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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검색 결과

  • 게시물 1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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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 관찰자 증언

  • 光州사태 관계자들의 證言 이 증언은 광주사태를 직접 겪은 관계자들의 체험담을 본지 취재기자들이 정리한 것이다. 月刊朝鮮특별취재반 證言者 宋基淑(당시 수습위원) 金鍾培(당시 학생투위 위원장) 李梁賢(당시 학생투위 기획위원) 南東成(당시 전투경찰관) 曺喆鉉(신부) ■宋基淑(50, 전남대교수, 당시 수습위) 계엄군이 확산되고 계엄군이 학교에 진주하고 난후 5월18일에 벌어진 상황을 나는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 5월19일은 통근버스가 정상 운행되어 9시경 학교에 출근했다. 물론 교수와 학교직원들만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

  • ●民和委증언·공수대원 手記·국방부발표·NCC보고서·光州側문서 등을 총동원한 「진상규명」을 위한 질문서 爭点! 무엇이 「光州」의 眞相인가 尹 在 杰(東亞日報出版局次長署理) 民和委, 光州시태 본격 거론 지난해 연말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부터 80년 5월의 「광주사태」에 관한 논의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분분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盧泰愚대통령 직접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민주화합추진위원회(약칭 民和委)에서 나오고 있는 관련당사자들의 증언들은 국민들에게 이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이 증언과 논의를 통해 국민들…

  • 입체특집 光州사태를 再審한다. 民和委에서 털어놓는 증언록 ‘진상조사후 명예 회복을’ 金成洙 ‘사태수습에 최선 다했지만’ 蘇俊烈 ‘民和委에 무엇 기대하랴’ 田桂良 ‘간첩누명에 拷問까지’ 全玉珠 5·18 光州사태 계엄군 手記 ‘다같은 피해자, 참회의 마음을’ 金永哲 5·18 光州사태 시민군 手記 錦南路 10일, 스님이 겪은 煉獄 李光榮 입체특집/光州사태를 再審한다. 지난 1월 11일 구성된 民主和合推進委員會는 당초 ‘들러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을상당부분 불식시키면서 그동안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또한 …

  • 「光州」주역 36人의 증언 내가 겪은 80년 5월의 光州 「光州」를 어떻게 풀까. 80년 5월, 세계를 진동시킨 그 엄청난 사건은 「義擧」일까, 「抗爭」일까…. 6共和國의 출범을 가로막고 있는 이 難題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眞相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이에 月刊朝鮮은 당시 이른바 「市民軍」의 대표, 수습위원, 총을 들고 싸웠던 학생, 전투경찰관, 간호원, 시민등 36명으로부터 생생한 증언을 채록했다.이 증언은 85년 5월 월간조선 특별취재반이 광주에 특파돼 취재한 것으로, 증언자들의 나이와 직책등은 당시의 것이다. 月刊朝鮮 특…

  • 5·18증언-우리는이렇게 싸웠다-5월 27일, 그 마지막 새벽까지 총을 들고 싸웠던 항쟁참가자의 증언!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말한다 정적을 가르는 총성이 울렸다 새벽 3시 30분! 도청 주변 사방에서 정적을 가르는 총성이 울렸다. 가두방송을 듣고 뛰쳐 나온 젊은이들이 계엄군의 포위망에 걸렸다. 어둠속에서 도청주위를 맴돌다 수백명이 체포, 사살되었다.도청 상황실에서는 자폭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한 청년이 눈물을 주먹으로 씻으며 말했다.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여기야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 남아도 잡혀 죽겠…

  • 특별기획 80년 5월 光州 외국인이 證言하는 「光州」의 마지막 날, 내가 본 그 現場 헨리 스코트 스톡스 (당시 美「뉴욕 타임즈」東京特派員) ―예술은 하나의 사치이다. 그것은 침착하고도 깨끗한 손을 필요로 한다― 「귀스타프 플로베르」 얼마전 런던에서 만난 한 은행가는 자신이 얼마전 북한의 외채 10%를 사들였다는 놀랄 만한 이야기를 내게 들러주었다. 그의 말인즉 9천만달러에 가까운 북한외채를 담보로 약 8백만달러를 대출했는데, 만약 그 외채증서가 상환된다면 그의 은행은 8천2백만달러를 손쉽게 번다는 것이다.글세,…

  • 특별기획 80년 5월 光州 외국인이 證言하는 「光州」사망자, 3백명은 넘는다 필립 퐁스(프랑스 「르 몽드」記者) 「학살」몇 시간 후 光州도착 1980년 5월 21일 아침, 우리가 광주에 막 도착해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당시 받은 첫인상이 떠오른다. 폭력이 거의 없는 민중봉기와 거리를 돌아다녀도 전혀 위험하지 않은 정도의 투쟁을 전날 밤에 겪은 도시의 모습일 뿐이었다. 당시 「뉴욕 타임즈」지의 특파원이었던 동료기자 심재훈과 자동차로 새벽에 서울을 떠날 때만 해도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전날 우리는…

  • 특별기획 80년 5월 光州 외국인이 證言하는 「光州」는 全斗煥집권의 단계적 쿠데타였다 「마크 피터슨」(美브리검영大극동문제연구소) □編輯者 註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주한 美대사 「글라이스틴」과 美8군사령관 「위컴」의 「광주」관련증언을 기록한 미국학자의 논문이 최근 발표돼 「광주사태」에 있어서 미국의 역할과 입장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주목하고 있다. 웨스트뷰출판사의 광주사건논문집 『광주봉기』에 실린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 브리검영大 극동문제연구소)의 「미국과 광주사건」(Americans and the K…

  • 긴급입수·피터슨 목사의 광주 증언록 내가 겪은 광주, 80년 5월 아놀드 피터슨 미국 남침례교 목사. 80년 당시 광주에서 선교활동 이 글은 80년 5월 광주 시민에 대한 총격이 흔히 알려진 5월 21일이 아니라 5월 20일부터 시작되었음을, 그리고 광주 시민에 대해 무차별한 헬기 기총사격이 자행되었음을 주장하는 한 외국인 선교사의 기록이다. 피터슨 목사는 자신의 주장을 사진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다. 이 피터슨 목사의 증언록이 광주 전 신문의 지면세 대서 특필되는 동안 서울의 거의 모든 언론은 피터슨 목사의 헬기기총사격 주…