에 위치한 우리 집은 평온했다. 단지 당시 31사단 방위 근무중인 큰아들이 닷세째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아들을 찾으려고 시내로 들어갔을 때는 시민군들과 군인들이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보고 온 나는 고등학생이었던 두 아들을 일단 피신시키기로 했다. 우리 동네의 많은 학생들이 시민군에 참여했지만 나는 아들들을 보낼수가…

  • 제 2 절 상무대로 연행(27일 07:30 - 22:50) 07:30 - 09:30 - 기갑학교 인원 1/48, 전차 14대, APC 1/4톤 1대 무력시위, 금남로-도청-학동- 시민회관-광주구역-부대. (계엄사 상황일지) - 공무원 근무 개시 - 시내전화 개통. 07:45 - 작전 성공요인 1. 기습 달성 2. 광주시내 주동 폭도들의 활동에 대한 정확한 정보 입수 3. 작전계획의 보안유지를 위해 계획으로만 발전시키고 실제 작전투입을 위한 명령을 작전개시 2시간 전에 하달 4. 계획시행 전 유…

  • 제 5 장 도청 함락 제 1 절 최후의 항쟁(27일 00:00 - 06:00) 외곽지역의 시민들로부터 계엄군이 쳐들어온다는 제보가 속속 들어오고 도청 행정전화가 끊기자 도청 상황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홍보부에서는 시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결정하고 광주시내 전지역을 돌면서 마지막 가두방송을 했다.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숨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일어나서 계엄군과 끝까지 싸웁시다." 애절한 여자의 목소리가 정적을 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